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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Jul 18. 2023

사람을 사랑하는 형사의 이야기

책 '형사 박미옥'

저자: 박미옥 / 출판사: 이야기장수


‘민중의 지팡이’에서 민중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이제껏 지팡이를 직접 대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형사 박미옥>의 저자 박미옥 씨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살면서 경찰서 한 번 들러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양반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개인적으로는 준법정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가해자로서든 피해자로서든 경찰서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면 그건 분명 감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많은 사람이 경찰과 독대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 직업군이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우리는 범죄수사물이라는 방대한 장르를 통해 수많은 형사를 접하며, 이들이 일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듭된 재현은 고정관념의 토대이자 어쩌면 근원이기도 하다. 일례로, 나는 ‘형사’하면 아직도 눈살 찌푸린 송강호의 얼굴(<살인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의 얼굴은 오늘날 한국 영화계의 버팀목(?)이 되어버린 마 형사(<범죄도시> 시리즈)의 얼굴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으로 현장을 누비는 이들의 얼굴은 대체로 성나 있다. 여기에 스토리는 거의 언제나 추적과 풀이의 과정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형사와 감성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박미옥 작가는 말한다. 자신은 감성으로 형사 일을 했고, 형사란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박미옥 작가는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이자,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고, 이 책 <형사 박미옥>에도 그가 맡았던 사건들이 얼마간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사건 해결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 형사라는 직함에 달린 책임과 최초의 여형사라는 타이틀에 따라온 도전을 회상한다. 책의 이름이 <형사 박미옥>인 까닭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박미옥 씨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가 형사를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일을 했고, 책에는 그의 신념이 잘 묻어나 있다. 이는 형사를 눈살 찌푸린 이성의 얼굴로 줄곧 그려왔던 내게 상당히 다른 시각을 주었다. 민중으로서, 어떤 사건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때의 감상은 대체 ‘경찰이 일을 못한다/잘한다’ 혹은 ‘범죄자에게 높은 형량을 줘야 한다/아니다’로 수렴된다. 하지만 사건 속으로 개입하는 형사에게 상황은 이분법적 구도로 정리되지 않는다. 피해자를 대변하고, 때로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이들은 듣고, 질문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다.      


한참 말이 없던 피해자는 생각보다 너무 젊은 여형사가 와서 속속들이 이야기하기도 부끄럽고, 설령 다 털어놓는다 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지 주저된다면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피해자의 첫마디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형사님은 모르시겠지만……”

아, 내 얼굴이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미 말하고 있었나. 어설픈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이해받을 수 있을지 주저된다는 말에 야단을 호되게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 싶어서 도리어 그녀에게 마음 열고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p.112     


그러나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형사 철학은 박미옥 형사의 것이지, 모든 경찰의 것이 아닐 테다. 비록 경찰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남편과 알아서 화해하시라’라며 가정 폭력 피해자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경찰‘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한 경찰‘들’의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있는 형사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박미옥 형사는 아직 스토킹이 범죄로 널리 인식되기 전,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여 증거를 수집, 사건을 해결했다. 아마도 <형사 박미옥>은 우리 민중보다 경찰 내부에서 널리 읽혀야 하는 책이다.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하고 윤리가 더 넓게, 엄격히 적용됨에 따라 지금에서야 법의 관심을 받게 된 존재들이 있다.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경찰들이 필요하다.           


긴 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쉽사리 선악과 시비를 가리기 힘든 무수한 사건을 접했음에도, 나 역시 내 시선과 마음이 내 경험치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상대의 진실을 들어주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 진정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시로 절감한다.

요즈음 나의 집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명백히 나뉜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 복잡한 사람들이 와서 내게 말을 건다. 퇴직 후에도 마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단 자세히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쩌면 내 형사 인생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너의 마음으로 듣고 인정하는 일. 한 사람을 속히 파악해서 알리고 싶은 단독 속보 같은 욕심이 아니라 너의 속도로 조용히 천천히 기다려주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는 시간이다. p.267-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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