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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Jan 24. 2021

스마트폰 초집중 잔혹사

내 중독의 본질은

고 3 때 첫 스마트폰을 가진 후로 손바닥만 한 우주를 지루하게 느낀 적 없었다. 절대 아니라고 정색하는 게 중독의 핵심이라면, 매번 인정하는 나는 중독자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도 나보다 아이폰을 오래 만지진 않았을 것이었다. 카카오톡 개발자도 나보다 많은 말풍선을 생산하진 않겠지 싶었다. 스마트폰 때문에 새끼손가락이 완전히 휜 것을 보며 문득, 아 이거 큰일인가? 생각했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도 폰 중독의 양상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작년 10월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밥상머리 예절과 대화 태도를 지적받았다. 애들이 자꾸 내게 폰 좀 치우라는 것이었다. “나 폰충 아니거든?” 하며 스크린 타임을 보면 일일 평균 사용량이 10시간을 훌쩍 넘어 있기 일쑤였다.


폰을 끄거나 끊는 식의 극단적 대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은 내가 폰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226g, 256GB, 180만 원짜리 호화 스펙을 가진 폰과 ADHD인 나는 정반대인 듯 한 몸이었다. 폰은 다채롭고 난 산만했다. 스마트폰의 물성과 ADHD의 특성은 서로를 나쁘게 만들며 강화되었지만, 폰 없이는 더 불안한 내가 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스마트폰이 주는 일상적 과부하를 극도의 생산성으로 상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실제로 뭔가를 생산하는 게 가장 나았다. 스마트폰을 지켜내면서 모든 관성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내겐 브런치였다.


작가 승인 후, 부지런히 글을 쓰며 원하던 종류의 생산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폰충(별명)’에서 작가 지망생으로 승격된 내가 좋았다. 일단 쓰자고 마음먹으면 아무 생각 없이도 손가락이 춤을 추었다. 근데 매번 훌훌 써지니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험 상 일이 이 정도로 잘 풀리면 실은 거하게 잘못되고 있거나 나도 모르는 대가를 뜯길 확률이 높았다.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폰 자판을 두드리던 어느 날, 마침내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난 탭(Tap) 중독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 목적은 스마트폰 속 대화나 콘텐츠가 아니라, 폰을 ‘톡톡 치는’ 행위 자체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손가락이 꼬물대는 걸 눈으로 좇으며, ‘톡톡톡톡톡톡......’들을 구경하고 싶은 것이었다. 글이 빠르게 써지는 원리도 ‘손을 꼼지락거리고 싶다’는 불굴의 집착이 작문 활동을 지탱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문장을 신속히 조달해야 쓸 말이 끊이지 않고, 합법적 ‘톡톡톡톡’도 연속 발생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톡톡’과 비슷한 안심을 주는 행동들이 몇 개 있었다. 셀프 네일과 큐티클 제거, 손톱 뜯기, 손목시계 조작 등이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손에서 절대로 눈을 떼지 않으며 완성하는 행위’라는 거였다. 이게 다 무언가 싶어 내 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마음이 휙 들뜨는 게 느껴졌다. 인식하고 나니 더 확실히, 스마트폰을 두드리거나 네일에 몰두하거나 뭔가 조물락거리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ADHD 약물 치료를 시작할 땐 폰 중독이 저절로 낫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약으로 보강한 집중력으로 스마트폰에 초집중하는 내가 있었다. 폰에도 집중 못하던 시절이 폰에만 집중하는 행위로 진화한 것이었다. 사실 그건 진화처럼 보이는 퇴화였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 연락처나 내 계좌번호를 못 외우는 식으로 멍청해졌다. 그럴 때도 손가락은 끊임없이 6.5인치의 화면을 톡톡톡톡 두드리는 중이었다. 이제야 내가 왜 <어비스리움> 같은 게임에 빠져드는지, 집에 3대의 컴퓨터가 있어도 책상에서 쓰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컴퓨터 자판은 두드리기 더 좋았지만, 손끝과 시선이 불일치하기에 안 끌리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따개비처럼 붙이고 산 세월도 어느새 10년이었다. 강산이 저절로 바뀐다는 10년 동안 강산만 뒤집히고 폰과 나 불굴의 관계성은 전복되지 않았다. 폰 중독의 세부 내역을 깨달은 지금도 아는 것만으로 무엇이 바뀌진 않는다. 폴더폰도 생각해 봤지만, 나는 버튼을 꾹꾹 누르는 것도 좋아하기에 별 소용없어 보였다. 게다가 회사와 직무 성격 상 모바일 관여도가 높아 스마트폰이 필수였다.


내 본질적 초조함과 스마트폰 사이의 연관을 깨닫자 이 편리한 기계가 납덩이처럼 느껴지니 웃긴 일이다. 내가 이미 출간 원고 퇴고조차 폰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도 약간 웃기다. 그래도 ADHD 특유의 안절부절 핸디캡 덕분에 글쓰기 세계에 안착한 것은 개중 기쁜 일 같다. 비루한 개선이지만, 요즘은 필수 어플 외 알림을 모조리 끄고 다닌다. 폰을 스스로 내려놓은 시간에는 폰의 부름을 받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하나하나 고쳐가다 보면 팔순쯤에는 폰 없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속세에서 템플 스테이 비슷한 생활을 이뤄낼지, 세상에서 제일 힙한 스마트 할머니가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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