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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Dec 16. 202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요즘 차근히 읽어나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김초엽 작가의 데뷔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SF라는 장르 자체가 비교적 낯선 이 나라에서 출간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점에 가면 어디든 잘 보이는 곳에 올려져 있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시선을 끄는 책. 유튜브에서 종종 보곤 하는 오일파스텔 영상의 썸네일 같은 표지에, 표지 일러스트에 쓰인 색감과 비슷한 은은한 색으로 박 처리된 제목, 양장본 제본까지. 마치 캔버스에 그린 그림으로 책을 포장한 느낌이 든다. 이게 SF 소설이라고? 궁금증에 집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2019).

즐거워하며, 작게 두근거리며,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SF나 소설이나 단편집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라도 선물로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실은, SF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한테도 두어 편만 읽어보라고 흔쾌히 빌려주고 싶은. 왜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을 걸어오는 소설


  처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읽었을 때 약간의 의문이 생겼었다. 왜 표제작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일까? 다른 작품에 비해 특별히 큰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지게 된 질문이었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은 지금도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보다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나 '스펙트럼'이 처음 읽었을 때도, 지금도 더 좋다. 하지만 표제작의 제목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독자가 이 책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나는 영 감을 잡지 못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니? 우리는 지금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지 않은가? 현재 이룰 수 없는 일을 가정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나? 이 제목이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고, 고백하건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나서도 뚜렷하게 그 의미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뒤적거리며 책에 실린 작품들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이 제목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말하기에 앞서, 이렇게 의문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하게 만든 것 자체가 이 제목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뒤를 생략한 문장형의 제목은 잠재적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어떻다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품고 표지를 열어 만나는 첫 작품의 첫 줄은 이것이다.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소피'에게 내밀히 말을 걸어오는 서술자의 목소리는 비밀을 소곤소곤 전해 듣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금단을 깼다는 은밀한 고백은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제목과 첫 작품으로 말을 걸어온다. 

표지 때문일까 제목 때문일까, 유난히 하늘 사진과 어울리는듯하다

우리 세계에 뿌리내린 다정한 SF


  그래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에는 공통점이 있다. SF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웅장하고 비장한 이야기가 아닌, 다정한 이야기들.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희망의 여지만큼은 어떠한 형태로든 간직하고 있는. 더 구체적인 공통점도 물론 있다. 모든 단편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보편적 성공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좇는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공동체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 명예와 유명세를 얻는 것, 부를 축적하고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들보다 다른 가치를 우선시하는 여성들을 김초엽은 조명한다. 

  여기서 제목의 의미를 풀어볼 수 있다. 책의 제목은 본문에 다음과 같은 맥락 속에서 등장한다.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제목은 일종의 수사 의문문인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우주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처럼 무한한 가능성과 진보, 눈부신 성공을 담은 가정법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에 인류가 진보와 성공이라고 여기는 기술적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들이 정말로 "성공"인지 되묻는 질문이다. "인류의 외연을 확장"한 과학기술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했는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급하게 앞으로만 나아가는 동안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없는지.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이 까마득히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근미래라는 점이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볼 수 있는 소수자들은 지금의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낯선 미래 사회의 모종의 이유로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다. 김초엽 작가는 완전한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특정한 어떤 부분, 우리가 논의해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을 SF라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현시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가상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독자들을 미래로 데려가는 대신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데려온다. SF라는 장르로 다채로운 빛깔과 모양의 렌즈를 빚어내어 현실을 더 또렷이 볼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더 애정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김초엽의 세계는 이상적인 미래를 염원하는 야망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태어났으므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하고 거창한 포부를 외치기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말끝을 흐리며 빈 공간을 남겨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멈출 수 없다면," "우리가 비인간 동물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곁의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소외되고 마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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