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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엄마 Nov 30. 2020

아침산책

출산 후 아이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고 있다. 식사시간이면 내 밥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반도 안 씹어 삼키고, 늘어난 집안 살림살이에 치이는 와중에 그래도 아이가 있는 공간이니 안하던 깔끔을 떠느라 왜 이리 바쁜지. 잠이라도 편히 자면 좋으련만 밤새 종횡무진 침대를 누비는 아이가 떨어지는 걸 막고자 남편은 저쪽 끝에서 나는 이쪽 끝에 몸을 겨우 누인다.


버티다 버티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돌아버리겠다.' 라는 순간이 파도처럼 주기적으로 밀려온다.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 줘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니까. 카푸치노 한잔, 책 몇 장, 눈을 감고 심호흡 열 번, 오늘의 감정을 일기로 적어보기, 따듯한 물에 샤워 10분 그리고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기. 거창한 게 아니다. 나에게 집중하고 소소한 일상에 정성들여 주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겠지.


아이로만 가득 찬 내 하루에 힘들어도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본다. 아침 일곱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젖을 물려 아이를 배부르게 만든 다음 옷을 갈아입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선다. 요즘 들어 밤새 두세 번은 깨는 아이 덕분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낮은 산을 오르며 두 번의 오르막길을 만난다. 허벅지 앞 근육, 종아리 근육이 땅기도록 다리를 쭈욱 쭈욱 뒤로 밀며 슈-슈- 숨을 뱉는다. "리사야 아침에 엄마랑 산책 나오니까 좋지? 상쾌한 아침 공기 마시니까 좋지? 저기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네! 아줌마가 달리기를 하네!" 아이의 얼굴이 퍽 즐거워 보이지 않아도 별 수 없다. 유모차의 핸들은 내게 있으니.


오르막길 하나가 끝나면 내적갈등에 휩싸인다. 힘드니까 유모차를 돌려 왠지 집에 가고만 싶다. 그래도 거의 항상 두 번째 오르막길까지 완주한다. 아침부터 무언가 해낸 기분. 꼭대기에서 기지개를 쭈욱 켜고 1부터 10까지 센다.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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