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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Jul 19. 2021

비행기에 천 번의 소원을

우울한 이상주의자는 다시 꽃밭으로 돌아가고 싶다

  부쩍 어릴 때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도 병원을 걸어서 다녀오는데, 우연히 소리 없이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발견하고 깊이 묻혀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의식 위로 떠올랐다. 도대체 누가 알려준 것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어린 나에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원 모양으로 붙여 카메라 렌즈처럼 만든 뒤 지나가는 비행기를 천 번 찍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중학생 때도, 어쩌면 고등학생이 된 이후까지도 나는 비행기만 보면 남들 몰래 손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찍곤 했다.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인가 싶어 오늘 검색을 해보았는데 아무 결과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보편적인 믿음은 아니었던듯하다. 이런 이야기를 그 뒤에 그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옛날의 나는 그 이야기의 진위에는 (물론 그 자체가 미신이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비행기만 보면 정성껏 소원을 빌었다. 이제 천 번을 채웠을까, 내 관심사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소원을 빌며 같은 행위를 반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하지 않게 되었고 또 꽤 오랜 시간 그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나자 어떻게 그렇게나 완전히 잊고 지냈는지 놀라울 정도다. 심지어 특정 장소와 특정 소원까지도 생각이 나는데.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았을 2G 슬라이드 휴대폰으로 흐릿한 비행기를 찍기도 했었다. 오늘 두 번째 비행기를 보았을 때 찍어보려고 했지만 더위에 몸이 굼떠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비행기가 지나간 하늘사진만 담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어릴 때 무슨 소원을 그리 간절히 빌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어린아이의 변덕으로 소원은 자주 바뀌었겠지만, 생각나는 소원들은 어릴 때의 것일수록 더 애늙은이처럼 느껴져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는지 아니면 드라마나 책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한동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라고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또 한동안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라고 빌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와 그 후에도 다양한 소원이 있었겠지만,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둘이다. 나이가 들어 학업의 압박이 심해졌을 때는 점점 비는 소원이 현실적이고 작아졌던 것 같다. "대학을 잘 가게 해달라"던지, "수능을 잘 보게 해 달라"와 같은. 그리고 언젠가 아예 소원 빌기를 멈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슬픈 일이다. 긴 미래를 내다보던 큰 소원이 점점 줄어들어 코앞의 바람으로 축소되다가 결국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는 항상 미래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보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한껏 미래로 쏠려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실현되지 못할 미래의 이상적인 세상, 그 어떤 차별도 없고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어느 시대를 그린다. 아마 영원히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나의 가장 큰 꿈과 목표는 바로 그런 세상이다. 그게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내가 사는 동안 있는 힘껏 애써봐야 그 원대한 꿈에 얼마나 보탤 수 있겠냐만은,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보람찬 인생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에 현대 미국 문학을 전공하기로 택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와 동시대를 사는 젊은 작가들이 앞다투어 소외받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들을 읽으며 피가 끓었으니까. 지금 당장 눈앞의 세상은 비참하고 역겨운 일들로 가득할지라도, 인류애가 있기에 침묵하지 않고 싸워왔고 싸울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책을 쓴 이들과 나 모두. 나는 그런 이상주의자다.

  바삐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쉬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왜 불행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상주의자가 이상을 잊으면 불행해진다. 끊임없이 부과되는 과제들에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꿈이 작아지고, 결국 내가 왜 이 길을 택했고 이 공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잊었던 것이다. 잠시 급박함을 내려놓고 여유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린 시절의 나, 지상낙원 같은 그 미래를 언제나 마음에 품고 현재를 살아내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학업의 무게에 짓눌리기 전, 더 어릴 적 내가 빌었던 소원들은 이루어질까? 일부는 이미 이루어진 것도 같고, 일부는 이루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불과 몇 개월 전, 우울에 침잠하여 완전한 무기력 상태가 되기 전, 매일 명상을 하던 때에 빌던 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그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되게 해 달라"였다. 오늘 비행기를 보고 같은 소원을 빌었다. 다시 눈앞의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잠시 옆으로 밀어두었던 일에 몰두하게 되더라도 비행기를 찍으며 천 번의 소원을 빌던 나를 잊지 말자고 새겨본다. 비현실적이더라도 나는 그런 희망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이니까. 비행기를 볼 때마다 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무탈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그리고 비행기에 담아 날려 보내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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