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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22. 2020

Old graces never die

포토그래퍼 사라 문 인터뷰_2008년 12월 파리 

창 밖의 겨울은 함박눈을 맞으며 어둠으로 향하는 찰나다. ‘노엘(Noël)’을 이틀 앞 둔 저녁에 내리기 시작한 저 흰 눈은 모두에게 ‘축복’이라는 거대한 표현을 부여 받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도 의미가 된다면 그토록 서원하던 포토그래퍼 ‘사라 문(Sarah Moon)’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을 내내 그녀는 전시 일정으로 런던에 머물렀고, 파리에 돌아온 이후에는 몸이 편치 않다는 이유로 다음을 기약하자 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 기약은 만남이 되어 나직한 채도의 붉은색이 감돌고 있는 그녀 거실의 페르시안 풍 의자에 앉아 마침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달콤한 낙관적 감성이 만개했던 60년대, 사라 문은 스무 살이 되기 전 모델을 시작함으로써 패션과 조우했다. 엘르(Elle)와 보그(Vogue) 같은 패션지에 종종 등장하던 당시 그녀는 ‘마리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와 아담한 골격을 가졌기에 ‘작은 사이즈’의 모델이 필요한 때에 부름을 받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가장 쉬이 유혹하는 ‘화려함에의 도취’가 그녀에게는 없었다. 오히려 요정 같았을 얼굴을 하고선 ‘내 삶의 에센스는 이것이 아니지 않을까’ 늘 회의했다. 그리고 그 시절, 우연히 맡아 두게 된 친구의 카메라는 운명적으로 그녀 삶을 전이했다. 곧장 무대에서 내려와 그녀가 섰던 자리의 동료 모델들을 향하여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패션 사진계에는 이미 여럿의 전설들이 존재했지만 사라 문의 시선과 감성,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존재를 향한 애티튜드는 그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노바(Nova), 엘르(Elle)의 지면을 수놓았던 그녀의 사진들에는 화려하고 강렬한 환타지 대신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오래된 우아함은 결코 사그러들지 않는다(Old graces never die)’라는 그녀 사진의 어느 제목처럼, 깊은 잠에서라도 이루고픈 여인들만의 내밀하고도 끝없는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을 말이다. 잊을 수 없는 70년대 까사렐(Cacharel),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의 작업들은 패션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며, 그녀가 편애한다던 이세이 미야키(Issey Miyake)와 요지 야마모토(Yoji Yamamoto), 샤넬(Chanel)의 선으로 감싸고 있는 여인들을 담은 90년대 사진들은 과연 몸이 아름다운 것인지 옷이 아름다운 것인지 그 희미한 경계를 가늠하게 만든다.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그리고 얼핏 꿈결에서 스쳐간 듯한 이미지의 편린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존재로써’ 재생되고 있는 그녀의 사진들. 그 고요하게 정지된 드라마 속에는 무수한 내러티브가 흐르고 있다. 사진을 통해 “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던 사라 문의 표현대로 말이다.  




인터뷰 며칠 전, 생 제르망의 ‘라 운(La Hune)’ 서점에서 그녀의 다섯 권이나 되는 모노그라피의 사진 모두를 찬찬히 보고 나왔을 때, 아름다움은 때론 설명이나 이해를 초월한다는 문장이 스쳤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의 배후를 읽어내려는 우리의 시도 앞에서 그녀는 대체로 입을 다물고 초연해왔다. 어쩌면 그것은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사라 문(Sarah moon). 되새길수록 매우 ‘그녀다운’ 그리고 ‘그녀의 사진다운’ 이름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 우리는 ‘문’이라는 한 음절의 다채로운 의미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예외 없이 그녀의 ‘moon’에서 우리 모두는 저 신비스런 밤을 밝힐 달을 떠올렸고, 동행한 포토그래퍼는 자신의 이름 중의 ‘문’이 ‘무늬’를 뜻한다고 말했다. 더하여 저 세계로 나가고 들어오는 출구로서의 ‘문’까지를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오묘하고도 탁월한 의미라면서 ‘문, 문(門)’ 자를 적어 달라 청했다. 그 의미를 그녀는 어디에 어떻게 새겨두려 했던 것일까. 시어처럼 짧게 스쳐가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그토록 오랜 동안 사진이라는 세계를 자신의 출구로 삼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내어 준 뜨거운 ‘마르코 폴로’를 한 모금 들이키니 한기가 한결 가신다. 








