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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22. 2020

슈투트가르트의 도서관

건축가 이은영 인터뷰_2009년 7월 쾰른 Yi Architects


독일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칸트를 섭렵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독일적인 것’에 대해갖는 무조건적인 편애에는 사실 까닭이랄 게 없다. 낭만주의 작곡가, 디자인, 표현주의 회화, 30년대 독일 건축까지 그저 내 취향의 영역에 머물던 것들이었다. 그 때문일까? 독일 쾰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이은영을 만나러 가는 내 마음은 ICE의 속도감처럼 한껏 설렌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일에서 건축만을 해왔던 한국인 건축가가, 마침내는 도시 슈투트가르트의 새로운 도서관 설계를 진행되기까지의 스토리가 얼마나 드라마틱할지에 대한 기대감.게다가 건축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란 감성과 논리가 혼재된 명료한 힘이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늘 움직거리게 하지 않았던가. 





일요일 오전의 쾰른 거리는 한산했고, 호헨슈타우펜링의 <Yi architects> 사무실은 평일의 분주함이 정지된 듯 고요했다. 투박한 잔에 가득 담긴 커피를 마시다가 사무실 가장 넓은 벽에 걸린 슈트트가르트 도서관 투시도에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1999년 유럽공개현상공모에서 당선이 되었는데 슈투트가르트 시 전체의 프로젝트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5년 간의 협상기간을 기다려야 했지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8년 착공을 했어요. 10년을 준비하고 있지만 늘 제게는 흥분과 긴장을 줍니다.” 독일 땅을 밟은 지 10년 만인 지난 94년, 설계 사무소를 독립한 이후 그는 줄곧 큼직한 국제 공모전의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품었던 건축에 대한 질문들을 실험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 하나의 도서관을 그려 놓고서야 자신이 그토록 찾던 것에 도달했음을 감지하던 어느 날 당선의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심사가 모두 끝난 이후에야 신상이 적힌 봉투를 뜯어보는데 심사위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해요. 당연히 유럽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모르는 한국사람 이름이 적혀져 있었으니까요. 유럽 건축의 역사를 용해시켜 추상화시킨 점이 선정 이유였는데 아시아 사람이었으니 당황했겠죠.” 런던의 브리티쉬 도서관이나 파리의 미테랑 도서관이 그렇듯이, 도서관이라는 건물이 하나의 도시에서 특히나 유럽의 도시에서 차지하는 상징적인 무게를 생각해 볼 때 이은영의 당선은 놀라운 쾌거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현란한 건축이 유럽에도 유행처럼 퍼져있어요.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건물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즘(ism)’들이 뒤범벅 되어 있죠. 그러나 오래 전부터 누적된 가치를 어떻게 우리 시대에서 정제시켜내느냐가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에 제 작품엔 유럽의 클래식한 요소들이 많이 보여요.” 모던이라 불리는 지난 한 세기의 흥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과거의 가치들을 삶에서 놓아버렸는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되었다. “수 천 년에 걸쳐 인간 존재가 하나하나 정제해나가면서 만든 이 세계에는 아직도 감동의 여지가 수 없이 남아있는데 모던 소사이어티에서 좌초되었죠. 그걸 조금이나마 회복시킬 수 있다면 내 모든 날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자들도 대개 그러하지만 건축을 업으로 삼는 것 필연적이었을 거라 나는 늘 짐작해왔다. 의지보다 강한 운명 같은 끌림이 있었을 것이라고. “고교 시절, 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들 이 나를 자꾸만 따라다녀서 철 없이 책에만 매달렸어요. 학교 내 기독교 모임 부회장까지 할 정도로 종교에도 관심을 두었는데 이중적이게도 밤에는 또 니체를 탐독했어요. 그만큼 생(生)이 너무나 궁금했던 거였죠. 그러다가 나를 잘 아는 친구 하나가 먼저 건축을 선택해서 대학에 갔는데 ‘네가 할 게 바로 이거다’ 라면서 제게 건축이라는 세계를 보여주었죠.” 종교, 천문학, 철학을 거쳐 마침내 만난 건축의 세계는 경이로웠고, 니체 대신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폰티의 ‘건축 예찬’을 손에 들고 밤을 지새웠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보여지는 건축은 회의를 다져왔다. “70,80년대 무렵 건축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주 답답했어요. 