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즐겨찾기_5. 안리타

삶의 통찰력이 가져다주는 위로와 위안

by 천사의 시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독립출판 서적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도서들만 읽어오다 개인이 책을 출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독립출판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제주도는 독립출판 서적들을 판매하는 서점들이 곳곳에 소재하고 있었기에 참으로 적절한 환경이기도 했다. 여가시간을 주로 책을 읽으며 보내는 나에게 제주도는 환경적으로나 분위기로나 적당한 곳이었다.


육지로 올라오고 보니 제주도만큼 오프라인 서점이 흔하지는 않아서 나의 즐거움 하나가 줄어들어 아쉬웠는데, 주변에 독립출판 서점 한 곳을 발견했다. 이후 그 서점을 들락거리며 발견하게 된 작가가 있다.


'안리타'


이미 독립출판계에선 인지도가 있는 작가인 듯 보였으나, 나는 '안리타'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한때 내게 삶이었던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사라지는, 살아지는

이, 별의 사각지대


처음 '안리타'작가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제목들이 하나같이 나의 눈을 잡아끌었다.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읽었던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의 짧은 리뷰에서 작가의 글이 시인지 에세이인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썼었는데 글의 구분과 별개로 삶에 대한 통찰력이 너무나 공감이 가서 마음에 들었다.


이 여름, 고생 많다.

남의 집 좁은 담벼락에서도 참 잘 살아간다.

먼저 시든 꽃 옆에 막 태어난 능소화가 가업을 잇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피는 일.

불만도, 좌절도 없이.

위로도, 걱정도 없이.


최선을 다해 한 가족이 피고 지는 중이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다 생각했다.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만 만나고 싶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일은,

단지 자신을 사는 것,

가장 사소한 마음을 살고,

그 기쁨을 알고,

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일.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니까.

(사라지는 꽃, 옆에 살아지는 꽃_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중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 참 오랜만이었다. 작가의 첫 책으로 인해 작가의 글이 궁금해져서 작가의 책들을 사 모으듯 읽기 시작했다.


너도 보고 있겠지, 이 달빛을,

나는 이제 제법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어.

어디서도 행복하기를,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한때 내게 삶이었던 중에서)


내가 쓰는 글과 유사하면서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표현력이 없어 나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녀는 자신만의 유려한 글솜씨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책 역시 나에게는 거의 대부분이 밑줄이었다.


작가의 글은 그다지 긴 편이 아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그 점도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데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점이기도 하다. 신기한 건 그리 길지 않은 글 속에 삶의 잔상이 눈에 그려지듯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눈앞에 그녀의 글을 닮은 장면들이 그려진다. 글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글은 글의 장면들이 유독 선명하게 드러나서 더 좋다.


나약한 내가 춥고 힘들다, 고 말하자 이성의 내가 그깟 것 힘들다고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래? 말한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사이가 나쁜 내 자아들이 툴툴거리면서도 제법 말을 섞는다.


그래, 이게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지, 그 정도로 무너질 내가 아니잖아!


이쯤 되면 나는 두 개의 의견에 타협점을 찾는다. 힘들다는 생각만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컷 흔들어봐, 나는 쉽게 좌절하지 않지, 이 고비를 계속 걸어 나갈 거야, 난 그다음이 늘 궁금하거든.


감정이 앞서 넘어지려 하다가도 이성의 의식은 재빨리 화답한다. 그 정도로 무너져 내리진 않아, 나는 너를 믿어, 믿어, 너를, 너는 강하고 유연하지. 아름답고 빛이 나지. 나는 너의 어두움 밑바닥까지 사랑하거든. 그리하여 나는 이 삶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으려 한다.

(타협_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중에서)


그리고 작가의 글은 대부분 희망적이어서, 작가의 글은 그런 힘이 있어서 나는 작가의 글을 더욱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나의 무릎을 꿇려도 일어서게 만드는 힘을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얻는다.


이별은 다시 나에게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다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자 목련은 홍 매화의 삶을 살 수 없고, 홍 매화도 자 목련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우리 인간도 그와 같아서 내 스스로를 피워낸다.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견뎌야 하는 모든 시간은 견디어야 했고

견딜 수밖에 없었으며 견뎌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너무 상심하지 않기를

사라져야 하는 모든 것은 사라져야 했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으며 사라지는 것이니까.

(사라지는, 살아지는 중에서)


작가의 책에서 독일어가 종종 등장한다. 작가의 책 '사라지는, 살아지는'에는 독일어로 쓰여진 글들이 종종 등장한다. 독일어로 된 글을 읽어내기가 난감하여 번역기를 돌렸다. 번역이 정확한지와는 상관없이 알지 못함을 핑계로 삼아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나의 감정대로 읽었다.


삶의 경험을 풀어내는 작가의 표현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내가 그녀의 글을 찾아서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은 분명 다를 것인데 경험에 대한 나의 생각의 결과와 작가의 생각의 결과가 너무나 비슷하여 나에게 있어 작가의 글은 너무나 공감을 하게 되어버린다는 점에 있다.


정작 아쉬운 것은 지나간 당신들이 아니다.

내 편이라 믿었던, 간절했고 위로가 되었던

한때의 생각들마저도 너무 멀리 떠나갈 때,

나의 일기가 나의 목소리를 잃을 때,

나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낀다.

나조차도 나와 멀어지는 일,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나의 일기가 나의 목소리를 잃을 때_이, 별의 사각지대 중에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큰 위안을 얻었으니 내가 작가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또 다른 '안리타' 작가의 책을 찾아서 독립서점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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