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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Nov 26. 2023

마지막 두려움을 찾아서

11월부터 진로와 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마음이 많이 복잡해져서 다시 명상과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싶어서 명상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정말 강한 욕구가 다시 고개를 쳐 든다. 그 메시지가 너무 강력하여 외면할 수가 없다. 밤낮을 그것만 생각하면서 지내는 꼴이다.


2014년에 교직에서 받은 가장 큰 트라우마를 올해 2023년 우연히 다른 비극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정리하게 되었다. 서이초 선생님과 나는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죽음을 택했고 나는 살아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9년이나 죽을 힘을 내서 버티면서. 올해 7월에 그것을 겪어 내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직면하기를 선택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총 동원해서 내 할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원래 글을 써 올리던 플랫폼에 글을 썼고, 작년 세종시에서 교원평가로 교권침해를 받은 선생님과 협업 인터뷰 글을 작성했다. 영어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했고 티비 방송에 인터뷰를 했다. 교육청 앞에서 목놓아서 연설했다. 이후 내 기사가 한동안 SNS를 뒤덮었다. 이 과정을 겪어내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지난 9년간 개인적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글쓰기를 해오면서 꾸준히 밖으로 내뱉던 것을 대형 확성기를 대고 말하는 과정은 후련했다.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내게 날아든 위로들이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9월을 지나고 11월이 된 지금 나는 교직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트라우마도 하나의 미련이다. 내가 거기서 받은 상처를 거기서 치유받고 싶은 마음이 나를 여기에 그토록 오래 머무르게 했나보다.


나는 현재 내가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었던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10여년전, 내가 속해있는 교사연구회의 두명의 선생님이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 두 분이 모두 만족해 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항상 궁금해 왔고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근무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정말 미련이 없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느낌은 3월 근무하고서 부터 있어왔다. 내 옆에 앉은 원어민 선생님에게 자주 내 속마음을 이야기 하곤 하는데, 왜냐하면 영어를 쓰는 자아는 한국어 자아보다 더 솔직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감정을 말할 때마다 부정당하고 수치심을 느꼈던 어린 나는, 영어를 배우고 쓰고 말하는 과정에서 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다. 여하튼 그와 나눈 첫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뜬금없이 내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있지, 나 이번 학교 다니고, 자율휴직 하고 나갈거야.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그 사람도 황당했을 것 같다. 생면부지의 새 동료가 갑자기 자기 퇴사 계획을 말하다니.


그 동안 나는 꾸준히 코칭 상담 등을 하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진로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할 때, 내면을 살펴보는 작업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의 창작(글 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주로 영감을 얻는다.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노마드로 돌아다니며 온라인으로 일하는 것이 내 희망이다. 자리 잡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 뚜렷해져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4년을 지내고 나갈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4년은 영겁 같은 세월이 되어 버렸다. 그냥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이 4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현재를 살 수 없어졌다. 마치 철봉에 매달려 있는데 점점 힘이 빠지는 상황이랄까. 그냥 놓아버리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처음엔 돈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 집을 한 채 보유하고 있는데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꽤 크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4년을 근무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 금액을 갚을 수 있어 보였다. 내 주위 사람들 모두 그게 낫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정적으로 당장 몇 년은 일 안하고 버틸수 있어보였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주담대는 또 어떻게 해결될 수 있게 보이기도 했다. 방법은 연금을 일시불로 받는 것이다. 지금 20년 가까이 공무원 연금을 냈는데, 퇴직하면 연금을 돌려받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일시불로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5세부터 100만원씩 받는 것이다. 내가 95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3억 6천을 받는 것이고 일시불로 받으면 1/4만 받는 것이지만, 65세 이후 내가 살아있을 지도 알 수 없다. 나의 퇴사 욕구는 지금 그 정도로 강한 것이다. 최근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학원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분이 자기 월급명세서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분은 월 천만원에서 이천만원을 벌고 있었다. 뭐 안되면 그 업계라도 뛰어들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렇게 돈 문제가 해결되니 여전히 두려움이 있다. 사실 당장 안 때려쳐도 자율 휴직 제도라는 것을 사용하여 1년 무급 휴직 생활을 하여 사직 체험을 미리 해볼 수 있다. 그건 당장 할 수 있지만, 갑자기 그걸 내년에 당장 쓰려고 하니, 온갖 변명거리가 다 떠오른다. 첫 번째는 동료들이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내년에 내가 휴직을 하게 되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야하는데, 기간제 교사는 저경력이 많고, 지금 안 그래도 한 명 감원이 되어 내년에 업무가 더 많아 질 것인데, 1년 기간제 교사에게 중요 업무를 맡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무책임 하다는 비난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직업을 선택해서 부터 근무하는 내내, 나는 타인의 욕망을 위해서 일한다는 감정이다. 나는 엄마가 원해서, 또 사회가 원해서 교직을 선택했다. 일하는 내내 남의 욕망을 위해 일했다. 나는 수업 이외에 다른 두 가지 주요 업무인 행정과 담임 업무가 하고 싶지 않다. 이건 남들을 위해서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까지 남의 욕구를 내 욕구보다 위에 올리고 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두려운 것은? 나는 교직을 완전히 그만두는 준비가 되었는가. 미래 준비는 되었는가. 내년에 애인과 별거하게 될 것인데, 직장없이 그 큰 변화를 혼자 감내 할 수 있는가. 전부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이 것을 언제 극복하게 될까.


오늘 명상 과정에서 가이드 선생님에게 질문 했다. “명상을 하면서 오히려 욕구가 고개를 쳐 들어서 무시하기가 힘듭니다. 이건 에고의 목소리 일까요, 의식의 목소리 일까요?”(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에고의 생각과 말을 지켜보는 자다. 명상은 지켜보는 자인 의식의 자리로 돌아가서 떠오르는 생각을 지켜보며 의식의 자리를 깨닫는 과정이다.) 라고 물어보니, 자신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17년간 명상을 했는데 10년째에 너무 아픈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명상만 하면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난리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명상을 하면서 욕구를 무시해서 그렇다고 한다.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외면해왔던 욕구의 말을 들어줌으로서 다시 의식의 자리를 파악하면 된다고 한다. '역시 내 직관이 맞았구나.'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엉덩이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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