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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09. 2021

취미로 친구 만들기

함께하는 취미

 오랜만에 서해안에 왔는데 바다가 참 예쁘다. 이 곳은 6시간 간격으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데, 볼 때마다 매번 다른 광경에 지루할 틈이 없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밖을 보면 드넓은 갯벌이었다가, 잠시 숨을 돌리면 어느새 파도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파도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도 들어오고 나갈 때가 있는 것 같다.


  졸업 이후로 학창 시절 친구들과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멀어졌다. 취업 전에는 불확실한 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연락하기 꺼려졌고, 취업한 후에는 바빠서 만날 여력이 없었다. 어쩌다 만나도 사는 모습이 달라서 과거 얘기 말고는 대화거리가 없었다. 정말 친했던 친구들이 아니면 관계가 멀어졌고, 친한 친구들도 예전보다 멀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미안함과 아쉬움이 컸다. 함께한 추억과 서로를 잘 안다는 사실 때문에 멀어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어렸을 때 만난 친구들만큼 깊어지기 어려운 것도 한몫했다.


  취미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지만 중요한 관계로 여기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 만난 사람들과는 한때 깊은 관계였다가도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관계도 소멸하곤 했다. 관계가 끝나는 타이밍을 읽지 못하거나 내가 더 원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했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는 업무로 엮여있으면 완전히 마음을 열기 어려웠다. 취미생활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취미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잠깐 만나더라도 말이 통했다. 같은 취미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취미 외에도 생활환경이나 경제 수준, 관심사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별 기대 없이 말했다가 생각하지도 못한 코드가 통할 때가 많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취미 얘기 외에도 할 말이 많았다. 


  취미로 만난 사람들과는 이렇다 할 이해관계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재미있었다. 나를 설명하거나 멋있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심각할 게 없었다.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만난 사람들이었다. 농담이 오갈 때도 오해나 판단이 적었다. 목적이랄 게 없어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었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약점이 드러나도 괜찮았다. 사람들 속에서 깔깔거리고 웃다 보면 어릴 때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취미라는 매개체로 연결되면서 교류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한때 친구의 기준은 같은 나이었지만, 취미생활에서 나이는 크게 대수롭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 즐겁고, 대화가 잘 통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잘 맞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연령대가 20대부터 50대까지 늘어났다. 회사에서 부장님과 단둘이 하는 회식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지만, 취미로 만난 사람들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10살, 20살씩 차이가 나도 코드가 맞는 사람과는 얘기를 나누면 몇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해졌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면 순수함과 열정에 나까지 기분이 상쾌해졌고, 나이가 많은 분들은 생각지도 못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며 존경심이 일어났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부담에서 한결 가벼워졌다.


  취미가 바뀐 후에도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관계는 남았다. 취미활동 전후로 밥 한 끼 먹는 관계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말에도 만나고, 같이 여행을 다니고,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되었다. 


  인연에도 시기가 있고 흐름이 있다는데, 겁이 많은 나는 만남과 헤어짐이 어려웠다. 두려움에 막연히 마음의 벽을 세우고 사람들을 지레짐작했는데, 새로 만나는 인연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는 법을 취미로 배웠다. 편견을 내려놓으면 좋은 사람들이 보였다.


  취미로 사람들을 폭넓게 경험하면서 친구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또 어떤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내 곁의 사람들도 언젠가는 멀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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