여기선 도저히 답을 못 찾겠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서구의 건축, 그 중에서도 모던 이후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가장 격동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독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80년대 초반 독일의 작은 도시 아헨(Achen)에,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탄생한 바로 그곳에 건축의 실마리를 찾으려 무장한 건축 학도가 도착했다. 그 낯설고 싸늘한 땅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살아서 풀어보겠다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20여 년을 살았다. ‘20대의 한국에서의 시간들이나 30대의 독일에서 보낸 시간들이나 모두 절대적 가치가 있는 건축적 행위에 대한 갈구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어떤 것,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다다르고 싶고, 그것을 담는 건축을 단 한 차례라도 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비효율적이라 할 만큼 그 일에 외골수로 집착하였다.’ 그가 썼던 어느 짧은 글 중에서 내게 너무도 강렬했던 이 문장을 기억한다. 그건 ‘진리’와 ‘절대적 가치’라는 묵직한 말이 어쩐지 낯설고 불편해서이기도 했고, 무언가를 위해 온 존재를 몰두할 수 있는 자기확신이 놀라워서였다. “무언가를 찾겠다고 독일까지 왔는데 이곳에서도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80년대의 독일에는 20년대의 독일 정신이 이미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졸업작품에 내 인생을 걸어 보고 그 이후에 독일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결정하자 했죠. 6개월 간 졸업작품을 준비했는데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독일이 통일 되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자본의 폭풍이 지나간 도시 서울을 떠날 때, 그는 자신이 이 도시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돌아오자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16년 만인 2000년 초,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가장 먼저 모교의 광장 연못가에 백색의 파빌리온을 세웠고, 모교에서 후배인 제자들에게 건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는 역할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정했어요. 고된 일이지만 그 때부터 한 달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가서 강의를 해요.” 쾰른과 서울 사이, 긴긴 이동의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먼 길을 오고 간다. “가끔씩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특히 한국 사회가 안타까울 때, 자꾸 외쳐야 하고 목에 힘줘야 할 상황이 생길 때마다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그저 도공처럼 건축에만 전념하고 싶다가도 또 막상 학생들 눈을 보면 마음이 달라져요. 무언가 갈급해 하면서 한마디를 바라고 있는 그 표정들을 보면 뿌리치기가 힘들죠.” 이은영은 늘 그들에게 “건축하는 사람은 작업에 임할 때 그것이 전부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전부가 아닌 순간 역사 앞에 할 말이 없어진다”는 부연과 함께 말이다. 그건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과는 분명 다른 어조이다. 그리고 저 묵직한 한마디는 학생들에 앞서 건축가 자신을 향한 되뇌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은 인간의 삶 전체와 일대일로 공존하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책임이 높아요. 그것이 삶을 망가뜨리건 일조를 하건 일대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그 책임감에 비해서 요즘 건축가들은 너무 여유가 많아요. 예술처럼 우아하려고만 합니다.” 굳이 비판은 하고 싶지 않다던 그가 잠시 침묵한 뒤 담담히 이런 아쉬움을 전했다. 그리고는 곧 “외치기만 하는 건 부질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외치는 건 그만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라고 나직이 말했다. 마일란드 광장에 정방형의 단호함으로 서게 될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그것이 그의 바람대로 외침하지 않고 고결한 이상의 가치를 담아내기를 기대해본다. 며칠 전, 쾰른의 그에게서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건물 동쪽 상부에 한글로 ‘도서관’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단다. 곧장 이 어려운 한글 서체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던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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