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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22. 2020

페로땅의 용기와 재치

갤러리스트 엠마누엘 페로땅 인터뷰_2009년 10월 파리 

파리의 컨템퍼러리 아트가 빈약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함구해야 할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소피 칼, 무라카미 타카시, 미스터, 마리코 모리와 같은 아티스트를 품고 있는 마레의 엠마누엘 페로땅 갤러리를 알게 된다면 말이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갤러리를 열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파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주인이 된 무슈 엠마뉴엘 페로땅. 그의 갤러리 오프닝에서 티셔츠 차림의 이완 맥그리거를 마주치고, 홀로 샴페인을 들고 서성이는 나라 요시토모를 만나는 이벤트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리지엔 모두가 바캉스라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주인 없이 적막했던 아침, 보주광장의 아담한 호텔에서 엠마뉴엘 페로땅을 마주했다.  



박선영:막 베니스에서 돌아왔다고 들었다. 올해 비엔날레는 어땠나?

엠마누엘 페로땅:미술 안에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가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엔날레는 늘 흥미롭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을 찾기 힘들었고, 작품들의 질적인 면에서 우울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미술 안에서 우리의 감각이 무감각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사고를 긴장시키고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박선영:갤러리스트로서 당신은 현대미술의 어떤 부분을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하나?
엠마누엘 페로땅:어떤 작품을 좋아하게 될 때는 그것의 미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감각적인 면일 수도 있고 혹은 지적인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의 현대미술에서는 미적인 쇼크가 다른 무엇보다 강력하지만 어떤 작품이 컬렉터의 눈을 이끄는가는 분명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갤러리를 20년 넘게 운영하면서 쌓아 온 나만의 안목과 직감이 있다. 당신이 셔츠 속에 무엇을 입었는지도 볼 수 있다.




박선영:어떻게 갤러리스트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엠마누엘 페로땅:17살부터 4년간 갤러리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했고, 21살에 처음 내 갤러리를 열었다. 나는 시작부터 아주 운이 좋았고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도미닉 곤잘레스 포스터(Dominique Gonzales Forester), 데미안 허스트(Damian Hirst)등 나와 같이 젊은 열정으로 시작했던 작가들이 유명해졌고 미술계 안에서 확실하게 자기 위치를 선점했다. 사람들은 내가 부유해서 어린 나이에 갤러리를 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17살부터 일을 시작해서 큰 자본 없이 갤러리를 여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그 이후 모든 일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 




박선영:어떻게 해서 파리의 가장 중요한 갤러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가? 어떻게 젊은 나이에 그런 유명한 사람들의 전시를 열수 있었나?
엠마누엘 페로땅:초창기에 우리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던 대부분의 작가들은 당시엔 인지도가 없었다. 처음 데미안 허스트를 런던 근교의 작은 아트센터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무명이었고, 사치(Saatchi)의 눈에 띄기 이전 우리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만난 무라카미 다카시는 첫 해외 전시를 우리 갤러리에서 1993년에 열었다. 마우리지오 카틀란은 이탈리아의 어느 그룹전에서 만났다.  그 무렵 미술계의 분위기는 파리보다는 런던, 뉴욕이 중요해졌고 나도 20대 중반 무렵 일본과 뉴욕, 바젤로 진출했다. 젊었던 나에게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좋은 아티스트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만 했기 때문에 열정으로 뛰었다.  




박선영: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반대로 괴로운 점은 무엇인가?
엠마누엘 페로땅:가장 큰 즐거움은 작가들의 프로젝트들을 실현시키는 것에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 되려면 적지 않은 액수의 돈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작가가 더 잘 알려지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일은 나의 몫이다. 쉽지 않음에도 큰 즐거움을 주는 일들이다. 이 일을 하면서 힘든 건 두 세달 쯤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티스트들이 항상 결정을 기다리고 물어오기 때문에 늘 갤러리에 머물러야 한다. 가끔은 노예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갤러리스트의 운명이나 다름없다. 하루나 이틀쯤 쉬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박선영:당신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작가들이 있을텐데...
엠마누엘 페로땅:물론이다. 우선 마우리지오 카틀란은 좋은 친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신뢰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할 아티스트를 선정하는데 있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때론 직접 개입을 하기도 한다. 무라카미 역시 시스템을 조직하고 아티스트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만 해당하는 일들이다. 그들이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그들에게 묻고 이용하고 한다. 우리 갤러리에 소속된 다양한 작가들 덕분에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낸다. 우리 갤리리의 아티스트들은 나의 가장 좋은 조언자들이다.




