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고 열대야가 지속되더니 태풍이 다녀갈 차례인가 보다. 9호 태풍 종다리가 지나가고 10호 태풍 산산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있다. 친구들을 위해 수고를 기꺼워하는 M의 차량에 H, B와 함께 탑승하여 이른 아침 영월로 출발했다. 서울을 벗어나 원주와 제천을 지나고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로 들어설 때까지 산하는 내내 안개에 잠겨 있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강원도 첩첩 산 너머 오지에 있어 이제나저제나 하던 태화산(太華山) 산행을 결행키로 한 것이다. 산림청 선정 한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태화산은 해발 1,027m로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의 경계에 자리한다.
영월군으로 접어들어 고씨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택시에 올라 종주 산행 반대편 들머리인 흥교마을로 향했다. 태화산로에서 갈라진 1차선 아스팔트 흥월로는 첩첩산중 좁은 골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며 고도를 한껏 높여 흥교마을로 우리 일행을 데려다 놓았다.
당초 영월 방향의 고씨동굴 코스, 팔괴리 코스, 큰골 코스, 흥교 코스와 단양군 영춘면 방향의 북벽 코스 중 버스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북벽 코스를 염두에 두었었다. 나중 산행 중에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만, 북벽 코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등로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영춘 현감을 지낸 이보상이 석벽에 북벽이라 암각 했다는 신 단양팔경 중 제1경 북벽의 비경을 볼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흥교태화산농장 주차장에서 택시에서 내려서 산행 채비를 했다. 몇몇 산객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차량 서너 대가 눈에 띄는 자그마한 주차장 한편에 서 있는 등산로 안내도를 보며 코스를 확인했다. 흥교 코스는 태화산 정상까지 2.5km로 해발 약 550m에서 출발하는 가장 단거리이기에 많은 산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라고 한다.
비스듬한 태화산 산자락 전답 사이에 몇몇 농가가 자리한 흥교마을을 거슬러 오르며 산행을 시작했다. 사과, 고추, 해바라기, 콩 등 온갖 작물들이 결실을 앞두고 막바지 긴 여름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나팔꽃은 전봇대 지지대 줄을 온통 진보랏빛 꽃으로 수놓았고, 온갖 종류의 풀벌레 소리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고 알린다.
영월군청에서 퇴직하고 개인택시를 하신다는 기사분이 알려준 주차장 옆 영월초등학교 흥교분교가 있던 곳은 그 흔적도 없이 풀만 무성하다.
들머리 한편 영월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안내판이 "헌안왕의 아들이었던 궁예가 신분을 숨긴 채 살다가 10살이 될 무렵 세달사(世逵寺)로 출가했다"며 이곳에 세달사가 있었다고 알린다. 지도를 찾아보니 흥교분교 터 바로 옆에 세달사 터가 있었는데, 궁예가 청·장년기를 보내면서 왕이 되고자 뜻을 세웠던 그 터를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니 아쉽기만 하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본격적인 산행 전이라 그런지 들머리 부근 공기는 더위가 멀찍이 물러나 있는 듯 선선함이 느껴진다. 그런 느낌도 잠시뿐 들머리부터 곧추 고도를 높여 가는 등로는 차츰 호흡을 가쁘게 하고, 손은 금세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내기에 바쁘다. 쭉쭉 뻗은 성긴 참나무와 소나무 숲은 안개에 잠겨있지만, 등산화가 미끄러지지 않고 찰진 느낌이 드는 흙길 등로가 기분을 차분히 해준다.
들머리에서 1.8km쯤 거리 첫 능선 마루로 올라섰다. 이곳은 등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영춘면 북교 코스에서 올라오는 등로 쪽은 출입을 통제하는 줄을 쳐놓았다. 누군가는 등로가 위험해서 그럴 것이라고 했지만 그 연유를 알 길이 없다. 영월군과는 달리 강 건너 멀리 군의 경계에 자리한 이곳까지 관심을 주지 못한 단양군의 느슨한 대처 때문은 아닐는지.
배낭을 내리고 걸음을 멈춘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금세 땀이 식으며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산림청이 세운 이정표가 '정상까지 10분 거리'라고 알린다. 그 안내처럼 태화산 정상은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반 남짓 만에 홀연히 모습을 보인다. 다른 유명 산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 쉽고 빠르게 정상에 올라섰다.
