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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04. 2024

한강기맥 갈기산과 금물산

신당고개에서 상창고개까지

설악산 산행에서 돌아온 지 만 이틀만인 6월 말일에 친구들이 산행을 제의해 왔다. 내심 가급적 주말을 낀 산행 만을 하기로 작정했지만, 오늘로써 마지막 근무를 하고 내일부터 공로연수를 시작하는 M을 위한 축하와 격려의 의미를 담아 동참하기로 핬다.

그다음 날인 7월 첫날 아침 6시경 암사역에서 수고롭게 차를 몰고 달려온 친구 M의 차에 H와 함께 탑승해서 산행 들머리인 신당고개로 향했다. 당초 계방산으로 계획했던 목적지는 조율을 거쳐 한강기맥 미답구간인 신당고개~상창고개 구간으로 바꾸었었다. 팔당대교를 건너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과 용문을 지나 국도 44호선으로 갈아타면 금세 신당고개 고갯마루에 닿을 것이다.


차창 밖으로 남한강 이편과 건너편의 예봉 운길 해협 정암 등 수려한 산군이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와 어우러진 모습이 얇은 비단옷을 걸치고 있는 듯하다. 가정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세미원 부근을 지날 때는 연잎이 수면을 온통 짙은 녹색으로 수놓은 모습이 장관이다.


원점회귀가 아닌 동진하는 직선 산행에서 손수 차를 몰아가게 되면 차량 회수가 관건 중 하나다. 지도에서 이번코스와 부근 대중교통편을 자세히 살핀 끝에 들머리인 신당고개 고갯마루에 차를 세워두기로 했다. 날머리인 494호 지방도 기점인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 상창고개에서 112번 버스로 신당고개와 가까운 홍천군 남면 양덕원터미널로 가서 택시로 신당고개로 이동할 요량이다.


경인지역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교통의 주역을 2017년 6월 30일에 전 구간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에게 넘겨준 탓인지 6호선 국도 신당고개 고갯마루에 자리한 홍천휴게소는 폐쇄되어 건물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휴게소와 나란히 자리했던 폐 주유소 옆 너른 공간에는 자재창고를 지을 자재가 높이 싸여 있다.


오전 07:20경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가 비집고 나온 텅 빈 옛 휴게소를 지나 갈기산에서 고갯마루로 내리 뻗은 줄기의 가파른 들머리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했다.


설악로 도로가 등 뒤로 멀어지자 이내 혼잡스럽던 세상의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거친 숨소리와 산새 소리만이 들릴뿐이다. 산객의 발길이 뜸했는지 등로는 초목이 무성히 앞을 가로막아 섰고 걷히지 않은 짙은 안개로 시야는 사방으로 갇혔다. 앞서 길을 잡은 H는 물기를 머금어 바지를 적시는 초목을 헤치며 무던히 전진하고 M과 나는 뒤를 따랐다.


아홉 시경 들머리에서 4km 거리의 해발 685미터 갈기산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 는 검은색 대리석에 한글, 바위 위에 놓인 화강석에 한자(葛基山)로 각각 표기된 표지석이 있는데 모두 양평군에서 세운 것이다. 이번 구간은 신당고개에서 금물산까지는 양평군과 홍천군, 금물산에서 날머리인 상창고개까지는 홍천군과 횡성군의 경계를 이루는데, 양평과 홍천의 경계를 이루는 갈기산에 홍천군이 세운 표지석이 없는 것이 의아했다.


갈기산에서 해발 265미터 발귀현 고개까지 등로는 고도를 400여 미터 낮추며 5km여 이어진다. 갈기산 산정에서 100여 미터 아래 '부부바위'가 사이좋은 잉꼬처럼 몸을 맞대고 서있다. 정수리 부분에 초록 이끼가 무성하니 팥뿌리가 되기까지는 금슬 좋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산객을 맞아주면 좋겠다.

능선을 따라 몇 백 미터 간격으로 자리한 송전탑 부근에는 칡과 키높이로 자란 풀이 무성하다. 갈기산(葛基山)의 명칭이 말의 갈퀴처럼 생겼기 때문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칡이 터를 차지하고 있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산책길처럼 평평하고 호젓한 임도를 지나고 앞을 막아서며 얼굴과 팔뚝을 긁어대는 잡목과 산초나무 가시도 피해 가며 발귀현 고개로 내려섰다.


홍천군 남면이 고향이라는 한 블로거가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를 잇는 '발귀현'이라는 생소한 지명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발귀현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를 잇는 고개다. 발귀현에 대한 홍천군지의 기록을 보면  발귀너미고개 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 말 피난을 와서 정착한 왕족들이 동거른다리에 살면서 고려 수도인 개성이 그리워 날마다 이곳 발귀현 까지 왔다 되돌아갔더라는 유래에서 지어진 고개로 전해진다."

_네이버 블로거 '역마살 여행자'


등로는 발귀현에서 이전 코스의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775.5미터 금물산까지 다시 고도를 높여 간다. 그 중간 쯤에 위치한 시루봉 언저리까지 능선 북쪽 아래편 국방부에서 닦아 놓은 군용 임도를 따라 구불구불 진행했다. 오래도록 방치된 듯 보이는 임도는 잡초가 무성하여 빽빽이 자란 마밭(麻田)을 헤쳐가는 듯하다.


