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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Jul 07. 2023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그의 엄마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나쁜 엄마 시리즈를 쓸 때(아직 2편은 안 나왔습니다만;;) 가깝고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영화나 드라마, 어디에 나온 엄마가 진짜 나쁜 엄마 같냐고. 선주언니의 대답에 아, 맞다! 그랬지. 그렇게 떠오른 한 사람.



선주 : 나쁜 엄마 하면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가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아이에게 무관심하다는 점이 마틸다의 엄마와도 비슷할 것 같아요. 아이가 타고난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사이코로 자라난 건가. 이번에 역대급 금쪽이와 맞물려 다시 화두가 되었던,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봤을 땐 우리는 '모성애'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모성애는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자자, 케빈 중요하지, 엄청난 폭풍과도 같은 사건의 주인공이고 원래 제목 역시 가볍게 『케빈에 대하여』가 아닌 사실은 케빈에 대해 꼭 말해야 해 로 들리니깐. 하지만 사실 영화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케빈이 아닌 케빈의 엄마인 '에바'에게로 눈이 간다. 케빈의 어린 시절, 아니 그보다 더 이전에 케빈을 임신하면서부터 겪었던 무수한 감정의 변화들과 안 어울리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엄마의 자리, '네가 태어나기 이전이 훨씬 더 행복했었어! (프랑스에서)자유로웠던 그때가 더 그리워'라고 아가에게 말하는 그 모습까지.


그래,

우리는 이제 케빈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한다.


어쩌면 우리 엄마, 나의 언니나 친구 그리고 내 얘기기도 하니깐. 금쪽이에서도 사실 모든 문제나 원인이 엄마에게 향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 정작 아이의 솔루션 중심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부분은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금쪽이 엄마의 내밀한 속마음과 변화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알아야 한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여행가 에바는 토마토 축제에서 만난 남자 프랭클린과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그들에게 아들 케빈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임신부터 출산까지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야 하는 에바는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지고 가족들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케빈은 교묘한 방법으로 엄마에게 고통을 준다. 결국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대체 케빈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걸까? 엄마란 존재는 자식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부어야 하는 걸까?


즐거워하는 프랭클린과 망연자실한 표정의 에바



영화의 스틸컷을 찾아보다가 이 장면에서 멈칫하게 됐다. 나에게도 출산의 경험이 온전한 기쁨만은 아니었기에 날카로운 첫 전신마취의 기억에서부터 아이를 맞이할 준비는 다 했지만 (사실 가제수건을 빨고 아이 이불을 개면서도 분명 행복했던 것 같은데) 마취에서 깨어나고 내 몸이 온전하지 않은데 아이를 들고 안아야 하는 일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임신 중 열심히 운동하고 움직인 탓에 수술한 산모임에도 저녁부터 열심히 복도를 걸었고(세상에, 소변줄을 꽂고도 계속 걸을 수 있을 만큼 통증이 심하지 않았다니! 젊었다) 코끼리처럼 퉁퉁 부은 발을 보고 혼자 비명 지르고 울기도 했던 내 모습. 살면서 수면 양말이 안 들어가는 날이 올 줄이야.

아이를 낳는 과정을 책으로만 보고 인터넷, 영화로만 봤지 낳고 난 이후에 미묘하게 찾아온 몸의 변화에 대한 말은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았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겁먹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나는 꽁꽁 숨고만 싶었다. '내'가 먼저이기에 나를 먼저 회복하고 이전의 내 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성급한 성격 탓에. 사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차츰차츰 나아지고 회복되는 일임에도. 빨리 이 가려운 머리를 어떻게 감고 말릴지, 언제쯤 샤워를 할 수 있는지에만 집중했던 이상한 산모. 아니, 이상한 엄마.


