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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28. 2021

일상으로 돌아오기

방황 후에 돌아보는일상, 그때의 시간

 휴가 후 일상에 적응하는 일은 낯설다. 좋은 경치를 보면서 쉴 때는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휴가의 감흥은 금방 사라진다. 휴가 동안 쌓아놓았던 회사 업무, 청구서 처리, 집안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면, 쉬었던 기억은 오래 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취미생활도 휴가와 비슷했다. 취미생활에 재미를 붙이면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시간을 잊을 만큼 몰입할 때면 마음속의 불꽃이 살아나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 취미가 일상보다 더 현실 같았다. 몇 달 동안 애써서 준비한 살사 공연을 마치거나, 며칠간 온종일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요가 여행이나 명상 수행을 다녀온 후에는 강렬했던 순간만이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어떤 취미라도 경험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었다.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취미로 달콤하고 황홀한 경험을 할수록 일상생활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별일 없는 일상이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졌다. 일상에서도 취미의 어떤 순간처럼 삶이 고양되고 충만해지는 느낌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취미는 파티 같고 현실은 하기 싫은 집안일 같았다. 취미를 쫓는 한, 일상은 비극이었다. 


   일상이 시시하게 느껴질수록 더 많이 채우고 싶었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 줄 새롭고 자극적인 활동을 찾아다녔다. ‘이번엔 또 다를까’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 눈을 돌렸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 보려 새로운 길로 갈 때도, 옆길로 샐 때도,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길의 끝에서 늘 답답했다. 앞으로 가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취미에 집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현실을 잠시 벗어나는 것이었다. 취미가 현실이 되는 순간 현실의 문제는 취미에서도 드러났다. 결국, 취미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루 1시간 꾸준히 운동해도 평소 습관이나 자세에 신경 쓰지 않으면 몸 상태는 예전처럼 돌아갔다. 여행 중에는 편견을 내려놓고 열린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사람들과 소통할 때 오는 즐거움을 경험했지만, 여행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기 전까지 여행은 도피처에 불과했다. 책을 읽으면 잠시나마 세상이 이해되는 것 같았지만, 책의 내용을 많이 기억하는 것보다 조그만 것이라도 일상에 적용할 때 삶이 충만해졌다. 현실과 분리된 경험은 일시적인 체험에 불과했다. 


  경험과 행동이 일치할 때 삶이 만족스러웠다. 좋은 체험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순간의 경험을 삶에 녹여내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꿈같은 순간에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집중이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의지였다. 한때의 경험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경험으로 발견한 좋은 것들을 평소에 가까이하고, 좋은 느낌과 생각을 누리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삶이 농밀해졌다. 취미의 황홀경 끝에서 돌아올 곳은 일상이었다. 취미의 완성은 일상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나를 보살핀다는 것은 바쁘게 좋은 경험을 찾아다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세상과 부딪혀서 내 것을 하나씩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가까이하면 자연스럽게 생활방식과 습관, 관점이 되었다. 평소에 자주 하는 생각, 행동, 습관, 버릇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일상이라는 꽃밭을 가꾸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줄었다. 나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평범한 일상에 좋은 것들을 하나씩 수집하고, 깊이를 쌓을 때 삶이 고양되었다. 


  누구에게나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본능이 움직이는 방식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워서 어떨 때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삶을 확장하거나, 실패나 좌절 후에는 일상을 틀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잘 산다는 건 일상을 벗어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이후에는 일상이 단단해지는 확장과 수축을 꾸준히 반복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꿈과 현실이 멀어졌다 합쳐졌다 하면, 일상을 좀 더 사랑하게 된다.


  취미는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취미를 통해서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늘어나면, 삶이 더 아름답다. 주위에서 마냥 좋다고 들었던 것들을 시간을 들여서 몸으로 체험하면 나만의 의미가 생긴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면 사람의 결이 생기는 것 같다. 


  만남은 반갑고 헤어짐은 아쉽지만, 취미는 인생의 좋은 동반자이다. 취미와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나는 단조로운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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