잎사귀가 삿갓나물을 닮아 그 이름이 궁금했던 하늘말나리꽃이 빨강머리 말괄량이 소녀처럼 군데군데 서서 해맑은 웃음을 던진다. 임도 옆 수풀 속에 발갛게 익은 딸기가 숨어서 발길을 잡으며 손길을 유혹하기도 한다. 정오쯤 임도를 버리고 올라선 시루봉 중간 지점 능선마루에 앉아서 배낭을 열고 점심을 들었다.


가파른 비탈을 치고 올라 한 시경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대신에 국토지리원의 위치 표지판이 서있는 해발 502미터 시루봉 정상을 지났다. 시루봉에서 금물산으로 오르는 능선길 우측 사면의 검게 그슬린 흔적이 역력한 수목들이 언젠가 화마가 핥퀴고 갔음을 말해준다. 삼십여 분을 치고 오르니 짧은 급한 내리막을 앞에 두고 골 건너 금학산 등 산군을 눈앞에 펼쳐 보이고, 한 시간여를 더 치고 오르니 금물산 아우 격인 바로 옆 봉우리를 내놓는다. 가끔씩 숨어 있던 바람이 시원스레 얼굴을 스친다.


봉우리 정상부 소나무 가지에 성지지맥 분기점임을 알리는 산꾼 '준ㆍ희' 님의 나무 팻말과 함께 가람산우회, 비실이부부, 무한도전클럽 등 여러 등산동호회 산꾼들이 달아 놓은 리본이 수북이 매달려 있다. 관할 지자체에서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인지 가파른 비탈에 밧줄이 끈긴채 나무기둥만 서있던 것과는 달리 멀쩡한 상태의 리본들이 많은 산객들이 최근까지 여전히 이 코스를 찾고 있음을 말해 준다.


14:25경 해발 775.5미터 금물산(今勿山) 정상에 올라서니 안도감과 함께 알지 못할 쾌감이 밀려온다. 이 산은 한때 금과 은을 캐어 금은산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산 모양이 그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그물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원점 회귀 시 버스 기사님은 이 산 부근에는 산삼도 많이 다고 하며, 한국지명유래집에는 정상 부근에는 물맛 좋은 약수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평소 산행 시 버섯을 눈여겨 찾던 H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 산행 내내 눈을 더 크게 뜨고 걸었을지도 모른다.


삼마치 쪽 상창고개로 내려가는 등로는 한동안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폭신한 길로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불어와서 호흡을 조절하며 피로를 잠시 잊게 한다. 해발 600미터 전후로 이어지는 산책로 같은 호젓한 숲길에 동행은 '기맥 하이웨이'라 즉석으로 붙인 이름에 흡족해했다.


금물산에서 140여 미터 고도를 낮춘 비탈은 2.6km 거리 금물산과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까지 같은 고도의 오르막 비탈을 내놓는다. 전국 100대 명산을 비롯한 이름 있는 산들은 저마다 품고 있는 자랑거리를 한두 개씩 내놓으며 산객에게 기대와 설렘을 품게 하며 잠시의 고통을 잊게 하기 마련이다. 그와 달리 기맥이나 지맥은 특별한 조망도 없이 수없이 반복하며 비탈을 오르내리며 지루하게 천리행군 하듯 무미건조하게 걷는 구간이 적지 않다. 그래서 피로는 배가되고 쉽게 지치기 마련이라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하는 동행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날머리 3km쯤 전에 뚝 자른 능선 아래 황톳빛 민낯을 드러낸 너른 임도를 내놓았다. 갑자기 사라진 등로에 한동안 당황하며 절벽처럼 잘린 사면을 조심조심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백두대간, 기맥, 정맥, 지맥 등 우리 땅의 골격과 힘줄기를 이룬 산맥들이 잘리고 뚫리고 파헤쳐진 곳이 이곳뿐이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금물산 줄기는 상창고개로 내려앉으며 오음산 줄기로 바통을 넘겨주며 동진하여 오대산에서 백두대간에 닿을 것이다. 임도를 따라  막바지 능선 줄기를 휘돌아 날머리인 상창고개로 내려섰다. 홍천읍 원터에서 남면 상창치리(上蒼峙里)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세 마리 백마의 전설이 전해 오는 삼마치(三馬峙)는 다섯 장사(壯士)의 전설이 서린 오음산(五音山)으로 이어질 다음 기맥 산행의 기점이 것이다.


상창고개 고갯마루에서 삼마치고개로 통하는 영서로가 만나는 시동입구 정류장에서 112번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가 전세를 낸 듯 텅 빈 버스는 시동로를 따라 남면 양덕원 마을 쪽으로 달리며 지나온 기맥 줄기를 찬찬히 되짚게 해 준다. 양덕원에서 택시로 지척거리 신당고개로 이동해서 차량을 회수했다. 양평읍내 식당에서 양평해장국과 지평막걸리 한 잔으로 23km 아홉 시간에 걸친 산행의 피로를 풀어본다.


미완성도 나름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아름답지만 매사 끝맺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벌써 이어갈 한강기맥 미답 구간 산행 구상에 골몰한 모습이다. 산행 중 여름을 알리던 매미소리가 새삼 계절은 돌고 세월은 유수라는 말을 상기시켰었다. 그렇지만 "빨리 하려고 하면 도달하지 못하니(欲速則不達) 빨리 하려 하지 말라(無慾速)"는 논어 구절도 새겨 들어야 할 만한 경구이다.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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