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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Nov 17. 2024

과도한 감정이입

살아감이 어디 행복으로 이루어졌던가?


가을과 겨울의 사이 묘하게 긴장감을 형성하는 분위기를 가진 날들이 있다. 비가 올 듯 말 듯 잔뜩 흐려져서 온 세상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그런 날이다. 방금 갓 끓여낸 뜨거운 차 한 모금이 딱 어울리는 그런 순간을 지금 보내고 있다. 어딘가는 노랗게 물들었고, 어딘가는 빨갛게 물들었고, 어딘가는 그저 헐벗었다. 이제는 겨울의 추위가 잔뜩 몰려오려고 준비 중인가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도 희뿌연 안개가 잔뜩 들어차서 보고 싶지 않은, 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도 듣지 않고 살아간다. '행복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이는 아직은 순수하다고, 그래서 상대하지 않는다. 행복을 찾지 않는 나로인해 그이의 순수함이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살아감이 어디 행복으로 이루어졌던가? 그것은 그저 세상의 모든 부정에 해당하며 그 사이에서 아주 잠깐의 밝음이 존재할 뿐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정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이유를 밝히라고 한다면 글로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의 존재가 확실한 이유가 되겠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살아감의 긍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살아감의 부정들이 아프게도 존재함을 확인한다. 회한 섞인 그들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건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에는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은 하나하나의 부정들이 이제는 그들을 살아가게 한다. 그 부정을 이겨낸 경험으로 지금의 부정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삶을 어떻게 '행복'과 '불행'으로만 결정지을 수 있겠는가? 누구나 충분한 삶을 살았고, 온전한 삶을 살았으며, 그저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배워간다. 장롱 자격증으로 묵힐 거라고 다짐했는데 다짐대로 되지 않는다. 웬만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지 못 할 거라고, 그러니 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 뜻대로 되지 않는다. 대상자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한다. 감정소모가 참으로 크다. 아직 적응단계라고, 시간이 지나면 기계처럼 그들을 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이 직업군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소모되는 기력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까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즈음은 엉망진창, 뒤죽박죽,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출근이라는 걸 한다.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음에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또한 그다지 불행이라고 느껴질 만한 무엇이 없어서 그것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하지만 나름 평안한 살아감이다. 요즈음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다. 독감예방주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다. 이제는 주사 맞는 것도 자꾸만 더 아파진다. 내가 만나는 그들의 인생을 나도 따라가는 거겠지. 결국에는 그들처럼 충분한 삶을 살고, 온전한 삶을 살며, 오직 나의 삶을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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