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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11. 2024

소무의도, 장마의 틈새를 훔치다.

소무의도에서 바라본 팔미도

일주일 여 지속된 지리한 장마 중 오랜만에 반짝 햇볕이 좋은 날이다.  언젠가 들려준 얘기가 떠올랐는지 소무의도엘 다녀오자는 아내의 제의가 반갑다. 작은 배낭에 생수 바나나 등을 넣고 선크림과 모자 등을 챙겨 들고 차를 몰아 소무의도로 향했다. 코발트빛 하늘에 솜털처럼 뭉게구름이 드리운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하여 무의도의 남단 광명항 해변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소무의 인도교를 건넜다. 바다는 간조 때라 바닷물이 저 멀리 밀려나고 갯벌을 넓게 드러내고 있다. 인도교 교각에 어린 물자국을 보니 만조 때보다 족히 2미터가량 수면이 낮아졌다.

인천대교
무의대교/소무의 인도교
떼무리항 선착장

인도교 끝 지점 마을 입구 티켓 박스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셔서 다가가서 여쭤보니 낚시꾼들에게 입조료 명목으로 3천 원짜리 티켓을 끊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번 찾아왔을 때 면 위에 주꾸미 한 마리를 올려서 내어주던 '땜리국수' 식당을 알리는 자그마한 푯말은 예전처럼 여전히 골목 입구 담벼락에 걸려 있다. 인도교 맞은편 산자락 아래 서있는 안내판이 무의도에 대한 궁금증을 아래와 같이 해소해 주고 있다.


"면적 1.22 km², 해안선 길이 2.5km의 섬으로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無衣島)라고 하였는데, 옛날 어부들이 짙은 안개를 품고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바라보면 섬이 마치 말을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 같기도 하고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소무의도는 '떼무리' 로도 불리는데 조선 말기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기록되어있다. 300여 년 전 박동기 씨가 처음 딸 3명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한 후 기계 유 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 씨 집성촌이 형성되었고 현재 당산 서편에는 시조묘가 남아있다.


과거에는 언들(주목망: 柱木網)을 이용해 새우-동백하(冬白鰕)를 많이 어획했고, 안강망 어선이 40여 척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섬이었으며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군병참기지로도 이용되었다.


탐승회 장소로 유명할 정도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서남쪽으로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 북쪽으로는 강화도 인천국제공항, 동쪽으로는 팔미도 월미도 인천대교 송도 국제도시와 맑은 날 서울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주변 전망이 뛰어나며 우럭, 농어, 놀래미, 광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작은 섬에 볼거리가 그리 많은지 명소 '누리 8경'이라 이름하고 아래와 같이 여덟 곳을 정하여 탐방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1경 부처깨미(꾸미): 주민들의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당제를 지냈던 곳

2경: 몽여해수욕장: 모래와 하얀 굴껍데기, 몽돌로 이루어진 250m의 작은 해수욕장


3경 몽여: 경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길목에 하루 2번 드러나는 두 개 바윗돌

4경 명사의 해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휴일을 즐겼던 한적하고 아늑한 작은 해변


5경 장군바위: 해적들이 바위모양을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서 섬을 구했다는 설화가 있는 바위

6경 당산ㆍ안산: 소무의도를 이루는 74m(안산), 30m(당산) 두 산


7경 동쪽마을ㆍ서쪽마을: 소소한 풍경이 아름다운 소무의도의 한적한 어촌마을 풍경

8경 소무의 인도교: 떼무리선착창과 광명항 선착장을 잇는 타원형 모양의 414m 다리

부처깨미에서의 조망

시계 방향으로 섬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떼무리 항에 접한 마을 앞길을 가로질러 관광안내소 앞 느린 우체통 옆 탐방로로 올라섰다. 섬의 북변인 떼무리길로 들어서자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한여름 깊은 숲 속에 든 듯 착각이라도 할 지경이다.


섬 가장자리를 따라 난 둘레길 아래 바다 쪽 사면에 서있는 키 큰 나무들은 하나같이 줄기를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로 치장하고 있다. 길 아래에서 들려오는 밀려들고 나는 파도 소리는 풀벌레 소리와 어우러져 자연의 교향악을 선사한다.


