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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by 앤나우

2년 전 《안네의 일기》로 짧은 독서 강연을 준비한 적이 있다. 안네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었는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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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기하게도 한글 번역 제목에 꼭 '빅터 프랭클'의 이름이 함께 붙어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영문 제목을 번역해서 제목을 말하자면 인간의 의미 탐구, 이런 풀이에 더 가깝지 않을까 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사람이 날마다 죽음을 느끼고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낀 생생한 기록, 죽음을 이기고 온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


빅터 프랭클, 자신의 이름과 한 세트가 될 수밖에 이야기구나, 살아남은 사람의 또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주게. 내가 매일 같이 매 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 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 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했던 그 짧은 결혼 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p.94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운명의 장난』 중에서-




절절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인생의 마지막 유언조차 여유 있게 전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유언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음이 애잔했고 혼자서 살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기로 선택한(죽기로 결심한) 그의 선택이 숭고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어 나갈 무렵엔 '빅터 프랭클' 박사의 이름과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제목이 더 절묘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올 겨울에 이 책을 다시 꺼내서 읽고 싶어졌다. 가까이 두고 좀 더 음미하며 천천히 손이 닿는 곳에 이 책을 두고 싶어 져서 이전처럼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도 있었지만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평범한 일상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이 성큼 다가온 삶을 만나게 된 김새섬 (그믐 대표)님'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장강명 작가님의 팬이기에 지식 공동체 '그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김새섬 대표님이 바로 장강명 작가님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고 대부분 재밌게 읽었는데 그렇게 소식을 찾아보고 접하다 보니 올라오는 '그믐'의 독서모임도 재밌게 보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긴 글 한 편이 올라왔다. 아내의 '교모세포종'이야기, 도움 받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들에 대해 꼼꼼하게 써놓으셨다. 읽으면서도 심장이 두근두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고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는 '시련'과도 같은 전혀 다른 삶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아 나아가려는 사람도 있구나. 작가님의 정중하고 차분한 말투와 앞으로의 방향이 나에게는 새롭게 '품위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세*바*시 강연도 '15분으로' 매우 짧기 때문에 응했다는 김새섬님은 깔끔한 두건을 쓰고 나오셨다.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기까지 일화를 짧게 꺼낸 후에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나 고통의 증상을 더 말했을 것 같은데 더 중요한 건 역시 '그믐'대표님답게 책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손에 들고 온 이 책 이야기를 깊게 들려준다.


평균 생존율이 1년 남짓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여러분 만약에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으셨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뇌 수술 후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실어증을 겪는 상황에서 김새섬님은 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서 또박또박 읽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재활치료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떨구고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작은 휴대폰, 그 휴대폰에 갇힌 채 뭔가를 바라보기보다 이 책을 다시 읽기로 결심했을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문장의 힘, 서사의 힘을 체험하고 믿는 사람에겐 책이 반대로 손을 내밀어 사람을 붙잡아 주기라도 하는 걸까. 단순한 인지력만 향상한 게 아니라 이 책에는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소개한다.



▶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것

▶ 사랑과 경험

▶시련을 대하는 태도





한 편의 글이 단순한 글자만이 아닌, 누군가를 다른 삶으로 살도록 바꿔놓는 선택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일반 사람의 하루보다 40배속 빠르게 흐른다는 암 환자의 삶 속으로 울고 주저앉아 요양하기보다는'자신의 삶'을 선택해서 살기로 결심했단 이야기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빅터 프랭클도 그랬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로 가야 하는 운명과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로 남아있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


그 마지막 남은 자유로 인하여 인간은 끝까지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김새섬님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태도 가치 역시, 품위 있게 느껴졌다. 용감하고 정갈하고 인간다운 선택은 어딘가에 갇혀있지 않다. 죽음에 갇힌 것 같은 순간에도 누구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의 순간들, 인간이 결국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 그건 전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태도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그 말에 인간의 고귀함을 느꼈다. 고통 속에서도, 날마다 사람이 죽어가고,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 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낼뿐더러, 타인에게도 의미를 찾아주는 일에 몰두한 빅터 프랭클의 태도는 나에게 용기를 준다. 몰두하고 몰입하고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시련 앞에서도 그 사람은 꺾이지 않는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모도, 아내도 두 자식도 모두 잃었다. 성경의 욥기가 떠오를 정도로 처참하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삶이다. 인생에 이토록 고통과 고난,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시련이 또 있을까. 슬픔 속에서도 그가 '의미'를 찾으면서 견디려고 애쓴 시간들이, 고통이 심할수록 더 빛난 삶의 태도에 대한 시간들이 이 책에 잘 담겨있다.



다 잃은 것 같은 순간에도 나를 찾고 있고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있는 동료들, 여전히 나에게서 손을 내밀고 계속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겐 또 다른 의미가 되고 있구나. 상황을 버티고 이기기에 급급하기보단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나누고 내가 진정 바라는 선택을 놓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어떤 존재에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지금(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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