띠리링 벨이 울리고 '산모님, 이제 회복하고 잘 걸으시죠? 자연분만한 산모보다 더 빠르게 잘 걸으시던데 이제 슬슬 아가 얼굴을 한 번 보러 오시지 않겠어요?' 나는 저 말에 움찔 놀라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느라 우리 아가, 내가 낳은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봤구나. 후다닥 슬리퍼를 신고 달려간 곳에는 나의 아가가 있었고 전신마취라 기억에도 없는 깨끗하고 맑은 얼굴의 선재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아가야, 미안해. 다른 엄마들은 태어나자마자 아가랑 떨어져 있기도 싫어하는데 엄마가 잠시 널 잊은 것처럼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해



그때 알았다. 모성이 처음부터 있는 건 아니구나. 임신한 사람이라도 왜 아이를 버리고 갈 수도 있는지도.

안 보면 그만, 그냥 거기서 . 1년 가까이 품었던 몸의 기억보다 사실, 세상에 나온 아기랑 둘이 헤치고 살아야 할 삶이 더 어마어마하고 크기에. 대부분은 끄덕이게 되는 옛 어른들 말씀.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하더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분명 수술대에 누워서까지도 기도했던 건 내가 아니라 아이의 안전인데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이라고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나는 혼자 목숨을 걸면서까지 아기를 먼저 생각하고 지켜야겠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상했더랬다. '저보다는 아기를 지켜주세요'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의사 선생님께서 수면 가스로 입을 막으셨지만. ㅎㅎ 절묘한 타이밍.  

막상 낳으니 현실은 달라지고 변화된 내 몸에 대한 혼란뿐이란 것을!(아, 쓰면서 내가 왜 에니어그램 7번 형인지 알겠다. 사고 중심 타입.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


에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임신과 출산으로 자신의 모든 게 사라지고 '엄마'가 됐을 때 당황한 심경은 이해한다. 이전에 자기가 부정했던 그토록 끔찍해 했던 삶에 스스로 들어온 격이니.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선택이니 책임을 지려고 한 시작부터 모성이 깃든 선택이니 손뼉 쳐줘야 마땅할까. 사실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 자체가 아니라



모성 역시 '과정'이 더 중요한 부분이란 걸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기로, 기르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그 모든 과정이 사실 모성이 아닐까.


시끄러운 케빈의 울음소리가 너무 싫어서 공사장 한편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편안해하던 에바의 표정이 생각난다. 벗어나고 싶은 일탈,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그냥 더 시끄러운 현실의 다른 소리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 그때 에바는 공사장 인부들이 주의를 주기 전까지 진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벗어난 편안한 자유인의 표정. 자기에만 유독 까칠하게 구는 아이한테 잔인하게 퍼부었던 말! 말! 말!! 어린 시절 아이들이 엄마의 말과 행동을 전부 이해를 못 해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고 한다. 감싸주는 스킨십, 따뜻한 포옹, 나를 잡아주는 손길, 나에게 속삭인 말, 나를 보며 웃었던 눈, 이러한 몸의 기억들이 자라면서도 기억된다니 신기하고 놀랍다. 둘째 아이 기저귀 떼는 문제로 친정에 갈 때마다 구박을 받았다. 왜 이렇게 아이 배변 훈련에 신경을 안 쓰고 그냥 두냐고 야단치면서 너랑 네 언니는 돌도 되기 전에 꼬마 변기에 척척 앉아서 볼일을 다 봤다고 하는 그 말이 나는 갑자기 너무 소름 돋고 아프게 들렸다. 화가 났다.



그건 아빠랑 엄마가 말도 트이기 전에 나랑 언니랑 때려서 억지로 맞기 싫어서
우리가 그렇게 몸이 기억하게 한 거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감정 주체가 안돼서 엉엉 눈물이 터진 적도 있다. 선재만큼 둘째는 신경을 안 쓴다고 이야기하던 신랑과(선재는 돌이 좀 지나고 바로 기저귀를 뗐다) 얼어버린 친정 부모님의 당황한 표정이 떠오른다. 나는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뒤쯤, 그때 갑자기 울컥한 내 감정을 상담한 적이 있다.

당시 선생님께선 배변훈련은 인생을 통 틀어 아이가 처음으로 선택하는 유일한 큰 결정과 의지이기 때문에 꼭 기다려 줘야 한다고 하셨다. 그걸 누군가의 강압, 요구로 이해하게 되면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걸 듣고 나는 그 선택이 싫었던 거구나. 말을 잘 듣고 따박따박 변기에는 앉았을지언정, 뭔가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 어린 몸에, 다 큰 어른의 머리 어딘가 남아있었던 거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안 됐더라면 알 수 없었던 나의 내면 아이 모습.


