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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Jul 05. 2023

연애편지

4월 이야기로 답장받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연애편지 이야기다. 두근두근두근. 사랑의 시작은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데 편지만 한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눈발이 휘날리다가 함박눈이 되어 펑펑 내리는 날에 꼭 생각나는 영화. 영화 러브레터에서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에게 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쓴다. 천국에서 지내고 있을 첫사랑 연인에게 안부를 묻는다.


천국에 보내는 편지 추억이 되어 돌아오다

 -당시 영상 광고에 뜬 말이다-

 

손 편지의 절정을 담아낸 러브 레터.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파 이 편지는 차마 보내지 못하겠어요.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그녀 와타나베 히로코, 첫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녀, 후지이 이츠키

설원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마니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영화, 고등학교 삼 학년 수능이 끝나고 단체로 영화관람을 많이 했는데 단체 관람으로 봐야 했던『텔미썸딩』을 보기 싫어서 미영이, 난정이, 현경이랑 함께 따로 빠져나와서 본 영화가 바로 이 『러브레터』다. 출석 체크만 하고 극장에서 후다닥 나왔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텔미썸딩」도 꽤나 재밌는 영화였다. 발음이 썸씽이 아니라 '썸딩'이란 발음이 좀 웃겼지만. 추운 겨울, 극장에서 뛰쳐나와서 다시 들어간 극장엔 우리 넷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자리를 이곳저곳 옮기면서 영화를 봤다.



오겡끼 데쓰까? 와다시와 겡끼데쓰.

 


편지는 엉뚱한 곳으로 전달되고 그 편지를 받은 같은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는 그냥 뭐,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히로코에게 답장을 쓴다. 그때부터 시작된 옛 연인의 과거 동창과 의 펜팔. 시작부터 재밌다. 이와이 순지는 ‘동명이인’이라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순정 만화 같은 소재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들었다. 비슷비슷한 감성의 영화들이 줄지어 나왔을 때도 「러브레터」 덕분에 이와이 순지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후지이 이츠키’ 두 명은 서로 시험지가 바뀌어서 불빛 아래 답을 맞혀보기도 하고 체육대회 날 다리가 다쳐서 출전할 수 없음에도 잔디에서 달리기를 시작한다.(남자아이) 그걸 또 열심히 카메라로 담아내는 후지이 이츠키.(여자아이) 평범하고 얌전한 여자 이츠키보다 어마어마하게 잘생겼지만 똘끼(?) 충만한 남자아이가 주로 기행을 저지르는데, 사실 이런 자잘한 에피소드도 몇 번 다시 보면서 ‘아, 이런 장면이 있었지!’하고 생각이 나서 볼 때마다 새롭고 재밌었다. 두 사람은 편지를 한 번도 주고받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의 첫사랑이란 것을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마지막 연인과의 펜팔을 통해서 깨닫고 알게 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와타나베 히로코랑 후지이 이츠키 중 누가 더 비참한 마음이 들까, 그래서 진짜 사랑했던 건 누구지? 그가 첫사랑인 여자와 그의 첫사랑인 여자, 완전히 닮은 듯한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난 건가 이런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내 결론은 첫사랑인지도 모르고 지나친 후지이 이츠키, 사랑 고백도 훗날 자기를 그린 한 장의 도서관 대여 카드 초상화로 알게 된 후지이 이츠키가 더 안타까운 것 같다. 두 명의 접점이 우연이라도 맞아떨어지거나 어디 갇히게 되거나, 둘이 짝꿍이 되거나 이런 게 단 한 컷도 없지만 보는 내내 콩닥콩닥 했던 건 둘만 몰랐지 어쩌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걱정하는 표정이 이미 첫사랑이란 걸 전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에게도 첫사랑과의 편지가 있다. 우리의 러브레터는 주로 당시 20살 무렵 유행하던 e-mail 플래시 카드였다. 다양한 종류의 카드와 (주로 개그 소재 ㅋㅋ) 메일, 핸드폰 문자들이 오고 갔다. 밤새 수다를 떨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사귀기도 전에 수련회에 오기 전에(나의 첫사랑은 교회 오빠였다. 말만 교회 오빠지 교회를 열심히 다니진 않으면서 교회에 친구들을 전부 끌고 온 교회 오빠) 나와 밤새 핸드폰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들부터 친구들과 다른 곳에 놀러 갔지만 ‘네가 갔으니 그럼 널 보러 갈까?’ 이런 짧은 글부터 나의 설렘은 시작됐다. 그 오빠는 핸드폰도 없어서 삐삐로 엄청난 메시지를 계속 보냈는데 80%가 거의 농담이었다.




나경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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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이쯤에선 이제 고백하려나 봐, 두근두근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는데 고백은커녕)


삽 좀 빌려줄래?


삽 좀 빌려줄래? 이런!!



이런 식의 농담이 요즘말로 썸을 탄다, 밀당을 한다고도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두 감정 모두 연애 감정에 포함이 된다고 여기기에 별로 싫지가 않다.

기대를 화로 바꾸는 문자에도, 나는 두근두근 했다. 전부 겉도는 농담 따먹기 같은 이야기어도 나랑 밤새 이야기하는 건 분명했으니깐. 내일 정말 더 먼 길을 돌아 여기로 온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기다리고 기대되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귄 시간보다 사귀기 전 진짜 연애 같은 감정을 가졌던 그 시간이 콩닥콩닥 그립고 말랑말랑 생각이 난다.