박선영:얼마 전 있었던 런던과 파리에서의 전시를 축하드려요. 아울러 다섯 권으로 구성된 모노그라피 출간도요. 이번에 출판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라 문: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출판하기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랜 세월 동안 찍어 온 무수한 사진들을 보니 문득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 년 전쯤 책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때마침 몇 가지 전시들도 있었구요. 그러고 보니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시간이었네요. 예전에 출판된 ‘우연(coincidences)’라는 책이 있었는데, 절판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늘 책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죠. 그래서 그 책을 그대로 재판하는 것 보다는 새롭게 묶어 봐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더군요.





박선영:이번 모노그라피는 그 동안 출판된 책들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 출간을 준비하며 무엇을 가장 염두 하셨나요?

사라 문:그저 회고적인 성격의 책이 되지 않기를 바랬어요. 물론, 초창기의 몇몇 패션 사진들이 회고적인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패션만큼 소중한 내 개인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죠. 나의 시선이 닿았던 아름답고 다채로운 풍경들. 그리고 패션, 영화, 사람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요. 그래서 이번 책에는 제 짧은 단상들도 사진과 함께 담아보았답니다. 




박선영:지난 세월을 돌아보시니 감회가 어떠시던가요?

사라 문:(잠시 침묵) 아! 지나간 시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더군요. 사진과 함께 한 세월이 거의 사십 년이네요.  





박선영:60년대, 패션 모델로써 활동하시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라 문:모델로 활동을 하면서도 늘 그 일에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무대는 스스로의 의지나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세계였거든요. 게다가 당시 난 어리기는 했지만 모델 일이라는 건 단지 짧은 시간 동안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누군가가 빌려 준 카메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사진 속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아주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죠. 





박선영: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에, 모델 일을 그만둘 만큼 사진이 그렇게 매력적이던가요?

사라 문:매력을 넘어선 놀라움이었으니까요. 그 놀라움은 사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이어졌지요. 그 때부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것이야 말로 내가 잘 할 수 있겠다’라는 막연한 기대와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당시 나에게 사진은 일종의 ‘마법’이었어요. 더구나 디지털이 아니었던 시대였기에 내가 포착한 대상이 인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신비로운 것들을 발견하곤 했지요.





박선영:사진이란 매체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라 문:난 ‘즉시성’ 이라고 생각해요. 회화나 문학처럼 호흡이 긴 예술장르와는 달리 사진은 바로 결과물을 볼 수가 있거든요. 그 때문에 우연적인 것들에 기댈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담게 되지요. 그 신속함 때문에 세상에 그토록 많은 사진가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셔터를 누르는 매 순간마다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요. 





박선영:당신의 작품들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사진의 보편적 정언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되는데요. 사진을 통해 표현하시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요? 

사라 문:무엇보다 나에게 사진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명백하게 픽션이지요. 무엇에 대한 진술이 아니에요. 비록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정에 기반한 일종의 시나 소설 같은 것이지요. 결국, 현실에서 얻은 무수한 이미지들은 사진 속에서 어떠한 울림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약판인 거예요.




박선영:셔터를 누르게 되는 그 순간, 어떤 우연이나 놀라움을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었지요.

사라 문:그래요. 사진의 특권은 각자의 관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요. 하지만 늘 내 머리 속에서 그려진 이미지대로만 표현된다면 어느 순간 너무 반복적이고 지루해졌을 거예요. 그래서 난 늘 그 순간의 상황들을 주시합니다. 이미 짜여 진 틀에 예상치 못했던 우연적인 상황이 파고 들어와 어떤 진가를 발휘하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박선영:그것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촬영의 테크닉적인 부분도 포함해서요.

