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나우 Jul 14. 2023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루이자 메이 올콧의 책 『작은 아씨들』을 좋아했다. 메그, 조, 베스, 그리고 막내 에이미까지. 평범한 마치가의 네 자매의 일상 이야기가 재밌었고 일단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외국 자매들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구성이 흥미진진했다. 하루하루 펼쳐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로 합쳤더니 한 편이 소설이 됐다는 구성도 어린 나에겐 마냥 신기했다. 나도 일기를 잘 써봐야지, 다짐한 계기가 된 소설. 우리와 닮은 듯 다른, 각기 다른 네 자매 이야기엔 간질간질하면서도 자꾸만 들춰 보고 싶은 매력이 숨어 있었다. 



Note. 1868년도에 처음 나온 이야기라니 150년도 더 된 긴 시간이 있음에도 치렁치렁한 드레스 차림의 우아한 꼬마 숙녀들 이야기는 언제나 나에겐 있지도 않은, 향수를 자극한다. 꼬마숙녀 링의 승마 이야기, 빨강머리 앤의 숲에서 하는 티 타임 이야기는 내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추억인데도 왠지 내 어린 시절이 된 것만 같은.



내가 초등학교 때 본 작은 아씨들 표지에는 둘째 조가 커다란 나무에서 사과를 따먹으며 책을 읽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는 리본을 들고 있고 머리빗으로 머리를 빗거나 꾸미거나 얌전한 숙녀 같았지만 혼자만 책을 든 이 아가씨는 꾸미는 것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고집스러운 곱슬머리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네가 주인공이구나! 나는 표지에서부터 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빠져 버렸다. 여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치마를 입어야 했던 시대에도 유일하게 네 자매들 중 바지 차림도 어울릴 것 같고 나처럼 해적이나 마녀같이 악역을 자처했을 것 같은 이 여인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Sex and the city에서도 뉴욕에 사는 네 명의 독신 여성이 나오지만 이야기는 캐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매일 밤마다 그녀가 쓰는 칼럼이 내레이션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캐리 브레드 쇼 역시 쓰는 칼럼의 내용은 조가 쓰는 소설과 다르지만, 역시 직업은 작가이다. 여자 넷의 조합에 공식이 된 구성이랄까. 안정적이고 포용적인 첫째, 발랄한 이야기꾼 둘째, 여성스럽고 그렇기에 잔잔하게 용기를 주는 셋째, 둘째와 대립하지만 개성 있고 귀여운 막내 - 쓰면서 알았는데 이런 조합으로 짜인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딸이 많은 집 둘째 딸이 독립적이고 똑 부러지는 건 고전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다아시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고. 똑 부러진 성격의 그녀 역시 둘째였다. 






책을 읽는데 여성스럽고 이해심 많은 가정교사이자 또 다른 엄마 같은 캐릭터인 예쁜 메그는 나영언니를 연상시켰다. 자매 수가 모자란 우리는 가깝게 지낸 보미를 빌려와서(?) 우리 막내 동생 에이미로 만들었다. 봄봄은 우리랑 어린 시절부터 폴리스 아카데미, 조선왕조 500년, 희빈 장 씨(ㅋㅋㅋ 장희빈 되시겠다) 이런 놀이를 하고 놀았는데 (와, 우리 왜 이런 거 하고 놀았지?ㅋㅋㅋ) 확실한 건 보미의 이미지가 병약하고 나중에 죽어간 베스와는 너무도 달랐기에. 어떤 역할을 맡기고 시켜도 척척 수행하고 우리 심부름도 잘하는 아이였기에 우리는 귀여운 에이미를 맡겼다. 사실 막내 에이미는 네 자매 중 조와 자주 부딪힐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어마어마하다. 아, 보미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원작 소설의 에이미 이야기다. (실제 보미는 나와 소울이 제일 찰떡으로 통하는 동생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 서로에게만 보이는 천사 같은.) 자기를 두고 조가 오페라에 갔다는 이유로 조의 소설을 한 방에 불로 태워 버릴 땐 뭐 저런 게 있지? 확, 씨!!! 나 같으면 달려 들어서 진짜 머리카락을 마구마구 뜯어놓았을 것 같은데. 성질이 암만 있다고 해도 조는 에이미를 못 당한다. 그래도 자기 전에 자기의 낮은 코를 콤플렉스로 여겨서 빨래집게로 꽉 집어서 잠드는 모습은 또 너무 사랑스러운 것 같은데. ㅎㅎㅎ