떼무리길은 500여 미터 거리 해발 30미터 안산에서 해변 쪽으로 삐쳐 내린 돌출부 부처깨미(꾸미) 전망 데크로 인도한다. 부처깨미는 과거 소무의도 주민들이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며 재물로 소를 잡아 풍어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뱀이 똬리를 튼 섬의 모양새 중 뱀의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망원경이 서 있는 전망 데크는 툭 트인 바다 저편으로 영종대교, 송도 빌딩 숲, 무의도 해변, 섬 정수리에 배 모양 조형물이 놓여 있는 팔미도(八尾島) 등이 두루 조망된다. 팔미도는 106년 만인 2009년 1월 1일 군사보호구역에서 풀려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 섬에 있는 1903년에 세운 한국 최초의 등대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함대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망 데크 주변 무리 지어 나는 잠자리 떼가 4년 전 칠월 이곳을 찾아왔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https://brunch.co.kr/@laojang/3 '섬 속의 섬 섬 섬'


송도 빌딩군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지만, 이곳은 영종대교나 인천대교를 건너고 무의도를 거쳐 인도교를 통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오지 아닌 오지이다. 그럼에도 둘레길 주변 산자락에는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장이 서너 군데 눈에 들어온다.


몽여해변으로 내려섰다. 해변 가장자리 갯바위 위에는 바다에 줄을 던져놓고 석상처럼 서있는 낚시꾼 두어 명이 눈에 띈다. 길이 약 250m의 몽돌이 깔린 해변은 긴 장마 탓인지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몽여해변 마을에는 섬이야기박물관과 카페나 편의점도 몇 개 있지만 한적하기는 마찬가지다.


둘레길 중중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중년의 아들, 노 부부, 젊은 연인, 또는 혼자서 온 사람 등 탐방객이 간간이 눈에 띄는 것이 몇 해 전에 찾아왔을 때와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몽여해변 우측 끄트머리에서 산자락으로 난 계단길을 올라 '명사의 해변' 쪽으로 넘어갔다. 이쪽 해변의 가장자리 갯바위에도 얼굴과 팔 등 온몸을 옷과 가리개로 가린 낚시꾼들이 여럿 눈에 띈다.


명사의 해변은  아담한 백사장 너머 몽돌이 바닷물이 밀려나 넓게 드러나 있다. '박정희'라는 글귀가 지워진 안내판과 폐 부표 등 쓰레기가 뒹구는 해변은 한때 일국의 대통령 가족이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방치되어 황량해 보인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 모 대학교의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철거,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동상 철거 등 이 나라는 1945년 해방, 남북분단, 6.25 전쟁에 이어 아직도 이념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붕괴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내부의 분열이었듯 우리도 기생충처럼 자라는 우리 내부의 적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번영은커녕 존립도 보장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명사의 해변 우측 가장자리에서 해발 74미터 안산 정상으로 오르는 300여 미터  긴 오르막 계단은 탐방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그 중간에서 뒤를 돌아다보니 왕릉 마냥 봉긋하게 솟은 해녀섬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척 평온한 바다 위에 떠있다. 전복을 따던 해녀들이 쉬었다는 이 작은 섬은 과거 연안부두 조성을 위한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몽여해수욕장
명사의 해변 조각상(좌)
해녀섬/하도정/인도교로 내려가는 계단길


노 부모와 장년 아들 일행의 노모가 가파른 계단길 중간에 주저앉아서 힘겨워한다. 평소 체력이 약한 아내도 걸음이 무겁고 느리다. 육각 정자 하도정(鰕島亭)이 자리한 안산 정상으로 올라서면 무의도의 정점이자 이번 탐사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것이나 다름없다. 삼면 바다가 툭 트였고 땀을 식혀 주는 바람도 솔솔 불어 마치 탐방길이 탐방객에게 마지막으로 베푸는 보상처럼 느껴진다.


하도정에서 반대편 해변 쪽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가파른 계단길은 소무의 인도교 남단 앞으로 인도한다. 인도교와 그 건너편 바닷물이 밀려난 광명항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며 섬 일주의 마침표를 찍는다. 떼무리 해변 갈매기가 끼룩끼룩 대며 완주를 축하해 준다.


소무의도를 뒤로하고 무의도를 향해 인도교를 건넌다. 광명항 밑동을 내비치는 선착장 옆에 낮게 떠있는 부양식 선석이 평균 8미터에 달한다는 간조와 만조 때의 해수면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하늘은 여전히 우아한 코발트빛으로 빛나고 뭉게구름은 하늘을 캔버스 삼아 갖가지 형상의 그림을 수놓았다.


영종도를 빠져나오기 전에 예전 공항에 근무할 때 가끔씩 찾아왔던 마시안해변 부근 '미*네' 해물칼국수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맛집으로 소문난 때문인지 식당은 손님들로 거의 만석이다. 장마의 틈새를 훔쳐 훌쩍 다녀오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소무의도 기행이다.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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