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머리는 자라니까
걷기명상을 하다가 문득 길가에 서있는 차 유리창에 비친 나의 머리카락이 막 자라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머리를 잘라야겠다. 유튜브로 셀프 헤어컷을 검색하면서 방법을 찾는다. 찾았다. 저거다. 집가서 당장 실행한다.
집에 와서 가위와 빗, 고무줄을 찾아 세팅했다. 혹시 망할 것을 대비해서 카메라로 녹화했다. 망해도 유튜브 콘텐츠로라도 올리면 가치 있는 시간이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다. 차근차근 머리를 썰었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너무 맘에 들었고 내가 딱 원하는 머리가 탄생했다. 신나서 셀카를 찍었다.
무언가를 혼자 하고 이렇게 성취감이 들고 신났던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던가. 인생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노력한다고 해도 보상받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뜬금없는 게 나를 위로했다.
미용실에 갈 수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헤어 스타일링을 해 준 디자이너와 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헤어디자이너와 나는 약 10년가량을 알고지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왔다. 미용실의 분위기의 특성상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힘들고 주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렇게 시간을 채워왔다. 아마 헤어디자이너에게 나는 한없이 천진난만하고 밝고 명랑한 아이로 인식될 것이다.
만약 미용실에 간다면 그 천진난만함은 온데간데 없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묻겠지,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 떠들고 웃는 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긴 설명을 포기하고 대략 한두줄로 그간의 일들을 설명하겠지. 그리고는 이내 분위기에 맞춰 천진난만한 척 연기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용실에 간다면 원하는 스타일 대신 전문가가 제안해준 머리스타일로 타협을 볼 것 같았다. 미용실에서 언제나 내 의견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으니까,
주체적으로! 망하든 잘 돼든 그냥 혼자 잘라보고싶었다. 설사 망한다고 해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라는게 머리카락 아닌가. (이렇게 치면 참 머리카락은 고마운 존재라니까)
누군가에게는 머리를 셀프로 자르는게 굉장한 도전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한낱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지금 그보다 몇 천배, 몇 만배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을 견뎌내고 있으니까.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고, 슥삭슥삭 내가 원하는대로 잘라나갔다. 그래서였다. 더 만족감이 들었던 것은.
내가 원하는 것 그대로 내 스스로 실현해냈으니까.
이 사소한 성취감은 내겐 정말 감사한 일이다. 파도에 휩쓸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 속에서 무언가 주체적으로 해낸 것은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 했기 때문이다. 셀프미용은 망하면 추억을, 성공하면 성취감을 주는 그런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 자존감을 올린다던데, 오늘 자존감 +1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