아,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게 사실은 얼마 전에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봤기 때문인데 그 영화를 보고 에이미를 좀 더 다른 각도로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처음으로 에이미에겐 늘 조의 그늘에 가리고 조가 인생의 가장 크고 빛나는 존재인 동시에 걸림돌 같았던 언니였던 걸까, 생각해 봤다. 에이미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본 계기가 된 어마어마한 영화! 모든 인물의 터져 나오는 대사가 압권이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고 엄마와 나의 관계를 한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리틀 우먼도 꼭 보고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역시!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 영화 중심 리뷰가 아닌 그냥 내 얘기로 빠져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옆집 부자 로렌스 할아버지의 손주 로리 역은 보미의 오빠 보상이에게 돌아간다. 언니와 나의 상상 속 가상 캐스팅이지만 실제로 우린 만나기만 하면 재밌는 역할 놀이를 하고 놀았다. 


Note. 보상이, 지훈이, 대훈오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한성 아파트에 살면서(나동, 다동, 마동) 부모님들이 다 함께 저녁 예배를 가거나 모임에 갈 때면  우리를 한 집에 두고 외출하시곤 했다. 보미와 보상이 남매, 지훈, 대훈 오빠 형제, 나영언니랑 나. 이렇게 여섯 명이서 자주 함께 어울려 놀았다. 전부 남매, 형제, 자매 구성이 다채롭고 성격도 제각각이었다. 우리는 이 집 저 집에서 하루 종일 놀았는데 거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상상한 내용대로 놀거나 빈 장롱 안에 갇혀서 무서움 참기 놀이, 의자 아래 텐트 집을 만들어서 배 타고 다니는 놀이를 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고 이대로 놀자, 


하고 기센 여자들이 말하면(주로 나를 말하는 것 같네) 남자 애들 세 명은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따라서 같이 놀아줬다. 진중하고 중심을 맡은 건 나영언니가(중전 마마나 선생님, 선생님은 절대로 죠리퐁밥이나 고래밥 반찬 같은 과자도 먹지 않고 :우리 땐 죠리퐁이 밥이고 자갈치 과자나 고래밥이 반찬이었다. 선생님을 하면  학생들한테만 과자밥을 나눠줘야 하기에 보미와 나는 이 역할을 꺼렸는데 나영언니는 자처해서 선생님을 했다.) , 폴리스 아카데미에서도 서장님, 대훈오빠는 왕이나 소장님, 나영언니 옆에 앉아있는 역할을 했다.

보상이는 주인공 남자, 나는 늘 악역(내가 자처에서 이걸 하고 싶어 했다. 계속해서 불안을 조장하고 사건을 만드는 역할) 그리고 우리의 막내는 뭐든 시키는 대로 두세 가지 역할을 다 소화하는 멀티 우먼이었다. 예쁜 여자, 스파이 역할도 맡아서, 지훈이는 내시도 했다가 세자도 했다가 경찰관, 정의로운 소방관 닥치는 대로 다 했고. 분명 나, 우리 언니, 보미 기억 속엔 재밌는 추억인데 지훈, 대훈 형제와 보상이 기억엔 우리의 유년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어느 날은 중전 마마 역할을 한 우리 언니가 대훈오빠한테 과자를 내밀고 둘이 있을 때



