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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삼이와 데븐이 Feb 09. 2023

어른의사춘기,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잘 가, 어린 시절의 이상이여 오라, 어른시절의 이상이여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이상을 떠나보내는 지점,
어른의 사춘기는 그 지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中>


어린 시절 품어왔던 나의 이상은 다양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인생은 그것이 틀렸음을 가혹한 경험들을 통해 가르친다.

모두가 특별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나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가르침.


5살 무렵에는 똑 부러지고 할 말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너는 변호사가 될 거야"라는 이웃주민과 부모님의 말을 들어왔고,


9살 무렵 스스로 댄스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로 군림했던 나의 꿈은 어느덧 

대통령까지 자라나 있었다. 


15~16살, 아이돌을 꿈꿔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고,


예고 입시를 앞둔 중3 때는 댄스스포츠 국가대표가 되어 김연아급으로 국위선양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17살 한국무용으로 전과한 후에는 서울대에 입학해 동네에 현수막이 걸려 

부모님의 입이 귀에 걸리는 상상을 했다.


18살 무용계에 환멸을 느낀 나는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글로서 무용계를 갈아버리겠다는 야망으로 

기자와 평론가를 꿈꾸었고,


19살에는 꿈이 자라 아예 문화체육부장관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대학입시를 치렀다.


20살부터는 놀기 바빴던지라 꿈 따위는 접어두고 대학생활에 취했다. 

그리고 문화체육부장관이 되겠다는 내 꿈은 어느덧 남자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혹은 대외활동 면접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 말이 되었다.


23살, 기자의 꿈을 반쯤 이루었다. 

인턴으로 기자를 2번 했기에 어떤 직업인지 대충 감이 왔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내 길이 기자가 아니라는 것을


25살, 대학을 졸업하고 이대로 취업한다면 후회할 것 같아 

평소 품어왔던 카메라에 대한 욕구를 발현시켜 아나운서를 준비하였고 방송일을 시작한다.


26살, 리포터,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방송계에서 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 강한 자괴감을 느낀다. 

이에 원래 꿈이었던 기자로 취업한다. 

처음으로 출입처를 갖는 기자가 되었기에 꿈을 대충 이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자가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27살, 어학당에 대충 취업해 약 1년을 보내고,


28살, 똑똑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로 경제학과에 편입했고, 

운 좋게 한 중공업 회사에 IR담당으로 취업했지만 이 역시 나의 길이 아니었다.


29살, 취업을 포기한다. 

다시 예체능의 문을 두드렸다. 

연기.


30살,...


어른의 사춘기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다. 


나는 인생을 소거법으로 살아왔다. 

비유하자면 나는 거대한 돌이고, 그걸 깎아가며 나라는 사람을 조각해내고 있다. 

나에게 딱 맞는 특별한 삶을 적극적으로 조각해내고 있다.


어린 시절 품었던 이상은 없다. 나를 떠났을 수도 내가 떠나보낸 것일 수도.  

지금 내가 바라는 특별함은 어린 시절의 이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어린시절에는 직업의 화려함을 동경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런 겉면을 쫒지 않는다.

이 사춘기를 잘 이겨내면 본질에 충실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겠지.


안녕, 어린 시절의 이상이여

너로 인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나를 좌절시켰고 나를 깎아냈다.

안녕, 지금의 이상이여

한층 더 나를 이해하게 됐기에 나는 너를 꼭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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