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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Oct 12. 2020

ADHD 약물치료 후기 (2)

ADHD 약물치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ADHD 진단은 원래도 뒤집혀있던 내 인생을 한번 더 뒤집어 놓았다. 당시 난 세상에 크게 꺾인 적 없던 25세 철딱서니에 불과했는데, 알약 몇 개를 무기처럼 쥐고 인생관과 자존감, 자아 인식, 생활 습관 등에 수반되는 모든 변화를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외롭게 실패했다는 사실은 치료의 시행착오로 이어졌다. 병원에 다니면서도 복용 지시를 무시해 치료 효과에 교란을 만들었다. 그때는 그런 기분이었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는데, 당시 난장판을 쳤던 것 때문에 지금까지 손해가 막심하다.


혹시 ADHD 치료를 고민 중인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과거의 나 같은 실수를 꼭 피해 갔으면 좋겠다. 2편에 쓸 내용은 과거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자, 그때의 나처럼 여러 가지 망설임을 느끼는 분들에게 감히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ADHD인 것 같은데, 정신과에 가기는 싫다면?



그럼 안 가면 된다. 왜냐면 ADHD한테 억지로 뭔가를 시켜봤자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성은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당신의 ADHD가 발각을 거부한다면 (일단은) 존중해주는 게 낫다. 병원에 가서 어찌어찌 검사 후 약을 탄대도, 본인의 납득과 노력과 지속성이 없으면 치료 효과도 미비하다.


ADHD라면 언젠가 불편이나 호기심이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을 이길 때가 올 것이다. 차라리 그럴 때 조금 편하게 방문하는 걸 권하고 싶다. 나는 미친 듯이 코너에 몰린 상태로 병원을 찾는 바람에 치료에 수반되는 당연한 과부하들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했다. 술과 연애와 약물이 어우러진 암흑기로 귀중한 20대를 낭비했다.


개인적으로, 자기가 얼마나 ADHD 같은지 체크하는 것보단, 정신의학 권위자에게 ADHD라는 확답을 받아도 괜찮을지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예상했기에 큰 충격은 아니더라도, 새삼 혼란스럽고 후폭풍이 거세다.



ADHD인 것 같은데,
부모님이 이해를 전혀 못하신다면?
or 정신과 치료를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본인에겐 치료 의지가 확고한데, 장애물이 부모님 뿐이라면 재끼고 가야 한다. 부모님은 정말 소중한 존재지만 그뿐이다. 다 책임져주실 것 같아도 인생이 진짜 좆됐을 때 최초 책임과 최대 감당은 전부 본인의 몫이다. 나라면 자식이 정신과에 가는 걸 싫어하시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부터 알아볼 것 같다. 이유가 타당하면서 대화가 통하면 설득하고, 아니면 즉시 포기하고 살길 따로 찾는 게 낫다. 내 논리로 나 자신도 납득시키기 힘든 게 ADHD의 삶인데 부모님까지 완벽히 설득하자면 너무 힘들다. 부모님이 응원해 주시면 심정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몹시 좋겠다만, 문제가 터진 ADHD에게 최고로 급한 건 각성 조절 수단이지 부모님의 승인이 아니다. 내가 불행해지는 것 자체가 효도의 본래 의미를 해치는 거라 생각하면 하얀 거짓말에 죄책감이 덜 든다. 만약 부모님이 못 가게 해서 병증이 늦게 발견되면 필연적으로 부모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일단은 한 번 가보았으면 좋겠다.



ADHD 약물 치료,
만족하는지?
아니면 후회하는지?



결과적으로 만족하지만 후회할 때도 있다.

 

 에 콘서타와 스트라테라를 복용하는 동안 겪은 순기능과 부작용을 서술해 놓았다. 간사하지만 순기능이 돋보이는 순간엔 만족하고, 부작용 때문에 힘들어지는 순간엔 후회한다. 나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일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낮엔 약 기운에 만족하다가도 혼자 쉬는 밤엔 높아진 민감도에 짜증이 난다. 어쩔 땐 나 스스로의 1차적인 감정보다 다른 걸 신경 쓰는 사람이 된 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치료를 결심한 후 들인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비용 대비 보잘것없는 성장이나마 스스로 거두어서 기쁘다.

약을 주는 건 선생님이지만 그 선생님을 선택한 건 나다. 약효가 나를 움직이지만, 약을 먹기로 결정하는 건 매 순간 나의 판단이다. 약물 치료에는 옳은 선택이 반복되고 있다는 안정감이 있어서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치료를 추천하지 않는 사람?


이것은 의사 선생님의 영역이라 내가 판단하기 조심스럽지만, 술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하길 바란다. 개인적 경험 때문에 하는 얘기이다. 술과 ADHD약과 항우울제를 같이 먹으며 살았을 때, 나는 너무너무 슬퍼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당시엔 실제로 힘든 일이 있어서 그 때문인 줄 알았으나 비정상적인 복용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상황과 내 판단이 동시에 안 좋았다. 약을 안 먹으면 불안하고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와서 둘 다 털어 넣기 시작한 건데 인생은 빠르게 나락으로 치달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약을 타러 가면, 어차피 의사가 반드시 끊으라고 말할 것이다. 근데도 술을 끊지 못하면 부담 없이 병원에 다니기 위해 혹은 치료자의 실망을 피하기 위해 의사를 속이게 된다. 나도 신나게 속였고 이 점은 아직도 나 자신과 담당 원장님께 두루 죄송하다.

치료를 잘못 지속하는 만큼 의미 없는 비용도 늘어난다. 심할 땐 하루에 15알 넘는 약을 먹어야 했는데 복용법을 지키지 않아 그 비싼 약들이 다 도루묵이었다. 내 간은 술과 약 세례에 돌아버리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 슬픈 일이 아무한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ADHD 병원 진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일반 병원이랑 비슷한 것 같다. 문 열고 들어가서 접수하고 기다리면 이름을 부른다. 진료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인사하고, 2주 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말에 대답한다.

 

“회사가 너무 바빠졌고, 어, 또....... 하튼 바빠용”

“회사 일은 왜 바빠진 건가요? 일이 많아졌나요?”

“아, 갑자기 누가 그만두셔서 당분간 그 일을 제가......”


이런 식이다.

 

선생님은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잠을 잘 자는지, 술을 절제하는지, 뭔가 충동적인 사고를 치지 않았는지 등등을 자유롭게 물어본다. 그리고 엄청 정석적이라 도무지 귀에 붙지 않는 잔소리들을 하신다.


“우리 몸엔 리듬이 중요해요. 리듬을 깨트리지 마세요.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적절한 운동으로 신체의 활력을.......”


그러면 나는 토하는 까치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약간의 반성, 약속 하여튼 알아들었음을 피력한다. 내 경과에 따라 약 조절이 이루어지고, 나가서 수납과 처방 완료 후 귀가한다.


진료에 어려움이나 단점은 없는지?


왜 없겠는가? 이건 돈도 많이 들고 귀찮다. 나의 경우 격주 토요일로 병원에 가는데 매번 토요일 오전을 비우는 게 얼마나 성가신지 모른다. 예전에 무작정 발길을 끊었다가 혼쭐난 적이 있어 잘 가긴 가지만, 싫은 일인 건 여전하다. 게다가 ADHD엔 완치랄 게 없다. 그러니 치료에 기약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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