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삼십 년 인생에 엄마가 집을 청소해준 것 말고 남이 나의 공간을 정리해준 것은 처음이다.
타국에서 아이를 낳고 꾸역꾸역 남편 밥을 지어먹이고 아기 이유식을 해 먹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그러고는 나도 보살피려니 집안꼴이 돼지우리다. 내 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심하게 두드러기도 났다. 전기세가 무서워 있어도 쓰지 않던 식기세척기는 그날 이후로 열심히 돌아가는 중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궁상떨며 자부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결국 난 무릎을 꿇었다.
주인 댁에 종종 청소 아주머니가 다녀가시는데, 그분이 오실 때 종종 나도 껴서 한두 시간 그저 욕실 청소만 부탁드려도 되겠냐고 여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남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언제나 부끄럽다. 지저분하고 청소되지 않은 사적인 공간을 보여준 다는 것, 이건 마치 치질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그 느낌과 흡사했다. 상대가 아무리 프로페셔널이라 해도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며칠 전부터 아주머니가 청소를 잘하실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했다. 빨래 바구니를 밖으로 빼놓고, 수건들은 한데 모아 오랜만에 고온 세탁을 하고, 구석구석 있는 쓰레기들을 버리고, 수채 구멍에 잔뜩 낀 부끄러운 머리카락도 빼고, 샤워부스에 낀 곰팡이도 조금 제거하고, 널브러진 화장품이며 세면도구들을 정리했다. 진작에 이렇게 정리 좀 더 하고 지낼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또 이 정도면 남을 부르지 않고 내가 직접 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지러운 화장실만큼이나 어지러운 마음을 품고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다.
청소도구가 있는 곳을 보여드리고 몇 가지 안내를 해 드린 후에 나는 원래 하던 일상을 이어나갔다. 아기 이유식을 먹이며 정신없이 내 밥을 먹었다. 식사 후 밥풀이 잔뜩 묻은 아이의 얼굴과 손발을 씻겨주고 내복을 갈아입혔다. 친정부모님과 잠시 영상통화를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식사가 끝난 주방을 치우고...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반쪽은 아이와 함께였지만 반쪽은 청소 아주머니를 향해 신경이 팔려있었다. 내가 지금 너무 편한 건 아닌지, 누워서 아이랑 노닥거리는 게 괜스레 마음에 찔렸다. 중간중간 옆을 지나며 열심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따순집에서 애랑 씨름하느라 힘들다고 매일 푸념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쓰는 이 돈들이 결코 쉽지 않음도 되새김질해야 했다. 소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해서 우리를 먹여 살리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반성과 감사로 마음이 바쁜데 퇴근하고 온 남편은 오래간만에 광이 나는 욕실을 보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날 밤 오줌을 누던 나는 변깃물을 거의 마실 뻔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다가 잠시 내려와 한숨 돌리고 이마에 땀도 닦아 본 고마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