박선영:당신 갤러리에 소속된 아티스트 소피 칼이나 마우리지오 카틀란, 무라카미 다카시 등 그들과 일하기 위해선 정말이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 같다. 
엠마누엘 페로땅:그렇다. 늘 재치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큰 작가들과 일을 할 때는 어떤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이 5년이나 10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그들은 당장 떠나버리고 만다. 어시스턴트나 갤러리스트 모두  이것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큰 작가들과 일을 할 때에는 작가들의 만족과 컬렉셔너들의 만족, 미술관의 만족 사이에서 그 중간지점을 잘 찾아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흔히 작가들은 자신들만 많은 수고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컬렉셔너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 덕분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납득하도록 교섭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좋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잘 해왔다는 걸 의미한다.  




박선영:결국은 작가와 갤러리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엠마누엘 페로땅:둘의 관계는 아주 흥미롭다.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서로 두터운 신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가끔 작가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미술게의 큰 작가가 되어 나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단히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어떻게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난감한 순간도 생긴다. 남녀 사이처럼 미묘한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난 되도록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박선영:요즘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엠마누엘 페로땅: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 혹은 언제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생각들을 자주 한다. 다소 철학적인 물음들이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선영:그렇다면 요즘 당신 삶은 만족스러운가? 
엠마누엘 페로땅: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다. 우선 갤러리 일들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한가지에 완전히 올인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매번 모두를 투자하기 때문에 운이 좋지 않으면 한번에 완전히 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스타일은 최근의 경제 위기에서도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 바젤 아트페어에서도 다른 갤러리들은 이벤트를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대규모의 파티를 열었다. 그 일이 바젤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세일즈로도 잘 이어져 성공적이었다. 여러 가지 전략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 바젤에서의 단발적인 일이었지만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박선영:이 일은 계속할 생각인가?
엠마누엘 페로땅: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자극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잇다는 점에서 이 일은 중독성이 있다. 이른 나이에 학업을 그만 두면서 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걸 꿈꾸었다. 한 동안은 갤러리를 하면서도 동시에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해내고 싶다. 다만 아직까지는 어떤 혁명적이다 할 만큼 큰 획이 될만한 일을 만들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아트를 통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젠가 꼭 어떤 변화를 가져올만한 일을 만들고 싶다. 




박선영:좋은 갤러리스트가 되기 위한 어떤 조건이 있다면?
엠마누엘 페로땅: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늘 어디서든 아티스트나 컬렉터를 유혹할 태세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분간의 대화를 15분 더 이야기할 상황으로 만들고 결국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보다 멀리, 미리 꿰뚫어 봐야 한다. 작가들의 현재가 아닌 그들이 품고 있는 가능성과 프로젝트들 그리고 미술의 움직임을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컬렉터들이 큰 돈을 지불하면서 믿을 수 있는 건 젊은 작가가 아니라 확신에 찬 갤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박선영:당신의 거실에는 어떤 작품들이 걸려있나?
엠마누엘 페로땅:현재 집이 공사 중이라 작품을 모두 떼어 낸 상태지만 문제는 우리 집 거실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걸어 둘 수가 없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 그 작품을 사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무라카미의 작품을 걸어 두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작품을 사겠다고 제안해왔다.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가 사라고 권하는 작품이 내 집에 걸어둔 작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내가 내 집에 작품을 걸어두기 곤란한 제약 같은 것이다.  




박선영:당신을 우연히 만날 때마다 조용한 패션감각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무엇인가?
엠마누엘 페로땅: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다. 실은 패션에 아주 관심이 많다. 요즘 집이 공사 중이라 내 옷의 2% 정도만 박스에 담아 호텔로 가져와 생활하고 있다. 즐겨 입는 브랜드는 Balenciaga, Eddie slimane, APC, Pierre Hardy, Cosmic wonder 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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