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자아이 하나가 지퍼백 가득 색색의 구슬을 엮어 만든 팔찌를 가득 가지고 왔다.
“라오스, 게이니 이거!(선생님 하나 줄게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내가 알아듣고 학생을 바라봤다. 직접 만든 것인지 물었고 아이는 자랑스럽게 끄덕였다. 나는 아이에게 직접 선생님에게 어울리는 것 하나를 골라달라 말하고는 팔을 내밀었다. 그 순간에도 내 눈은 빠르게 교실 안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교실 안에는 인도 아이 하나, 베트남 아이 하나, 우즈베키스탄 아이 둘이 있었는데 모두 여자아이들이었고 나이대도 고만고만했다. 아이들은 부러 이쪽을 안 보는 척했지만 신경을 잔뜩 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때 중국 여자아이는 진한 분홍색 구슬 팔찌 하나를 골라 내 팔에 끼워 주었고 무척 뿌듯해했다.
“너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온 거 친구들 다 나눠주려고 한 거야?”
“응!”
“역시!” 내가 엄지를 치켜세워 아이를 칭찬해주었고 아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뒤에 앉아있던 인도 아이의 수줍은 얼굴과 베트남 아이의 장난기 어린 얼굴,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동시에 들어왔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었고 초급 수준인 베트남, 인도, 중국 아이들에게는 단어를 외우게 하고 아직 한글 수업 중인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의 발음 수업을 시작했다. 인형같이 예쁜 얼굴로 애교를 부리던 아이들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이 영 이상했다. 아직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상태라 영어로 너희도 팔찌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입을 쭉 내민 채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의아해서 중국 아이를 불러 다시 중국어로 물었다.
“너 여기 친구들 나눠준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제가 준다고 했는데 이 친구들이 싫다고 했어요!”
다시 영어로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에게 물었다.
“중국 친구가 준다고 했는데 왜 싫다고 했어? 이거 안 예뻐?”
그러자 우즈베키스탄 여자아이들이 둘이 마주 보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고는 그런 적 없다며 손사레를 치기까지 했다. 다시 중국아이를 불러 물었다.
“친구들은 그런 말 들은 적이 없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흥분한 듯한 중국 여자아이가 억울한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내가 번역기 써서 물어봤는데 얘네가 싫다고 했어요! 진짜예요!”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상황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랬구나. 나는 중국 아이에게 그 팔찌를 친구들에게 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에게도 중국 아이의 의사를 전달했다.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에게는 영어로 팔찌가 마음에 들면 가져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 되는 아이들이었다. 중국 여자아이도 그 말을 전해 듣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지퍼팩을 활짝 열어 우즈베키스탄 아이들 앞에 보여줬다. 고심을 한 후에 하나씩 고른 아이들이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더니 한 명은 팔에 차고 한 명은 소중한 물건 다루듯 자기 가방 안에 곱게 넣어두었다. 팔찌를 주고 돌아서는 중국 아이의 표정도 금세 밝아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상황을 보며 100% 이해할 수 없던 인도 아이와 베트남 아이도 괜시리 웃어 보였다. 오해가 풀린 이 시점에 모두가 행복한 수업 시간이었다.
때로는 별거 아닌 일이 오해가 될 때가 있다.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땐 말이다. 나는 중국어는 크게 무리가 없는 정도로 소통이 가능하고 영어도 조금 할 수 있다. 가끔 내가 자리를 비울 때 다른 선생님이 자리를 메꿔 주실 때가 있는데 선생님이 아주 속상해하시며 중국 남자아이 하나가 아주 버릇이 없었다고 말할 때가 있다. 장난꾸러기이고 수다스러울 뿐인데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또 아주 오래전 캐나다에 있었을 때에도. 다국적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더러 생기는 이런 크고 작은 오해들을 보면서 내가 지나온 과거에 나조차도 그런 오해 속에 서 있었던 경험들이 있었다. 말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닌 경우도 분명 존재함을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언어를 가르치는 내 직업에 오늘도 책임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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