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이는 큰이모네서 데려온 새끼 강아지였다. 나는 그 때 초등학교 3학년인가 그랬다. 당시 살던 집은 우리 소유는 아니었지만 마당이 있어서, 털 날린다고 싫어하던 부모님이 강아지를 데려올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작고 어린 아기여서 집 안에 데려왔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상자로 임시 집을 만들어줬던 것 같다. 작고 하얗고 따뜻하고 꿈틀거렸겠지. 조금 더 선명한 기억은 아주 연한 갈색, 크림색과 베이지색 사이의 속눈썹이 길고 예뻤다는 것이다. 상자 속 강아지가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한참 쳐다봤었다.
아빠는 순이라고 이름을 짓자고 했었고, 엄마도 무언가 말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설마 누렁이는 아니었겠지? 내가 우겨서 이름은 하얀이가 되었다. 부모님은 처음에 내가 지은 그 이름을 그닥 마음에 들어하진 않았다. 하얀이는 하얀이가 되기에는 좀 덜 하얗기는 했다. 약간 누런끼가 있는 털을 가진 아이였다. 하얀이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으로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쓰고 있는 이 글에는 약간의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시기가 아니었고 sns가 활발하던 시기도 아니어서(싸이월드가 있긴 했다) 하얀이 사진은 디카로 찍은 흐린 두어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때 학교 숙제로 썼던 일기에는 하얀이 이야기가 좀 남아 있을까? 엄마아빠 기억 속에는 하얀이가 어떻게 남아있을까. 궁금하면서도 하얀이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그애가 죽은지 아마 10년이 넘었는데 며칠 전에도 나는 그애를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다.
하얀이 생일은 9월 8일이었다. 생일이 맞는지 그냥 데려온 날을 생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건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기일은 알지 못한다. 하얀이는 큰이모네로 돌아가서 넓은 마당에서 아마 어미개와 지내다가, 동네 큰 개에게 물려 죽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어린 나는 하루 종일 수도꼭지처럼 울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팠을까. 죽은 네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하얀이를 지켜주지도 묻어주지도 못했다.
하얀이가 큰이모네로 돌아가야 했던 건 집주인이 하얀이를 상습적으로 때렸기 때문이었다. 하얀이는 그 아저씨를 보면 늘 짖었다. 선후관계가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른다. 나는 아저씨가 하얀이를 때렸다는 소식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하얀이를 보내면서 하얀이 집 안을 보니, 아저씨한테 맞을 때 놀라고 무서워서 쌌던 똥이 집 안에 가득했다고 했다. 아이가 맞고 있는 걸 몰랐던 내가 저주스러웠다. 그것도 모르고 집주인 아저씨가 아프다길래 기도시간마다 아저씨가 낫기를 기도했던 내가 너무 싫었다.
외가 모임을 하면 어떤 장어집에 자주 갔다. 어린 나는 장어 맛이 이상해서 거기 가면 밥을 잘 안 먹었다. 지금은 여전히 장어 맛을 모르는 채로 채식을 지향하고 있다. 어느 날 장어 가게에서 하얀이를 큰이모네로 돌려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내가 밖으로 나와서 울고 있는 장면이 기억에 있다. 아마 아빠가 나를 달래줬다. 네가 맞고 있는 걸 알았다면 하루라도 늦추지 말고 진작 보내자고 했을 텐데. 나는 그걸 몰랐다.
하얀이를 산책시키다가 어떤 커플을 만났었다. 내게 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낯을 엄청 가렸고 종이 뭔지 몰라서 그냥 똥개인가 잡종인가 라고 했던 것 같다. 여자분이 '귀엽다. 그냥 잡종이래.'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또 다른 기억엔 종종 산책 때 하얀이가 엄청나게 뛰어다녀서 나는 목줄을 놓치고 그럼 하얀이는 또 한참 한참 난리가 나서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산책 훈련이 안 되었고, 내가 산책을 점점 잘 안 시켜줘서 그랬던 것 같다. 어린 나는 하얀이가 날 두고 막 가는게 서운해서 쪼그리고 앉아서 우는 척을 했다. 하얀이는 좀 힐끔거리기도 했고 그러다 아랑곳 않고 뛰어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얀이는 털이 많이 날렸다. 한동안은 하얀이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던 나는 또 한동안은 엄마한테 털 때문에 잔소리를 듣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잘 놀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하얀이 집이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조심조심 조용히 가도 하얀이는 내 기척을 알아채고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 와주길 기다렸다. 그 작은 아이의 까만 눈을 무시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곤 했던 그 때의 내가 많이 원망스럽다.
하얀이가 큰이모네로 돌아가고 나서 큰이모네에 두 번 정도 갔던가? 사촌동생과 함께 가서 잔디밭 마당에서 하얀이와 잔뜩 놀았던 것 같다. 기분탓인가, 그 때의 하얀이가 제일 편안해 보였던 것 같다.
아가, 내가 너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나는 자꾸만 매정하고 무심한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이 생각나. 내 마음속에서 네가 자꾸 무심한 나 때문에 외롭게 지내며 집주인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다른 큰 개에게 물려죽은, 기구한 아이로만 기억되는 게 싫어. 그렇다고 너를 그저 어린 시절 키웠던 사랑스러운 아이로 기억해도 되는 걸까. 안좋은 기억에 눌려 복원되지 못한 좋은 기억들을 애써 짐작하면서?
어느 쪽을 선택한대도, 너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네가 맞는 걸 몰라서 미안해. 옆에 더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물려죽을 때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얼마나 무서웠어? 외로웠어? 내가 너무 어렸어서 미안해.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밖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게 해서 미안해.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소설의 구절처럼. 내 청소년기는 아주 고통스러웠지만, 하루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갖고 어릴 때로 돌아가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매일매일 네가 원하는 만큼 산책을 시켜주고, 아무도 너를 때리고 괴롭히지 못하도록 너를 내 집으로 들여서 함께 잘 수 있다면, 그렇게 내 죄책감을 덜고 너에게 한참 모자랐던 사랑을 줄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을까? 너는 그 말을 들어봤을까? 어린 내가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는지 모르겠어. 너무 많이 늦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말해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