 

함께 보러 간 첫 영화,「4월 이야기」 


나는 팝콘을 먹고 싶어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뻘쭘했는지 팝콘을 사 오겠다며 나갔는데 영화가 진짜 짧아서 (67분밖에 안 되는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했다. 거기에도 「러브레터」처럼 우리 둘만 있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당시에 인기가 별로였던 걸까?) 함께 봤더라면 더 말랑 심쿵했을 그 영화를 다 끝날 때가 돼서야 팝콘을 들고 들어와서 내밀었다. 주인공 우즈키가


이건 기적이 아니라, 사랑의 기적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얼마나 찌리릿 쿵! 멋졌는데, 그걸 나 혼자만 들었다. 같이 들었더라면 그날 바로 내가 고백을 했을지도 모르고.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사이로 빨간 우산을 들고 환하게 웃는 우즈키 표정은 훗날 「늑대의 유혹」 강동원보다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 이 영화도 이와이 슌지네. 영화는 거의 나 혼자보고 팝콘은 팝콘대로 못 먹고 이상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라는 건 역시 할 말이 생기게 만들었다. 팝콘을 먹다가 우연히 손이 닿을 사건도 없이. 어느 날은 뜬금없이 나오라고 해서 같이 펌프(디스코 오락)를 하지 않나, 만나자고 해서 한껏 기대하고 치마를 입었는데 또 열심히 펌프를 춰야 했던 스무 살의 기억. 나를 왜 오락실로 끌고 간 건지 모르겠지만 또 와중에 점수를 이겨보겠다고 열심히 췄던 나의 흑역사여. ㅋㅋㅋ 별 거 아닌 추억이 만들어졌기에 자꾸 메일을 썼고 우리는 한 통 두 통 메일이 늘어났다.

 

메일에 정작 하고 싶었던 고백은 쓰지 못했고 재밌게 본 영화, 당시 유행하던 참신한 플래시 카드 이런 걸 자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뭔가 내 얘길 말하다가 만 적이 많았는데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금만 귀찮아지면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해서(?) 말 줄임표와 부사를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아흑, 창피해;;;)

첫사랑은 나에게 그런 ‘...... .’  말줄임표 남발을 지적했더랬다. 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면서 늘 소설만 읽고 손에 잡히는 대로 좋아하는 이야기만 읽고 또 읽기 시작하는 내 독서 습관도 이야기하고 작가가 된다면 적어도 말줄임표 대신 자기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고 말해준 그.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용기 있는 고백을 기다리고 유도했던 건 아닐까. 팝콘도 뭔가의 우연을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찾아서 사온건 아닐까, 모든 게 지금 와서 혼자 해보는 하나의 상상이기에 소설로만 완성되는 이야기다.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영화를 좋아하고 책 선물을 가장 많이 해준 남자친구 되시겠다. 그 이후에 사귄 남자들도 책 선물을 해줬지만 전부 나의 취향에 맞춰 그 당시 내가 읽는 추리 소설, 시집, 미야베미유키여사의 책이었다. 참고로 우리 신랑은 나에게 조석의 『마음의 소리』 시리즈를 선물해 줬다. 당시 제일 빠져서 배꼽 잡았던 웹툰이었으니까. 이렇게 대부분 책 읽기는 싫어하는 남자들과 사귀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재밌게 읽고 주고 싶은 책만 선물해 줬다.

내가 아멜리 노통에 빠져들게 하고(적의 화장법, 이 책을 처음 빌려줬다) 바베트의 만찬 같은 멋진 책을 뜬금없이 선물해 주기도 했다. 내가 선물해 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명상 책 같은 건 거부하고(끝까지 가지고 가라 함) 냉정열정사이는 남자/여자 편을 한 권씩 서로 나눠 갖자고 한 이상한 사람.

 나는 급한 성격답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용기 내서 고백을 했던 것 같다. 정성스럽게 쓰고 찢고, 다시 쓰고 또 쓴 새벽까지 밤새 쓴 손 편지로.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가 모두 담긴 짬뽕스런, 내 연애편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전부 다 담고 싶었다. 너무 화려하게 포장해서 다시 읽어보니 우스웠고, 당시에 푹 빠져있었던 상실의 시대 미도리’의 대사를 너무 남발해서 민망했으며 읽고 또 읽어도 솔직했지만 어딘가 일본 영화 주인공 같았던 내 편지, 지금은 그분은 결혼해서 호주에 살고 있는데 그가 내 편지들을 버리지 않았을까,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가지고 있다. 함께 찍은 사진은 잃어버렸지만 그가 준 어린 시절 사진은 버릴 수가 없어서 편지함에 고이 넣어 잘 가지고 있다.




잘 지내나요?
나도 잘 지냅니다.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오늘의 마무리는 영화 대사로 대신한다.



*첫사랑에게 쓰는 편지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스무 살, 추억을 가진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열심히 글을 쓰는 중에, ‘글 쓰는 우리 와이프, 멋있고 대단해! 파이팅!’을 외치고 가는 신랑에게 미안해서 P.S첫사랑에게 사실 쓰려다가 말았다. ㅋㅋㅋ






지난겨울, 기획 글쓰기를 하며 펑펑 내린 함박눈을 바라보다가 쓴 어느 날의 일기를 다시 정리해 봤습니다.


▶ 러브레터 Love Letter / 이와이 슌지감독(1999년 작)/ 117분

▶ 4월 이야기 April Story / 이와이 슌지감독(2000년 작)/ 67분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4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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