-나영 : 자 드시지요, 

 라고 했더니

-대훈 : 아, 이게 뭐야? 애들 다 나갔잖아. 그냥 말해. 지금 뭐 하는 건데?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좀 더 컸을 때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깔깔깔깔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하기 싫었는데도 갈 곳이 없었던 어린아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놀이를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랑 나영언니, 보미 기억 속에 우리 셋은 아주 즐거웠는데. 지금도 친하고 가깝기에 우린 연락을 하는데 이젠 각자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고 바쁘게 저마다 연락이 뜸한 세 남자 친구들, 오빠의 속은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연락이 닿을 수 있고 또 언젠가 볼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마도 보상이는 선글라스에 멋진 역할을 좋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좀 재밌게 논 것 같은데 아닌가, 보상이가 『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하면 나는 늘 악역으로 『소머즈』를 하곤 했다. 늘 내시나 졸병, 부하나 다양한 역할을 한 지훈이가 어느 날은 언니에게 가서

-나도 좀 뭔가 여자친구도 만들어주고 극 중에서 결혼도 시켜줘요! 라고한 거 보면 지훈이도 빠져서 놀긴 놀았는데. 대훈오라버님은... ㅋㅋㅋㅋㅋ 


*지훈이는 내시였다가 세자로 책봉돼서 보미랑 결혼을 한 설정도 있었다. 그 당시 꼬마 임성한, PB수준의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ㅋㅋㅋㅋ

어마어마한 상상 속 놀이를 다 하고 놀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재밌었다. 


다시 꼬마 숙녀들, 작은 아씨 이야기.


난 어딘가 내가 조 같은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앞에 말괄량이가 붙는 것도, 머리를 한쪽으로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는 것도 그리고 독립적인 여성, 작가가 꿈이라는 것도 조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빠를 간호하기 위해 필요한 기차표 값을 구하고 여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가난한 살림살이에서 과감하게 머리를 자르고 그 돈을 엄마에게 건네줄 때 나는 너무도 뭉클했다. 하지만 조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싹둑 잘려버린 자기 머리카락 걱정에 이내 울어버린다. 이토록 현실적이며 묘한 이야기가 있을까. 무조건적인 헌신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했어도 자기를 위해 울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좀 울면 어때. 나는 이 부분이 제일 끌리고 매력적이었는데. 

조의 매력은 그녀가 말괄량이란 것도, 쾌활한 이야기꾼이라는 것도, 매력적인 로리가 끌리는 여성이란 설정도 아니다.


 '조'라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제 멋대로인 듯 하지만 독립적으로 살고 자유를 찾아가는 중에도 사랑 앞에선 불안해 보이지만 자기의 매 순간 불안한 감정 그대로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다. 


가장 든든한 엄마에게, 자기를 포용하고 가만히 안아주고 제일 좋아하는 베스에게. 어린 에이미에겐 늘 경쟁 구도를 가지고 있고 에이미에겐 속을 다 보이진 않지만. 메그, 베스, 따뜻한 엄마에게 언제든 그 감정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다. 가뜩이나 남자 같고 여성스럽지 못한데 머리까지 잘랐으니 난 이제 어쩌지? 훌쩍 울고 있는 조가 이 대사를 할 땐 정말 좋았다. 인간이 누구나 후회하고 옳은 일, 해야 할 일을 했어도 짜증 나고 후회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나를 좀 더 있는 그대로 살게 했다. 메그에게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말할 때도, 에이미에게 로리와 결혼한다는 걸 알았을 때 배신감에 차올랐을 때조차 조는 싸우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고 안아주는데 어쩐지 그 모든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 같아서 나는 여러 번 울컥했다. 

조의 대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봤다. 조의 생각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메그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을 거고 베스의 말처럼 세상이 바라는 가벼운 웃음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썼고 에이미와 로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마음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담았다는 것도. 


