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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18. 2020

A Wonderland of Books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실비아 휘트먼 인터뷰_2008년 6월 파리 

아버지 조지 휘트먼에 이어 현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운영중인 실비아 휘트먼 


영화 비포 선셋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10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가 ‘서점’일 거라고 어느 누가 상상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유명작가로 파리의 서점에 초청되어 ‘작가와의 대화’에서 풀어놓은 저 멋진 답변들은 실제로 작가가 되어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에단 호크라는 배우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 줄리 델피는 종종 LA에 거처할 지언정 그녀가 적을 둔 도시는 언제나 파리였다. 그래서, 파리의 오래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그와 그녀가 ‘마침내’ 다시 만나는 공간이 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1921년, 미국 국적의 여인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문을 연 이 서점은 애초부터 영어로 쓰여진 책만 판매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치는 태초의 파리가 시작된 노틀담 성당 앞, 부쉐리 거리 37번지에 있다. 20세기 영미 문학의 ‘잃어버린 세대’들인 에즈라 파운드, 헤밍웨이, 헨리 밀러가 단골이었으며 제임스 조이스 역시 이곳과 깊이 조우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서점 문을 닫았다가 실비아 비치의 친구였던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에 의해 1956년 다시 열었다. 그는 영국인이었으며 보헤미안이었다. 아메리카 여행을 즐겼고, 매일 오후 다섯 시에 직접 구운 케익과 홍차를 마셨으며, 서점에 머물며 늘 책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 지냈다. 지금도 이어지는 ‘시 낭송의 시간’은 그에게서 전해진 전통이다. 그리고, 조지 휘트먼을 이은 오늘의 서점 주인은 아직 서른 살도 안된 그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다. 



영화 속 배경이 된 이후 이 작은 서점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덕분에 실비아는 다양한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 영화 속 공간은 서점 1층 계산대를 없애고 개조를 해서야 가능했던 풍경이고, 제시와 셀린느가 서점에서 걸어 찾아간 ‘Café pure’는 실은 차로 20분을 가야 하는 동네에 위치한 것임을 설명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제시와 셀린느가 재회하기 이전부터 이 곳은 이미 문학을 사랑하는 파리의 브리티쉬와 파리지엔들이 애호하는 장소이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벌써 두 시간 째 계단 밑 나무의자에 앉아 토마스 하디를 읽고 있는 한 남자,그리고 영국식 발음으로 나직이 논쟁하는 두 중년이 다른 한 켠에 서있다. 한 청년은 에밀 루소의 오랜 책을 들고 와 희귀본임을 강조하며 관심을 보이는 몇 명의 손님들과 거래 중이다. 



더불어, 늦은 밤 흐르는 쇼팽의 녹턴은 탁월한 선곡이다. 서점 1층 뒤쪽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는 언젠가 촬영을 위해 공수한 뒤 마땅히 둘 곳이 없어 계속 그 자리를 지킨단다. 그로부터 그 피아노는 연주를 하고픈 모두를 위해 열려 있다. “책을 고르는 손님들이 아주 좋아해요. 조금은 어설픈 연주라도 직접 듣는 음악은 따듯함이 느껴지잖아요. 원하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어요. 딱 한번 ‘너무 괴로웠던 바하’를 제외하고 모두의 연주가 훌륭했어요.” 그래서, 어느 때엔 포레가 흐르고 이따금 듀크 엘링턴이 연주되기도 한다. 긴긴 파리의 밤, 소란스런 바(Bar)나 관광객을 위한 유람선이 아니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만큼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인 장소는 없을 것이다. 밤 11시까지의 영업은 오랜 전통이기도 하지만 주인 실비아는 ‘퇴근길에 혹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도중 서점에 들러 하루를 마감하며 책을 고르는 시간이 매우 특별한 일상적 삶’임을 안다. 



이 모든 것이 대형서점과 인터넷 주문에 익숙한 우리에게 너무도 낭만적인 풍경이라면, 여기에 낭만을 넘어선 유토피안적 면모는 밤 11시, 영업이 끝난 이후에 벌어진다. 서점 2층, 몇 개의 매트리스가 놓인 자리는 낮엔 손님을 위한 편안한 자리가 되지만 영업이 끝난 시간부터는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잠자리가 된다. 이는 조지 휘트먼이 젊은 시절 남아프리카 여행 시에 그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베풀어주었던 사람들에게 느끼는 고마운 기억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일전에 어느 에세이스트가 음악을 한다거나 미술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고달프고 애매한 것이 ‘글을 쓰며 살아요’ 라는 말인 것 같다고 했다.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아니라는 말일 터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작가’의 범주는 그저 ‘글을 쓰고 있는 사람’과 ‘글을 쓸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우선 연락을 해오고 간단한 미팅을 갖죠. 현재 어떤 글을 쓰는지, 혹은 어떤 글을 구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여기서 묵을 수 있어요. 작가가 원할 때 까지요.” 2층의 손님이 하나 둘 씩 내려가던 늦은 시간, 앳되 보이는 금발의 청년이 매트리스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안’이라는 이름의 영국 청년으로 그가 바로 이곳에 묵는 작가들 중 하나다. 그는 ‘시’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나눈 몇 마디 문장 중, 그는 ‘황량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그의 주제인 듯 하여 무언가 되물으려는 참, 그는 상냥하게 영업시간이 끝났음을 상기시켰다. 그렇지. 이제 객은 돌아가야 한다. 이 늦은 밤은 온전히 저 젊은 시인을 위한 달콤한 시간일테니까. 과연 헨리 밀러의 말대로,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이곳은 ‘A wonderland of books’ 이다. 글/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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