사라 문:테크닉적으로는 특별한 게 없어요. 한때 굴곡이 심한 폴라로이드필름을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나오질 않아요. 다만, 스튜디오에서는 특별한 장식이나 조명이 없더라도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장식에서 영감을 얻곤 하지요. 야외에서 풍경을 찍을 때는 끊임없이 내 눈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을 찾으려 해요. 결국, 그것들을 만난 순간과 내가 느끼는 감정 사이의 울림이나 메아리를 기다리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 난 ‘아름다움의 섬광’이 지나가는 걸 봅니다. 





박선영:당신 사진을 보면 모델과 포토그래퍼라는 분리된 입장이 아닌 그 순간 모델과 당신과 그  분위기까지 모든 것들이 합일된 듯 보여요. 그것이야 말로 당신 사진이 특별한 이유인 것 같은데, 그건 의도하신 건가요?

사라 문:의도적이기보다는 본능적이에요. 그 순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 선택하고 배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진을 찍을 때 배제하고자 하는 걸 예로 들자면, 더 이상 유행이 아닌 것이라든가 혹은 극단적으로 겉모습만을 보여주는 것들 이예요.  





박선영:사진이 아닌 다른 장르, 미술이나 문학의 영역에서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거나 교감을 나눈 작품 혹은 작가가 있나요?

사라 문:우리는 항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마련이죠. 그래서 회화나 사진, 문학의 순수성과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우리 삶으로 그것들을 끌어오곤 해요. 하지만 살다 보면 우리가 의도 하지 않는 것, 심지어 싫어하는 것에 둘러 싸이기도 하죠. 지금의 나 역시도 많은 영향들로부터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한 가지가 아닌 무수한 것들로부터.




박선영:그래도 굳이 꼽아보신다면?

사라 문:그렇다면, 음악에서는 슈베르트. 그리고 위대한 피카소도요. 지금 ‘그랑 팔레’에서 하고 있는 피카소 전시는 꼭 가서 봐야만 해요. 음. 지금 머리 속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두서 없이 떠올라서 누구의 이름을 답하기가 어렵네요. 리스트로 작성을 해봐야겠어요. (웃음) 






박선영:늘 흑백사진을 더 선호하신다고 말씀해오셨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라 문:내에게는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이 더 ‘사진적’ 이예요. 만일 세상에 칼라사진만이 존재했다면 난 오히려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흑백사진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감정은 그것이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컬러사진에서는 바로 이 ‘탈 현실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박선영:그런 면에서 감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최근의 ‘현대사진’들 (이를 테면, 칸디다 회퍼나  안드레아스 거스키)은 당신의 사진과 ‘극단’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사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라 문:무엇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저와는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회퍼도 거스키도 스케일이 대단히 크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 것과는 차이가 크지요. 개인적으로 그런 사진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장르로서는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아울러, 그들의 작품을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진의 다양한 변화들을 실감하게 되요.




박선영:오늘날에도 패션의 힘은 여전히 위대해요. 그러나 과거 60-70년대의 패션과 아름다움은 지금보다 더 초월적이고 특별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와 오늘날의 패션을 비교해 보신다면요?

사라 문::지금의 패션은 예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규모도 커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의 코드가 보다 규격화되었다고 생각해요. 60,70년대의 패션에는 더 큰 자유와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어요. 그것들을 환호하며 격려하는 분위기였죠. 그러나 늘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패션은 대부분이 마케팅에 의해서만 그 방향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은 마케팅만이 그 기업이나 매체를 보장해주는 세상이니까요. 

 



박선영:그 시대에 대한 향수는 없으신지요?

사라 문:그렇지는 않아요. 그 시대만의 좋은 점과 아쉬운 면이 있으니까요. 요즘 사람들이 입는 비슷비슷한 옷들은 영 흥미롭지가 않아요. 예전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각자가 가진 패션에 대한 취향이 훨씬 더 분명했죠. 그리고 패션계 전반에는 지금보다 더 큰 환타지가 존재했어요. 하지만 늘 변화하는 것이 패션의 특성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또 달라지겠지요. 




박선영:패션사진에 있어서도 그러한가요? 여전히 그 시절에 존재하던 하퍼스 바자, 엘르, 보그가 나오고 있잖아요.

