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정신건강에 정말 매우 많이 좋지 못합니다
사회에 나온 지 7년 차, 초반이라는 예쁜 나이가 중반으로 바뀌었고, 어느덧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짬밥 사회생이 되고 있는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퇴사하고 싶다."
고객과 매장에서 치이는 날이면 중얼거리게 된다. 이 말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파트너들이 입버릇으로 가지고 있었다. 진심으로 퇴사하고 싶다기보다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로 인식할 정도로 꽤 빈번하게 사용했다. 스타벅스 내에서는 사직서를 퇴직원으로 부르는데, 서류를 제출하고 상사의 승인이 나면 우리는 진정으로 퇴사를 승인받았다 말할 수 있었다.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를 장난반 진담 반으로 할 때는 전혀 몰랐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그래서 농담이 섞인 말로 뱉을 수 있었고, 진심으로 퇴사를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어법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말을 17090249번 정도 읊조린 후에야 제대로 된 출력을 1번 할 수 있었는데, 진심의 1번을 위한 과정은 지극히 진상이었다. 휴직기간부터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약 7개월 , 결정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데 1달 하고 15일 정도 걸렸다.
재직 2년 차 자가면역성 갑상선염 발병
재직 3년 차 과호흡 및 미주신경성 실신 발병
재직 4년 차 경추 추간판 탈출증(목디스크)
재직 5년 차 디스크가 호전되었으나, 경추 상완 증후군 진행
차라리 정신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벅태기(스타벅스 권태기의 줄임말)를 이겨내는 와중에, 근속 1년 차를 지나고 매해마다 사지가 삐걱였었지만 그 신호를 무시했다. 마음이 아픈 것보다는 몸이 아픈 게 낫다고. 일하는 사람이 사지육신 멀쩡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일하는 누구나라면 어디 하나쯤은 고장 난 채로 일하는 게 맞는 거라고. 그래서 이 모든 질병을 앓으면서도 디스크로 인한 휴직 3개월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이상한 워커홀릭은 20살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고질병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학업을 병행하며 투잡(two job), 쓰리잡까지 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성인은 집에서 용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음주가무가 허용되는 나이에 용돈은 사치였다.
둘째, 용돈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편한(?) 소비를 할 수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나름 유복하게 자란 편이었다. 덕분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해본 적도 없고, 신청해도 해당 분위에 선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딸의 최소한의 용돈만큼은 아주 까다로우셨다. 물가 반영률은 용돈과 비례하지 않았다.(내 월급 빼고 다 올라! 와 같은 이치)
셋째, 공부와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주위 의식에 민감한 편이었던 나는, 그 당시 '치열하고, 열심히' 사는 것에 미쳐있었다. 생각해보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나름의 콤플렉스를 현실에 치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이렇게 자리 잡힌 사회초년생의 기반은 '일은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회초년생은 레벨 업을 하면서 다양한 병들을 보상으로 얻었다. 연말정산 때 환급받는 금액은 모조리 병원비로 들어갔다. 그래도 마냥 열심히 일을 했다. 유일하게 잘못한 게 있다면 정말 '일. 만 열심히 한 것'이 잘못이었다.
나름 중증이라면 중증인 질병을 겪고 나서도 퇴사를 결정하지 못했던 너무 시시한 이유이다. 퇴사 이후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퇴사란 내게 너무 어려웠다. 퇴사를 하면 '스타벅스 윤랑'은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자발적으로 나의 존재를 지우는 것인 셈이었다. 내가 있었던 곳,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놓는것이 어려웠다. 내 자리에서 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도돌이표에 가둔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결정을 하는 행위 자체가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모순적인 것은 퇴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건강으로 인해 퇴사를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미 뒷전이었다. 몸이 아파서 그만둬야 된다는 걸 자꾸 외면했다. 스타벅스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파트너였기 때문에 가능한 애정이었고, 파트너가 되어서야 애증이 되었다. 적어도 나와 같이 근속했던 든든한 파트너들은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고장 난 몸에 건강한 마음이 있을 리 없었고, 그 안은 곰팡이들이 피어났다. 이 곰팡이는 '만약에'라는 가정이었다. 퇴사는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만약.. 정말 만약.. 되돌아오게 된다면? 내가 재입사를 하게 된다면? 감정 바이오리듬은 매일 T-express였고, 매일이 PMS증후군을 앓는 듯했다. ' 왜 입사보다 퇴사가 인생의 더 힘든 거지.' 다른 사람이 뽑아줘야 가능한 입사가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퇴사보다 몇만 배는 나아 보였다.
머리를 통한 생각이 소화기관을 따라 마음까지 서서히 침식당했다. 보통 인지부조화라고 하지 않던가. 인식되어 있는 상용구들을 내뱉으며, 지배적인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 고맙습니다! 오늘도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 "
' 그만두면 뭐하지. 커피를 놓기는 싫은데.. 이직할 곳 찾아볼까? '
" A-44번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드리겠습니다! "
' 퇴사하는 게 정말 맞을까. 이렇게 일하는 게 너무 익숙하고 잘하는 일인데...'
" 여러분! 저 마감업무 하고 올게요! "
' 부점장 승격 공지도 곧 올라올 텐데.. 이번까지만 해보고 몸을 돌보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권태로울 때에는 친한 친구들을 괴롭혔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면서 답지 않게 조언을 얻겠다며 시간과 체력을 쏟았다. 자발적 퇴사가 아닌 회사가 망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처럼 권고사직 코스프레를 자처하며 정신적으로 피폐 해지는 건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다.
정말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이미 몸은 퇴사를 마쳤다. '만약에'의 미래의 두려움보다 현재의 내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더 강력한 전염병이 찾아온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