영월군과 단양군에서 각각 하나씩 세운 표지석을 배경으로 앞서 올라오거나 뒤에 올라온 산객들이 저마다 인증 사진을 남기기 여념 없다. 그중에는 100대 명산을 찾아다니며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도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산객들은 종주 산행을 주로 하는 우리 일행과 달리 필시 최단 거리의 코스를 오가는 정상 왕복 산행을 하기 마련이다. 눈에 띄던 여러 산객 중 우리 일행이 진행할 고씨굴 방향 긴 등로로 길을 잡는 이가 극히 드문 까닭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고씨굴 날머리까지는 5.7km의 제법 긴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능선 우측 가파른 산기슭 아래로는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고 그 너머로 북벽, 온달산성, 소백산 등 단양의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깊이를 알 수 없이 깔린 안개구름에 묻히고 울창한 숲에 가려 안타까울 뿐이다. 큰골 갈림길을 지나자 곧이어 '영월지맥 1030.9M 준.희'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그 근처 등산 안내도 뒤로 나뭇가지 너머 희미한 안개 사이로 남한강의 윤곽이 감질나게 살짝 내비친다.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 사이로 고도 900m를 넘나드는 능선길은 대체로 평탄하지만, 곳곳에 바위 무덤이 앞을 가로막아 서기도 한다. 여전히 몸은 땀에 젖어 있지만 햇볕을 가린 숲을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걷는 기분이 가볍게 하이킹하는 느낌이다.
팔괴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지점을 지나고 날머리까지 4km여 남기고, 고도 900여 미터 등로 주변에 기왓장 파편과 돌로 쌓은 성의 흔적들이 눈에 띈다. 고려 때 돌과 흙의 혼합축성법으로 쌓은 성으로 추정되는 태화산성에는 '남매축성설화(男妹築城說話)’가 전하는데, 남아선호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옛날 성 근처에 두 남매를 둔 어머니가 살았는데, 남매에게 성 쌓는 내기를 시켜 먼저 성 쌓기를 마치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였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석성인 왕검성을, 딸에게는 토성인 태화산성을 쌓게 했는데, 딸이 먼저 성을 완성할 것 같았다. 더럭 겁이 난 어머니는 토성을 무너트렸는데, 딸이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태화산성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도 630여 미터 지점에서 우리나라 대표적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 군이 모여 만든 246km 외씨버선길 마지막 13구간이 막바지 피치를 올리듯 능선을 가로질러 넘는다. 날머리까지의 산행 막바지 가파른 경사 구간은 고도를 한껏 낮추며 삐쭉삐쭉 날 선 바위 능선, 시원스레 성긴 참나무 숲 사이로 지그재그로 난 길, 공룡 등뼈처럼 날카로운 바위를 세운 가파른 길을 내놓는다.
고씨동굴 입구 날머리로 내려서기 전에 등로는 산행 내내 전망다운 전망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산객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듯 전망 데크 하나를 내놓는다. 전망대는 그 아래에 남한강 줄기, 강 건너 고씨굴 매표소와 고씨굴을 잇는 인도교 등을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 놓았다.
절벽처럼 깎아지른 듯한 산록에 놓인 나무 계단을 따라 고씨굴 옆 날머리로 내려섰다. 산행을 마치며 들머리 쪽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비교적 짧고, 날머리 쪽 등로는 길고 고도 차이가 큰 코스를 택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처럼 날머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씨굴을 탐방하는 즐거움을 놓칠 까닭이 없다. 남한강 위로 놓인 긴 인도교를 건너 주차장에 세운 차량에 배낭을 내려놓은 후 H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많은 관람객 틈에 섞여 총길이 3.38km 중 개방된 620m 구간 냉방처럼 서늘한 동굴 속에서 석회암과 물 그리고 억겁의 시간이 빚어 놓은 환상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영월은 한때 시멘트 생산 중심 도시로서 12만 명이 넘던 인구가 현재 4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월은 인구 5만 명 이하라는 슬로시티 가입 조건과 김삿갓면의 고씨굴, 김삿갓문학관 등 8개의 박물관을 비롯한 군 내 별마로천문대, Y파크, 단종역사관, 동강, 강원도 탄광문화촌 등 다양한 자연 역사 문화 콘텐츠로 인해 2012년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1994년 폐광된 상동읍 텅스텐 광산을 인수한 캐나다 'Almonty Industries' 社가 본격적으로 채광 사업을 재개하면 영월 경제가 되살아날 지 모를 일이지만, 첩첩 겹치는 능선과 강물 물결 문양에 'Young World'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영월군의 슬로건과 슬로시티 로고가 오래도록 함께하면 좋겠다.
산행을 함께 한 친구들과 칡냉면에 '영월 동강 막걸리' 한 잔씩을 나누니 안개가 걷히고 맑게 드러난 하늘처럼 산행의 피로는개운하게 날아가 버렸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金炳淵, 1807-1863)의 시 <竹詩 죽시>가 갑갑한 세태에 조금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