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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Nov 01. 2022

제 표정이 뭐가 어때서요?

자유로운 영혼의 어린 여자가 교직에 발을 들이면 생기는 일

나는 요즘 기준으로 사회생활을 좀 빨리한 편이다. 한 살 일찍 발을 들인 한국 교육제도를 모두 충실히 이행하고 바로 23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첫 직장은 도시의 가장 가난하고 후미진 곳에 있는 학교여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교사들이 많이 발령나는 곳이었다. (나도 어지간히 임용 시험을 못 보긴 했나 보다.) 교사수가 30명 남짓한 작은 학교였는데 크게 계파가 1. 승진지향파 2. 7공주파 3. 사회부적응자들 4. 전교조 교사들 로 나뉘었다. 승진지향파들은 40대 중반 이상의 야심가들로서 이 학교의 벽지 승진점수 때문에 온 사람이었고 하나의 목표 하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번째 7공주파는 20대의 젊은 여교사들로 내가 발령되기 직전에 발령된 초임교사들로 7명의 여교사라서 7공주라고 불렸다. 사회부적응자들은 경범죄를 저질러 유배당한 교사들로 크게 음주운전파와 기타잡범파로 나뉘었고, 전교조 교사들은 네 명 남짓 되는 뜻있는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학교때까지 나는 소위 조금 튀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도라이 짓을 해도 받아주는 것은 학교친구들 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첫 학교에서 그해 혼자 발령 난 신규로서 지적질을 받는 천덕꾸러기 이자 직장내 왕따가 되었다. 내가 첫번째로 받은 지적은 ‘모르면 물어봐라’는 것이었다. 나의 첫 행정업무는 ‘일과’라고 하는 기피 업무였는데 학교의 모든 시간표를 짜고 매일 변동되는 교사 스케줄에 맞추어 시간표를 교체하여 교사와 학생들에게 알리는 역할이었다. 네모네모 로직 같은 일과표를 보면서 나는 이리짜고 저리짰는데, 오류가 나기 일쑤였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르면 물어보라’는 지적이었다. 막상 7공주파인 내 사수샘에게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차가운 시선이 돌아왔다. 승진파들은 실수하면 나를 비웃었고 7공주들은 내게 차가웠다. 두번째 지적은 내 옷차림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섹스 앤 더 시티의 자유분방 캐릭터 사만다를 경외했고, 영어과로서 영미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가슴이 깊이 파인 클리비지 의상을 좋아했다. 나는 승진파 중 가장 목소리가 크고 골프 웨어를 자주 입는 여자 영어과 부장샘에게 방송실로 불려갔다. 부장샘은 내 옷차림이 부적절하다고 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의상을 입기를 포기했다. 세번째로 들은 지적은 소문을 통해 나를 훈계했다. 그 당시 전체 회식, 부서 회식 등 술을 마시는 회식이 많이 있었고, 한참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던 내게 회식은 뻘짓거리를 하기 최적화된 이벤트였다. 대학교에서 술을 먹고 난리를 피우면 선배들은 내게 귀엽다고 하고 챙겨줬었는데 직장은 달랐다. 첫 회식에서 남자 선생님들이 우르르 담배를 피우러 가면 나도 끼여서 담배를 피웠다. 한참 후에 교사연구회의 대학교 선배가 나에게 ‘OO야, 너 혹시 담배 펴?’라고 물어봤다. 내가 흡연하는 여교사라는 사실이 관내 교육청에 다 퍼져 있다고 했다. 네번째 지적 역시 내게 간접적으로 훈계했다. 왕따라는 사실이 괴로워서 사회부적응 교사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내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랬더니 한 이혼남 교사가 내게 토요일날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순진하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려나 보다’ 하고 나갔는데 그게 교외 데이트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외곽의 어느 사찰에 있는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이 가까워 와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갑자기 그 교사는 내게 자동차 극장에 가자고 하며 차를 돌렸다. 위협을 느낀 나는 ‘여기서 내려주지 않으면 차문을 열겠다’고 해서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다섯번째 교훈은 지적질도 도가 지나치면 대들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골프 웨어 부장님이 내게 또 훈계를 하길래 도저히 못 참고 울면서 대들었다. 그랬더니 전교조 선생님들이 나를 지지했고 나는 전교조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런 스펙타클한 첫 직장 속에서 많은 훈계를 받았으며 내 행동을 학교문화에 맞게 수정해 나갔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도 적응해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16년 동안 나는 행정업무를 눈치 빠르게 ‘물어보지 않고’ 습득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이제 나는 행정업무에 어려움이 생기면 동료에게 묻지 않는다. 작년 공문을 찾아보고 똑같이 배낀다. 신규나 기간제 선생님등 업무를 모르는 선생님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순간 올라오는 짜증은 어쩔수 없다. 하지만 7공주보다는 나은 선배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옷차림은 어떠한가. 클리비지가 파인 니트 티 대신 내 체형을 돋보이게 하지 않는 목 폴라티나 셔츠를 선호하게 되었다. 남학교에 근무하면 애나 어른이나 할 것없이 젊은 여교사를 성적 대상화 한다. 우리는 이제 옷차림이 헤픈 피해자는 잘못이 없고 성추행범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 특히 학생들이 있는 교실은 이성이 안 통하는 환경일 때가 많다. 안전 앞에서는 내 개성을 묻어버리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여러가지 사건을 거치며 피눈물을 흘리며 깨닫게 되었다. 흡연하는 습관은 동료교사에게 알리지 않으며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흡연하기를 피한다. 이 역시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불필요한 소문에 휩싸이는 것이 피곤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학교 쓰레기장 뒤에서 담배를 피고 오는 남교사들을 비난하는 여교사들 그룹에 나도 은근슬쩍 끼여 있다. (대체 학교 부지 안에서 무슨 배짱으로 담배를 피운단 말인가? 아직 정신을 못차린 남자교사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나의 어려움은 남교사에게, 특히 늙은 남교사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다. 공감은 기대할 수도 않거니와 역시 괜히 불필요하게 엮이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위함이다. 그 이혼남 교사 이후에 숱하게 많은 나이 든 남교사들과 일해 보았다. 경험이 축적된 데이터에서 나온 결론이다. 다소 자유분방하면서 은근히 윗사람을 싫어하는 반골 기질이 있는 나의 성향과 전교조 교사들과 대체적으로 맞으며 학교를 옮길 때마다 먼저 전교조 명단을 확인하며 그들과 더 친밀히 교류하고 있다. 



지난한 나의 훈계 받은 역사와 행동 수정 역사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지적이 가장 오래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3번째 학교까지(12년차까지) 나를 따라다닌 오해와 훈계는 ‘표정이 어둡고 인사성이 없으며 잘난 척하는 젊은 여교사’라는 점이다. 대체로 학생들은 나를 시크하다고 생각했고 대체로 선배교사들은 나를 싸가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잘 웃지 않는 편이다. 사춘기때는 더 심했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삼십 대 중반까지 여전히 그런 지적을 들었다. 직장 뿐 만 아니었다. 살사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는 내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같이 춤을 못 추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젊은 여자를 싫어한다. 젊은 여자는 화사하게 웃어야 한다. 나이든 사람 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그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길 요구한다. 그런데 삼십 대 후반이 된 네번째 학교에서부터 그 지적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더 이상 나는 젊은 여교사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남자 교사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감정 노동을 하면서도 왕따가 되어야했던 어린 여교사를 생각하며 잠시 묵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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