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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Jan 11. 2022

퀴어한 것들에 대한 퀴어한 글, 『원본 없는 판타지』

  흔히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부르는, 2015년 즈음부터 메갈리아 사태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한국 사회를 휩쓴 페미니즘 붐 이후로 책, 영화, 드라마, 예능, 전시, 공연 등을 논할 때 페미니즘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연관된 작품의 논의는 양극단으로 치닫기 일쑤다. ‘페미니즘’ 자체를 경멸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혐오 세력에 의해 ‘페미 묻은 작품’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페미니즘’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여성주의자들에 의해 숭배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오혜진은 ‘서문을 대신하여’에서 이런 현상에 긴급히 응답하기 위해 이 책이 기획되었다고 밝힌다.

  2018년 1월, 10회에 걸쳐 진행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강좌를 바탕으로 작성된 열 편의 원고에 책을 기획하면서 추가된 네 편의 원고를 합쳐 총 14편의 글을 엮은 『원본 없는 판타지』는 공식적인 역사에서, 그리고 진지한 학계에서 배제되곤 하는 문화사의 변두리를 조명한다. 너무 저급하거나 사소하다고 여겨져서 연구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또는 이미 페미니즘적 관점의 연구를 통해 합의된 결론이 있다고 여겨져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 문화적 콘텐츠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새로이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의 기록이다.

오혜진 기획, 『원본 없는 판타지』, 후마니타스(2020).

  강좌의 제목이자 책의 부제인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명료하게 담고 있다. 그에 반해 ‘원본 없는 판타지’라는 제목은 다소 추상적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집필한 열네 편의 글은 각기 다른 특정 문화 콘텐츠를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문화비평이므로, 일관된 흐름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와 학계에서 소외된 대상을 글의 주제로 삼는다는 점 외에도,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유사한 목표와 방향을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공통된 주제의식을 함축한 표현이 ‘원본 없는 판타지’이다. 간결하고 일견 두루뭉술해 보이는 제목에는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이 내포되어 있다. ‘문화’, ‘페미니즘’, 그리고 ‘역사’라는 키워드가 ‘원본’과 ‘판타지’라는 단어 사이의 틈에 숨어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는 우리의 욕망을 담은 환상, ‘판타지’를 구현해 내는 모든 종류의 형식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판타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문화비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장 흔히, 쉽게 취하는 방식은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비-이성애자,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위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성적 배치를 뒤집는 것이다. 오혜진을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은 이와 같은 기계적 뒤바꿈을 페미니즘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취해야 하는 전략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한다. 단순히 성적 배치를 뒤바꿈으로써 페미니즘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면 기존의 지배질서와 전통이 ‘원본’이고 그에 속하지 않는 비규범적 욕망과 실천들은 ‘원본을 이탈한 무언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비규범적 욕망과 실천들은 ‘원본’에 대한 ‘모방’일뿐이거나, 새로운 ‘원본’을 발명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을 넘어서, 원본에 얽매이지 않는, 원본이 ‘없는’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원본 없는 비규범적 욕망과 실천들, 문화로 표현되는 판타지를 열네 명의 저자는 단순히 기록할 뿐만 아니라 역사화하고자 한다. 오혜진의 말을 빌리자면 “퀴어-페미니스트 모먼트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가 서술되는 방식 자체가 권력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 책은 ‘현대문화사’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지만 문화사라는 영역에 온전히 의탁하지 않은 채 ‘역사’ 그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역사화’를 목표로 하는 모순적인 의지와 실천의 산물이다.

  제목과 본문의 이해를 돕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서문을 대신하여’를 제외하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식민지기와 냉전시대에 걸친 근대시기를 다룬다.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정식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비규범적·비’정상적’ 이벤트, 스캔들, 가십 등을 살펴본다. 식민주의나 냉전 체제로 설명되고 기록된 한국 근대사에 포함되지 못하고 변두리에 소외된 여성, 동성애자, 조선인, 하층계급, 크로스 드레서와 같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신문기사, 영화, 국극, 유흥업 등을 통해 조명한다.

  2부에서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민주화와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적·문화적 경계가 느슨해지던 시기에 사회에서 승인하는 전통적인 ‘정상성’과 바람직하게 여겨지던 가치에서 이탈한 여성들의 행보를 다룬다. ‘톰보이’로 불리던 여성 연예인들과 그들의 여성 팬들, 하위문화로 취급되던 여성독서사, 그리고 순정만화를 그리고 읽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논의가 여성의 이야기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2부에서 다루는 문화적 현상의 주 생산자와 소비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2부는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 민주화·자유화 시대의 새로운 판타지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고 볼 수 있다.