사라 문::패션과 마찬가지로 패션 사진도 예전에 비해 환타지나 개성이 줄어든 것 같아요. 무언가를 모방하는 사진들이 자주 눈에 띄고 패션계를 지배하는 듯한 일련의 코드들이 있는 것 같아요. 잡지들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톤’에 맞춰져 비슷하게 보이구요. 스타일이든 잡지든 전체적으로 표현에 있어 자유로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물론 최근에는 사진작가들이 마케팅에 의해 정해진 모습(look)을 따라야 하니 예전보다는 분명 더 어렵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도 않잖아요. 지금은 사진작가 한 사람이 하루에 여덟 장의 사진을 만들어 내야 한다 더군요.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죠. 




박선영:이름만으로도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들과 작업을 해오셨는데, 그들 중 누가 당신에게 특별하게 기억되나요?  

사라 문:모두가 특별하지만 난 유난히 일본디자이너들을 무척 좋아해왔어요. 왜냐하면 지극히 파리적인 이곳에서 그것을 벗어나는 형상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런 면에서 꼼 데 갸르송의 ‘요지 야마모토(Yoji Yamamoto)’나 ‘이세이 미야키(Issey Miyake)’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었어요. 그들은 나에게 이미 익숙해진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지요. 아! 그리고 언젠가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는 내게 직접 자신의 포트레이트를 부탁해와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답니다.  




박선영:패션에 있어 개인적으로 선호하시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사라 문:개인적으로 일본적인 스타일을 참 좋아합니다. 옷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의 실루엣은 사람 몸의 형태에 덜 가깝다고 할까요. 전형적인 프랑스의 실루엣에 비해 훨씬 희미한 윤곽을 갖고 있지요. 어떤 면에서 내 사진이 보여주는 바와 통하는 것 같기도 해요.  





박선영:패션 사진도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라 문:미국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이 최근에 사진의 성찰에 관한 책을 썼는데 거기 “패션 사진은 종종 예술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예술은 아니다” 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그의 짧은 문장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나 역시도 패션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패션 사진은 예술적인 어떤 것과 결합할 수 있지만 우선은 응용사진입니다. 패션 사진을 예술이라고 부르기엔 그 안에 ‘예술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박선영:거의 사십 년 동안 해오신 사진작업을 통해 스스로 무얼 찾으셨나요?

사라 문:무엇보다 사진은 제가 휴식을 취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요. 단 한 순간도요. 언제나 눈 앞에 있는 걸 넘어선 다른 무언가를 보고 싶게끔 만들고, 그걸 찾아 계속해서 나가도록 하는 열정을 주죠. 그렇게 사진은 늘 저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어요. 무척 애착을 쏟도록 만들고 동시에 저를 수없이 낙담하도록 하면서 말이죠.




박선영:당신 사진이 내뿜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라 문:어떤 ‘찰나적인 것(Ephémère)’이라고 할까요. 일순간 존재했다가 사라는 것처럼요. 이 단어가 잘 번역되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이 말은 ‘나비’를 의미하기도 한답니다. (웃음)




박선영:당신은 오랜 세월을 살았고, 아주 유명한 사람이고, ‘사진’이라는 한 가지 일을 매우 긴 시간 동안 해오셨지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라 문:나이가 들수록 소박한 것에서 가치를 만나게 되더군요. 글쎄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연대의식’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과 믿음, 그 안의 책임감. 그런 것들이 삶의 큰 힘이 되었고 때론 위안을 주었죠. 물론 사랑도 절대적이지만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는 것이니까. 




박선영: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사라 문:편집장이었던 내 남편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곧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디자이너 아즈딘 알라이아 (Azzedine Alaïa)와 사진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는 튀니지 출신 디자이너인데 굉장히 프랑스적인 스타일을 만들어 내요. 무척 아름답지요. 그의 컬렉션으로 대략 5-6장의 패션사진 시리즈 작업을 할 거에요. 다시금 바쁜 한 해가 시작되네요. 





** 인터뷰 내내 자리에 함께 했던 사라 문의 친구이자 비서인 캐서린 필리포는 내 외투를 챙겨 주며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정말 드물 정도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이예요” 라고. 그리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정이나 사랑을 사이에 둔 사이일지라도 상대에게 저런 표현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드물 정도로’ 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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