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공간
코로나 이후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자연환경, 대기오염과 같은 거시적인 환경부터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인테리어나 가전, 주방기기까지 광고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이 바뀌었다. 힘든 상황을 겪으면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미적 감각도 없거니와 잠자는 시간을 빼면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이사만 13번을 했던 터라, 지금 사는 집에 크게 애정이 없었다. 나에게 집은 잠시 거쳐 가는 곳이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시선이 집에 머물렀다. 집을 재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읽은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책의 영향이었으리라.
가장 먼저 옷장을 비웠다. 매일 입는 옷은 교복처럼 정해져 있는데, 옷장에 안 입는 옷이 너무 많았다. 아끼는 옷, 언젠가는 입을 것 같은 옷, 사놓고 몇 번 안 입은 옷, 여행지에서 산 특이한 옷, 자주 입진 않지만 한번 입으면 주위 시선을 끄는 옷, 사이즈는 안 맞지만 재질은 좋은 옷, 남 주기 아까운 옷이 많았지만 한 계절 동안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렸다. 다 버리고 나니 옷장 하나가 통으로 비었다. 옷장도 버렸다.
이어서 책을 버렸다. 책장에 가로세로 겹겹이 쌓여있던 책 중에 3개월 후에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팔거나 버렸다. 책은 서점에서 읽을 때 가장 집중이 잘 됐다. 욕심에 사놓고 집에서 안 읽는 책이 반 이상이었다. 책을 버리자 책장에도 장식장으로 활용할 만큼 공간이 생겼다. 서류 더미, 화장품, 보석, 냉장고, 주방 그릇, 잡동사니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씩 버릴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버리기 전에 많은 물건을 마주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버리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었다. 집을 다 비우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다.
버린 후 집이 넓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습관의 관성으로 예전처럼 채워질 것 같았다. 공간을 바꾸고 싶었다.
이사 후 집안 구조를 바꾼 적이 없었다. 시간을 들여서 가구 배치를 고민할 만큼 집에 관심이 없었다. 건강식이니, 운동이니, 휴식이니 몸을 챙기면서도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내 몸만큼 신경 쓰지 못했다.
처음 이사할 때는 별 고민 없이 가구를 벽으로 붙여서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집에 원하는 것들이 생겼다. 이사 전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밖에서 만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공간이 넓을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거실을 북카페 분위기로 바꿨다. 물건이 없는 것만으로도 인테리어 반 이상이 완성되었다. 침실에서는 잠만 잤다. 푹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침대를 방 한가운데로 옮기고 커튼과 침구류를 초록색으로 바꿨다. 원하는 방향이 분명해지면서 과감하게 행동에 옮겼다.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이사를 온 기분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바꾸는 과정이 힐링이었다. 집을 더 아늑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서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주변 환경에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만으로 나를 아껴주는 기분이 들었다. 집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의식주가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이 내 가치관과 생활 방식과 어울릴 때 느껴지는 편안함과 그 이상의 따뜻함이 있었다.
잘 산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별 고민 없이 남들처럼 살 때는 사는 방식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맞는 방식인지를 점검해보면 비울 것과 조절할 것들이 눈에 보인다. 조금은 상식에서 벗어나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내린 방식에 따라 사는 편이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둘러보면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부터라도 주변과 더불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