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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Mar 23. 2024

극동의 진주 블라디보스톡

동양의 유럽

러시아 극동에 자리한 인구 약 60만 명의 블라디보스톡은 연해주(沿海州)의 주도(州都)로 인천공항에서 2시간 여 비행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유럽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연해주의 러시아어 명칭은 프리모르스키(Примо́рский) 크라이(край; 州)로 줄여서 '프리모리예'로 불리는데, 면적 165,900 km², 인구 195만 명으로 주요 도시는 블라디보스, 우수리스크, 나홋카 등이다. 주요 항구는 블라디보스톡을 비롯 자루비노, 바스토치니, 올가, 포시에트, 나홋카 등이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1860년 중-러 베이징조약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할양받은 지역으로 면적 331.16㎢, 인구는 약 60만 명이며 주요 산업은 무역업, 건설업, 수산업, 조선업, 자동차 조립업 등이다.


한 해가 다 지나가려는 12월 말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북한 지역을 우회해서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비행 편 수와 여행자가 적어 시골 공항처럼 적막감 마저 감돈다. 블라디보스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 겸용으로 연간 여객 수용능력 350만 명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공항이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북한 등 국제선을 포함하여 30여 개 지역으로 취항하고 있으며, 2013년도 기준 이용승객 수는 185만 명이었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 수단은 버스나 택시가 있다고 한다. 택시로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데 기사와 흥정해서 2000 루블 내외의 요금을 지불했다. 시내 연해주 연방 정부청사 부근 아무르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마략' 호텔에 짐을 풀었다. Moryak는 러시아어로 '등대'라는 의미라고 한다. 블라디보스주요 볼거리들은 걸어서 하루면 둘러볼 수 있는 중심 거리 주변에 모여 있다.


먼저 블라디보스 철도역사로 향했다. 역사로 진입하는 육교 아래 여러 철로 가운데 하나에 1904년 러시아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제작되어 이곳으로 인도되었다는 철도 차량 한 량도 눈에 띈다.


역사 건물은 1907-1912년 코노발로프의 설계에 따라 건설되었는데, 그리 넓지 않은 역사 내부의 천정에는 횡단열차가 지나가는 하바롭스크 등 주요 도시의 명소가 운치 있게 그려져 있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을 잇는 길이 9,288km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역사 대합실 한쪽 벽면엔 2015년 부산역과 블라디역 간에 맺은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동판이 붙어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동서 냉전으로 부산에서 출발하여 이곳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횡단철도 개통은 머나먼 꿈으로만 느껴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모스크바까지 가서 유럽으로 넘어갈 예정이라는 배낭여행 중인 K대 대학생은 "두 시간 거리에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도시가 있다는 게 신비롭다"라고 했다.


기차역 맞은편 얕은 언덕에는 레닌공원이 자리한다. 공원에 우뚝 서있는 레닌 동상은 '동방을 정복하라(vladi:정복하다+vostok; 동쪽)'는 의미의 도시 이름처럼 오른손을 들어 동편 바다 쪽을 가리키고 있다.


철도역 건너 바다 쪽에 국제여객선 터미널이 있는데 블라디보스톡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러시아 극동 유일의 부동항이다. 블라디보스 항은 1860년 군항으로 시작, 1897년부터 국내 상업항으로 병용되었고 1991년부터 취급하기 시작한 국제화물도 연간 처리량은 1,100만 톤 규모라고 한다.


블라디보스 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DBS크루저훼리(주)의 탑승정원 530명의 13,000톤급 화객선 이스턴드림호가 2009.6.29일부터 '러 블라디 ⇔ 韓 동해 ⇔ 日 사카이미나토' 간을 주 1회씩 운행해 왔다. 선사 관계자는 러시아로부터 동해항으로의 입국자 수는 평균 230여 명으로 여행자와 선원이 대부분이고, ‘동해-사카이 미나토’ 노선은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지었다는 이 도시 유일의 5성급 호텔인 현대호텔(현 롯데호텔)에는 2006년 4월에 정식 발족한 연해주한인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한인회 간사 K 씨는 방문 당시 연해주 한인회에 등록된 회원 수는 약 350명으로 주재원과 유학생이 대부분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100여 명의 한국 유학생이 극동연방대학, 해양대학, 수산대학, 서비스대학 등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한편, 연해주에는 한국인 후손인 고려인들이 약 5만 명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주블라디보스대한민국총영사관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이 도시와 연해주가 우리와도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곳임을 알려준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우리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아주 밀접​한 지역이다. 연해주는 698년 건국된 발해의 영토 중 하나였다. 1864년경 연해주 지신허라는 마을로 최초의 한인 이주가 이루어졌고, 1900년 블라디보스 동방대학에 세계 최초로 한국문학과가 개설되었다.


연해주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일제 강점기 조국 광복을 위한 해외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1860년 북경조약에 따라 연해주 일대가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자 같은 해 7월 러 해군 군함이 블라디보스 금각만에 진주하여 초소를 설치했고, 이후 러시아 중남부 지역 농업, 수공업 종사자와 군인, 망명자 등이 이주해 왔다고 한다.


과거에는 혁명광장으로 불렸던 중앙광장에 설치된 대형 트리 등 설치물은 1월 7일 러시아 정교회 성탄일이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밤에 광장을 둘러보니 가족이나 연인들이 연방청사 건물 한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레이저쇼와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독수리전망대는 블라디보스시내와 금각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회 수도사로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러시아어를 고안했다고 알려진 키릴과 메포디 형제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잔잔한 바다 위 차량 흐름이 멈추지 않는 금각교가 한눈에 내려다 뵈는 전망대 난간에는 연인들이 채워 놓은 '사랑의 맹약'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전망대에서 개선문, 정교회 교회당, 영원의 불꽃 등을 거쳐 내려오면 박물관으로 개조된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잠수함 내부를 둘러보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세모라 휴관 중인 연해주아트갤러리 바로 옆에 문을 연 별도의 미술 전시관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가 친절히 맞이한다. 그림마다 붙여진 설명은 내용을 알 수가 없지만 '2015' 등 연도 표시로 보아 금년이나 최근에 완성된 현대작가들의 작품들로 보인다. 마침 붉은 원숭이 그림도 눈에 띄어 하루가 지나면 맞이할 2016년 병신년 안녕을 기원해 본다.


매서운 바람 눈길을 헤치고 크리스마스트리로 쓸 앙증맞은 작은 나무를 어깨에 메고 아이들과 아내가 기다릴 집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사내의 모습이 정겹고 인상 깊다.


언덕 위 호텔과 미술관 사이 블라디보스항이 내려다 보이는 비탈에 '왕과 나'로 유명한 배우 율브린너의 생가가 있다. 바다 쪽을 내려다보는 그의 동상은 '왕과 나' 등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에서와 같이 당당하고도 늠름하다.


아무르 해변 꽁꽁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강태공 한 분이 얼음구멍을 뚫고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정작 낚아 올린 것은 손가락 길이의 작은 물고기 몇 마리뿐이지만 추위에 아랑곳 않고 두꺼운 얼음 구멍 아래로 시선을 둔 채 낚시에 집중하고 있다.  


큰길 이면 공터에는 이른 아침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날씨에 노상 어물전이 섰다. 중국인 시장에서는 식료품 잡화 등 온갖 물건들이 거래되는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온몸을 꽁꽁 얼릴 듯 냉랭한 겨울에는 독한 보드카 한잔이 제격이다. 이곳 전통음식인 샤슬릭과 스탠더드 브랜드 보드카 안주로 제격인 곰새우의 쫄깃하고 독특한 맛도 결코 잊히지 않을 듯하다.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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