케빈도 스스로 알았겠지. 임신인 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에바가 극렬히 케빈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탄생을 기뻐하고 웃어줬던 아빠와 달리 엄마에게 유독 까칠하고 예민했던 건 버리진 않았지만 버려질 뻔 한, 자기를 보는 눈빛과 목소리가 케빈의 몸에 각인이 됐던 건 아닐까.


아이에겐 아무리 화가 나도 말로 화가 나갈 때 꿀떡 잘 삼켜야 할 때가 있는데 나도 그게 늘 어렵다. 그걸 잘하는 엄마들이 늘 부럽고.



둘째 딸 실리아가 태어났을 때 에바의 상황은 조금씩 변했다. 자신의  커리어도 회복하고 육아에도 적응이 되었기에 마냥 사랑스러운 둘째에겐 케빈 때와는 다른 정을 쏟는다. 케빈 역시 그 시기 동생에게 빼앗긴 관심을 얻기 위해  처음으로 엄마에게 의존하고 손을 내민다. 변한 케빈의 모습을 에바는 신기해하고 좋아하지만 그들의 불안하고 불편한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케빈은 엄마를 향한 증오, 복수를 위해 결국 에바 옆에 그 어느 누구도 남겨 놓지 않는다. 세상에 딱 둘만 인 냥 범죄자가 돼서 감옥에 갇힌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으며 모든 걸 감내하고 참고 살아야만 하는 형벌을 받은 에바. 둘 다 감옥에 살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 에바가 한 번도 케빈을 제대로 안아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딱 한 번 단 한 번 그 장면이 나온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를 너무 잘한 탓일까. 아이를 안을 때도 볼 때도 불안하고 뚱하고 어딘가 밀어내듯 아이를 들어 올리는 그 모습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말해주는 몸짓 같았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 면회 자리에서 분노에 가득 찬 아들을 정말 꽉 끌어안아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왜 그런 거냐고, 처음으로 묻는다.

정말 하고 싶었던, 정작 하고 싶었던 질문인데 그동안 안 한 게 이상할 정도로 단순한 질문.



에바 : 왜 그런 거야?
케빈 : 이유는 없어. 그게 포인트야.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케빈의 행동엔 이유가 분명 있다. 몸이 기억하는 불편한 불안한 이유들이. 단순한 애정결핍이라고만 하기에 엄마가 놓쳤던 수많았던 순간들의 상처가. 물론 상처받았다고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을 살인해야 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애정과 사랑을 갈구하고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좋은 모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지, 이렇게까지 끝장난 건지 잘 모르겠어, 처럼 들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이제야 내가 보이나요?



몸부림치는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의 시작 이야기, 분석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케빈의 행동엔 이유가 너무 촘촘하게 보이고 뚜렷한 살인의 목적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자기가 피해자 쪽이 아닌 왜 가해자 자리에서 엄마를 대면하는지가 나오고 있으니까. 에바의 인생은 구겨지고 망가지고 처음 임신의 때보다 더 돌이킬 수 없게 됐지만 아들을 안아주는 그때만큼은 살아있었다. 세상이 다 욕해도 처음 안아주는 포옹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토마토 축제의 즐거운 오프닝 씬은 결말과 수미상관 구조라 섬뜩하다. 온몸은 토마토 범벅인데 엉킨 사람들 위에 실려서 둥둥 떠다니는 에바가 마치 피 투성이 십자가 형벌을 받는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만으로도 버거운데 내 아이의 십자가도 끌어안아줘야 할 만큼 무섭고도 엄청난 일이 아닐까. 아이에게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하는 걸 알려주는 그 과정에 사랑이 깃들길, 내 것도 늘 불안하지만 나도 조금 더 단단하게 붙잡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길 기도하고 바라게 된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엄마도 처음부터 존재하기 않기에.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린 램지 감독(2012년 작)/ 112분/ 넷플릭스, 왓챠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케빈에 대하여>



글 쓰는 오늘 Season13 우리들의 글루스 III
네 번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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