그래, 원래는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을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위노나 라이더가 조로 나오는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의 『작은 아씨들』도 재밌게 봤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 버전의 작은 아씨들을 콕 집어 쓰고 싶었다. 조가 쏟아놓는, 메그, 에이미의 대사조차 어마어마하다. 말이 없는 베스도 대사가 많지 않지만 그녀만의 힘을 보여준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거든. 조용하고 허영심 많아 보이는 것 이건 다 이미지로 꾸며놓은 착각일 수 있다. 그녀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조 한 명에만 조명이 맞춰진 게 아니라 영화는 네 명 각자가 개성 있고 멋진 여성이라는 걸 보여준다.  바비의 개봉 전에 꼭 다시 영화 리뷰에 대해 써봐야겠다. 



 Note. 이미 다 떠들었는데 나에게 '본격적'이란 의미는 뭘까요?ㅎㅎㅎ






네 자매 중에서 둘째인 조가 바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한다. 작가 자신도 네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 병원에서 간호병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가난한 살림의 보탬이 되고자 가정교사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또 언니를 도와 열심히 동생들도 돌봤겠지. 영화와 다른 점은 슬프게도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결혼을 안 해서 슬프다는 게 아니다. 그게 뭐 슬픈 일도 아니고. 실제로 루이자 역시 통속 소설, 세상이 가볍게 흥미를 끌만한 소설을 발표했다가 작은 아씨들 성공으로 어엿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가 됐을 텐데 영화 속 조가 끝까지 로맨스는 집어넣고 싶지 않아 하는데 그러면 혼자 살 조의 인생을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독자를 위해서 결혼을 시킨 것처럼 이 모든 것까지 결국 자신의 이야기는 아닐까, 해서 나는 그게 슬프다고 느꼈다. 작은 아씨들 이후의 후속 작품, 플럼필드 학교에서의 이야기 '조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는 자신과  언니의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는 '사랑의 학교'라는 이름의 만화 영화 시리즈로 이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졌는데 거기엔 조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이자 엄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또 다른 결말로 가야 하는 것처럼 '결혼'이라는 게 당시에는 치러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었을지 모르지만 또 덕분에 다른 재밌는 후속 시리즈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선 좋기도 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작가 본인이 조의 대사처럼 끝까지 결혼을 안 했다는 점이 인상 깊고 멋있게 느껴졌다. 작지 않은 여자들인데도 제목이 작은 아씨들이라니, 아씨라는 생소한 단어가 내게 웃음이 아닌 귀여움으로 다가왔다면 순전히 이 책 때문이다. (얼마 전 『아씨 두리안』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웃음이 터졌지만. ㅋㅋㅋ 아, 오늘 두 번째 등장하는 PB작가님.ㅋㅋㅋㅋ)








글 쓰는 오늘 Season13 우리들의 글루스 III
마지막
열 번째 일기


▶▷▶ 10일간의 일기를 마친다. 어느 때보다 바쁘고 분주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너조이님의 커뮤니티 글 쓰는 오늘의  우리들의'글루스' 덕분에 나는 또 수많은 쓸거리들을 떠올렸고 전부 생각한 것의 반의 반도 못썼지만 오늘은 뭘 쓸까 하고 떠올리는 순간들이 있어서 참 좋았다. 더 구체적으로 쓰고 싶은 내용들은 따로 작가의 서랍에 저장도 해놓고. 늘 쓸거리가 없진 않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쓰다 보니 불편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콩다콩닥 쫄리는 순간도 많았지만 '매일'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쉬지 않고 날마다 나를 떠올리고 돌아본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여정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는다. 글쓰기가 쉽고 어렵고 편하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상을 살고 다시 노트북을 켜고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서 끊고 발행을 눌러도 되는데 지금이 아니면 못쓰고 앞으로도 안쓸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앞으로 더 써달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떠오르고 말을 걸고 있었다. 글루스 글루스가 나를 또 움직이게 했다. 

아디오스, 또 만나요. 

한 달의 공백을 깨고 먼데이 마더스 때문에 브런치를 다시 켰는데 글루스는 나를 멈추지 않게 한다. 

계속 쓰고 일단 쓰라고 말한다. 


작은 아씨들의 단단한 연대가 글루스 안에도 있었다. 나를 감동시킨 멋진 분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언니, 언니, 언니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