  3부와 4부는 모두 포스트페미니즘 이후, 1990년대에서 2010년대의 문화 콘텐츠의 변화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바라본다. 3부에서는 ‘신파’·’막장’ 영화와 드라마, 2010년대 한국 역사영화, 미러링과 예술전시, BL과 ‘여성서사’를 살펴본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각종 문화예술 분야를 접할 때 여성들이 취하는 태도와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4부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이 등장한 SNS, 팟캐스트, 디지털게임과 같은 매체와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문화 기획을 신자유주의에 기댄 포스트페미니즘을 통해 살펴본다.


  ‘페미니즘 리부트’와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인식의 틀이 되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취해야 할 전략에 대해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문학, 영화, 연극, 전시와 같이 전통적인 문화예술 분야로 여겨지는 장르에서부터 TV드라마, TV예능, 광고, 팟캐스트, 디지털게임, SNS처럼 비교적 최근에 우리 일상에 자리잡은 매체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화 콘텐츠는 페미니스트들간의 논쟁을 가장 활발하게 촉발시키는 주제 중 하나이다. 『원본 없는 판타지』는 이성애중심의 가부장적 가치를 반영한 기존의 주류 문화비평에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기존의 여성주의적 관점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페미니스트 시각’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흐름이 아니고 여성에만 국한되는 운동이 아니며 보는 각도에 따라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문화 콘텐츠 사례에 대한 신중한 분석으로 보여준다. 어떤 영화에, 광고에, 게임에, 책에 ‘페미 사상을 담은’, ‘페미라면 소비해야 할’ 또는 ‘페미라면 분노해야 할’ 작품이라는 낙인을 찍고 이를 공유하는 일이 너무도 쉽고 빠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서문을 대신하여’에 언급된 “퀴어-페미니스트 모먼트의 역사화”나 “’역사화’가 불가능하거나 ‘역사화’되기를 기어코 거절하는 것들을 ‘역사화’하려는 모순적인 의지와 실천의 산물”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퀴어’라는 용어의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책의 목표를 “퀴어-페미니스트 모먼트의 역사화”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 설명의 부재로 인하여 책이 딛고 선 기반이 충분히 탄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글의 맥락과 최근 퀴어 학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퀴어’ 용어의 정의를 고려해 볼 때, 그리고 본문에서 한채윤이 정의한 퀴어(“이분법적 성별규범에 맞춰 살라고 강제하는 사회적 요구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자기다움’에 두는 것, 좀 이상하다고, 남들과 다르다고 끊임없이 지적을 받아도 굴하지 않는 것, 즉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자 행동, 그리고 힘”) 개념을 볼 때 ‘퀴어’가 앞에서 언급되는 “비규범적 욕망·실천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퀴어’ 개념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 선언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페미니스트’가 아닌 ‘퀴어-페미니스트’ 모먼트를 다룰 것임을 천명하는 것은 『원본 없는 판타지』에 참여한 저자들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과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퀴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페미니즘의 외연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퀴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왜 그 용어를 사용했는지 설명했다면 이를 모두 함의한 더 풍부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화’ 또한 ‘퀴어’와 마찬가지로 명시적인 정의 없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역사화’가 불가능하거나 ‘역사화’되기를 기어코 거절하는 것들을 ‘역사화’하려는 모순”이라는 표현을 추상적으로 만든다. ‘역사화’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왜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들이 ‘역사화’할 수 없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책의 저자들은 기어코 그것들을 ‘역사화’하려고 하는지, 그 시도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서문을 대신하여’가 각각의 다른 저자가 집필한 열네 편의 글을 소개하고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만큼 더 촘촘하게 쓰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각 부와 장이 내용적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60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선뜻 책을 집어 들기가 망설여진다면 목차를 훑어보고 읽고 싶은 장만 골라 읽는 것도 이 책에 대한 괜찮은 입문 방식이다. 하지만 단 한 장만 골라 읽더라도 ‘서문을 대신하여’만큼은 반드시 읽기를 권한다. 각기 다른 현상과 콘텐츠를 다루는 본문의 글 속에서 수월하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하며 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한국 현대‘문화사’를 읽어내는 글을 책으로 내고자 했는지 소개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면 각 부마다 가장 흥미가 가는 장 하나씩을 골라 순서대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순서대로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본문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옛날 여성·퀴어의 삶이 지금 여성·퀴어의 삶과 얼마나 다르고 비슷한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고 그로 인해 여성·퀴어의 삶의 경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된 역사에서 그들의 목소리와 문화,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지워져왔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권하는 독서방법은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찬찬히 완독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 또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라는 부제에, 제목과 부제에 이끌려 살펴본 목차에 흥미를 느낀 독자라면 누구에게라도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페미니즘에 막 관심을 가지는 독자라면 페미니즘의 놀라운 유연성과 확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대립에 피로를 느끼는 독자라면 신선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동안 진지하게 여겨지지 못했던 것들을 그동안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퀴어한 대상을 퀴어하게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들이 써 내려간 비공식적 ‘역사’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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