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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Jul 16. 2022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무리 말해도 들려지지 않는 교사의 속사정

내게 이상적인 직장



올해 읽었던 책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노라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한다. 죽으려고 했던 순간 그녀는 죽음과 삶의 사이, 13과 1/2층 같은 곳에 놓이게 되는데 그곳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다. 그곳에는 노라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 수없이 꽂혀 있는데 원하면 노라가 후회하는 시점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만 신나는 일인가?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한 시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점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수없이 했으며 슬프지만 삶을 살아갈수록 그 공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 시점은 바로 고3, 수능 친 직후이다. 수능에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그렇게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1 지망에 아무거나 질러 봤고, 2 지망에 안전빵을 넣었고, 3 지망은 안될 것 같은 곳을 한번 써봤다. 결과는 1 지망 연세대 영문과 합격, 2 지망 X대 영어교육과 합격, 3 지망 Y대 약학과 후보 4번. 수능 후 상담에서 담임은 내게 재수를 해서 의대를 갈 것을 권했다. 당시 엄마를 너무나도 빨리 떠나고 싶은 나는 엄마에게 한 푼이라도 빚지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내 힘으로 엄마를 벗어나는 길은 2 지망이었고 두 번 생각도 않고 사범대를 들어갔다. 



대학교 수업은 19살의 내가 보기에도 허술한 구석이 많았으나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왜냐하면 나 같은 첫째 딸 똑순이들이 많아서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고비는 교생실습부터 오기 시작했다. 3학년 2학기에 1주는 초등학교, 1주는 특수학교에 실습 갔을 땐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문제는 4학년 1학기 4주간 했던 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아이들에 비해 17년 전 그 중학생 아이들은 순하디 순한 아이들이었지만, 한 달 동안 잔뜩 긴장해있었고 집에 오면 맥이 풀려서 바로 뻗어버렸다. 옷차림에 대해 제제당하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애늙은이 같았던 나는 코에 앞둔 원가족 탈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4년을 투자한 비용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해 임용고사를 합격하여 남자 중학교에 근무를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나의 길고 긴 부적응 역사가 시작되었다. 



글쓰기 동료 M이 나에게 어떻게 15년이 넘게 한 직장에 다닐 수 있냐고 물었다. 비결은 단순하다. 그냥 현실, 다른 말로 돈과 타협하면 된다. 그렇다고 물질적 보상이 많은가. 나는 교사 같은 돌봄 노동 종사자들이 대표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16년째 한결같이 소박한 내 봉급을 보면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두 번째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의대에 갔었더라면. 붙는 것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두 번째 상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재수한 끝에 03학번으로 의대생이 된 나는 4학년 때 정신과를 지망하게 되고 시험에 통과하여 정신과 의사가 된다. 이후 나는 상담, 명상, 종교 공부를 같이하여 약물적 치료뿐만 아니라 통합치료를 하는 의사가 되고 많은 우울증 환자들을 돕고 소명의식을 느끼며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을 번다… 그래 맞다. 나는 돈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안정성과 타협했다. 잘리지 않고 매달 일정한 봉급을 받는 계약과 타협했다. 원가족과 살면서 높은 불안정성(불화, 경제적 불안정)에 노출된 나에게는 잘리지 않는 안정된 미래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입을 삐죽이질 말아야지 왜 끊임없이 그 시점에 복귀하는가. 교사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수업, 두 번째 돌봄 노동(담임), 세 번째 행정 업무이다. 나는 수업이 좋고 재밌다. 하지만 담임은 적성에 맞지 않고, 행정 업무는 더더욱 맞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교사에게 어느 순서로 업무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담임 업무는 한 달에 15만 원을 주면서 극악의 노동강도를 부과하며(24시간 학부모, 학생 민원에 노출됨) 행정 업무는 교사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교사가 하고 있다. 지금 같은 학기말에는 행정업무만 맡다가 수업 준비를 거의 하지 못한다. 행정 잡무에 대해서 대부분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7월 15일 하루 동안 맡은 잡무를 읊어보겠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체험학습 티셔츠 주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티셔츠 주문 업체와 반나절 내내 실랑이 끝에 원하는 날짜에 택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티셔츠 도안을 결정하는데 쓸데없이 바빠 죽겠는데 부장이 폰트로 시비를 건다. 어째 저째 타협해서 시안을 올린다. 그리고 티셔츠 구매 품의(회계 결재)을 교장까지 승인받아야 하는데, 숫자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또 기안을 틀리고 부장에게 면박을 듣는다. (‘선생님은 항상 품의 올리기 전에 생각을 좀 하고 올리세요.’)  캠프 방역업체에 전화해서 방역 시점을 정한다. 그리고 8월 강사대기실 간식을 담고 다시 품의 기안을 올린다. 



하루 종일 잡무에 시달리고 나면 다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가서 첫 번째 책을 꺼내 들게 된다. 연세대 영문과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는 낮을 수도 있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시기는 막 IMF 시기를 지났을 때니까.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창작(글쓰기)과 밥벌이를 연결시킨 무언가를 찾지 않았을까. 막연히 이러한 공상을 무한히 돌리는 것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결론이 이렇게 난다. 무한한 평행우주 속 대안적 삶을 살아보던 노라는 모든 대안적 삶이 실망할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노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무한히 떠도는 것을 관두고 현실에서 삶에서 현존하기를 선택한다. 내가 내 직업과 함께하는 삶에서 현존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일단 봉급. 나는 모든 담임에게 매달 20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사교육 시장의 무한 확장으로 이제 교육보다는 돌봄에 무게가 더 실려있다.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특히 영어수업은 말이다. 교사가 돌봄 노동을 위해 와 있는 것이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출결, 급식, 생활 지도,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맡고 있지만 수당은 고작 15만 원이며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담임 업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또한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전문인력의 보충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수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공교육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고 코로나 이후 더욱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제대로 된 수업을 하고 평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서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사항이라는 담임의 재량에 의한 평가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교육청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교사의 의무와 책임은 무한정인데, 권리는 너무나도 적다. 세 번째, 당연한 이야기이고 매번 요구하는 사항이지만 행정 업무는 축소되어야 한다. 4년마다 옮겨 다니는 교사가 하기에는 전문성도 떨어지고 효율 또한 너무 떨어진다. 전문인원이 선발되어 업무를 맡아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행정업무를 잘하는 순으로 관리자로 선출된다.)




이상적인 학교 직장에 대해 읊으려면 전교조와 교총이 합심해서 데모를 해도 모자란 판에 이 짧은 에세이에 어떻게 다 적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다 이루어졌을 때 나는 다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가지 않을 것인가. 내가 자꾸만 창작 영역에 기웃거리는 것은 지금 직장에 좌절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애당초 잘못된 길을 들어가서 인가. 이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낮에는 학교에서 노동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수고로운 이중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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