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의 경계를 넘는다. 지하로 놓인 철로에도 경계는 있다. 사실 애초엔 그 어디에도 경계가 없었지만, 인간들이 곳곳에 경계를 긋고 담장을 쌓았다.
전철은 강남땅 밑을 가로질러 한강철교 위를 지난다. 차창을 통해 전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절로 찡그러진다. 제목과 내용이 사뭇 다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주말 이른 아침 전철 안은 그들의 세상인 듯 유독 노인들이 많다. 북적이는 평일을 피해 옛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찾아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지도 모른다. 강남에서 많은 승객들을 풀어놓고 충무로 을지로 종로 안국 경복궁 등 서울 옛 중심부를 벗어나자, 평소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서울이 맞나 싶게 전철 안이 한적해졌다. 집을 나선 지 시간 반 만에 구파발에 닿았다. 동행할 친구 M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서울 둘레길 제8구간으로 들어섰다.
서울 둘레길 제8구간 32.6km는 북한산과 도봉산 남쪽 자락을 구불구불 휘도는 코스다. 북한산 둘레길 21개 구간 가운데 남쪽 구간인 구름정원길, 옛성길, 평창 마을길, 명상길, 솔샘길, 흰구름길, 순례길, 소나무숲길, 왕실 묘역 길, 방학동길, 도봉옛길 등과 궤를 같이한다. 이 구간의 일부인 우이역에서 빨래골 구간을 2년 전 겨울 우이령길 탐방 때 연장해서 걸었었다. 오늘 목적지는 솔샘길의 끝 빨래골이다.
진관내천을 따라 걷는다. 다리 분수 폭포 징검다리 등과 어우러진 천(川)을 따라 좌우로 들어선 높고 낮은 은평 뉴타운의 아파트 숲이 조화롭다. 진녹색 머리 깃털의 야생오리 한 쌍이 다정하게 물 위에 떠있다.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처럼, 상류 숲 쪽에서 오리 한 마리가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날개를 퍼득이며 물길 위로 유연하게 내려앉는다.
양재천 안양천 탄천 등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주민들에게 커다란 휴식과 위안을 주는 생태하천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북한산 선림봉 자락 끝 인적 없는 '깨달음의 숲(禪林)'에 선림사가 좌정하고 있다. 음악을 관장하는 지국, 용을 거느리고 서방을 지키는 광목, 불법을 수호하며 만물을 소생시킨다는 증장,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들을 거느리고 북방을 수호하는 다문 등 수미산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천화루로 들어서서, 높은 계단을 올라 대웅전을 한 번 둘러보고, '구름정원길'로 들어선다.
둘레길을 따라 '서울 100km' 마라톤 리본이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달려 있고, 선두 주자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난다. 걷는 주자도 여럿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외국인도 간간이 보인다. 노령의 여성 주자는 발이 가벼워 보이고, 젊은 주자는 오르막 계단이 버거운가 보다.
"안녕하세요!" "예에~" "몇 킬로미터쯤 뛰셨나요?" "모르겠어요. 휴우-"
먼 길을 달려왔는지 젊은 주자는 말 한마디조차 하기 힘겨운가 보다. 우리도 저 주자처럼 간혹 여기가 어디쯤인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힘겹게 걷거나 뛰고 있을 때가 있다.
족두리봉 줄기가 내려앉는 곳에 장탉 벼슬 같은 붉디붉은 맨드라미 꽃이 마당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진사가 자리한다. 너른 마당 저편 산기슭 숲을 등진 채 하늘을 머리에 이고, 높은 좌대 위에 흰 불상이 가부좌하고 있다. 마당 주위 곳곳 장독대 위에 앉은 미륵반가사유상 등 불상들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작년 9월 북한산 족두리봉 산행 때의 들머리 지점이 낯에 익다. 족두리봉에서 서남쪽으로 내달리던 산줄기가 우뚝 멈춰 선 곳, 뷰포인트가 멋진 전망을 선사하고,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토로 삼을 만한 명언 한 구절도 만났다. 걷기 예찬론에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 장 자크 루소 -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영국 속담)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사르트르)
"몸에는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동의보감)
구기터널 서편 진흥로를 건너 옛성길 능선으로 올라선다. 배낭에 '배재학당 추계 등반모임'이라는 리본을 하나씩 단 단체 산객들이 능선 나무계단을 줄지어 오른다. 그 행렬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로서의 긴 역사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이라는 이 학교 교훈이 기억에 인상 깊이 남아 있다.
옛성길은 8구간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지, 숲은 소나무가 울창하고 둘레길 위엔 사람들로 빼곡하다. 왼쪽 멀리 족두리봉 위 산객들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고, 탕춘대 능선에 올라서며 잠시 북한산 성곽과 만났다가 이내 평창 마을길로 내려섰다.
구기터널 동편에서 진흥로 북단으로 건널목을 건넌다. 진흥로를 따라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서서, 은둔자처럼 머리에 닿을 듯 낮은 지붕을 이고 있는 전심사 옆을 지나면, 이국적 풍경의 평창동 골목길이 시작된다. 보현봉 자락에 접한 평창동 가장자리 길을 따라가며, 산기슭에 기대어 서거나 경사진 비탈을 차고앉은 이국적 풍경의 주택, 갤러리, 사찰 등에 자꾸 눈길을 빼앗긴다.
금강원 향운사 보각사 청련사 혜광사 등 둘레길을 따라 연이어 늘어선 사찰을 스쳐 지났다. 삼각산 밀알 기도원 뒷길을 돌고, 가파른 암벽에 기대어 선 감람산기도원을 지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연화정사에 들렀다. 경사진 넓은 산자락에 펼쳐진 평창동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온전히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 현판 아래 걸린 '중생을 구제하겠다(願濟衆生)'는 액자, 그 속 글귀에는 마을을 향해 자비의 팔을 벌린 가늠할 수 없이 크고 넓은 불심이 엿보인다.
예로부터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라 여겨지던 의식주(衣食住), 뛰어난 북한산 풍광과 공기가 맑은 평창동은 입고 먹을 것에 구애 없는 부자들이 거주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으로 보인다. 요즘은 역세권 숲세권 등 이동의 편의와 힐링을 위한 행(行)과 락(樂)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으니, 마냥 부러워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평창동을 빠져나오면, 형제봉 입구에서 정릉주차장까지 산속으로 난 숲길을 걷는 '명상길'이 시작된다. 보현봉에서 내리 뻗은 형제봉 자락 너럭바위에 앉아 숨을 돌리면서, M이 준비해 온 사과대추를 한 입 배어무니 꿀맛이다.
명상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객들이 적은 산길이라 조용히 생각하며 걷기 좋은 코스다. 띄엄띄엄 떨어져 한둘씩 보이는 서울 50km 주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힘겨워 보인다. 서울광장을 출발해서 회귀하는 코스로 10여 km가 남았단다.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뜀박질을 하는 저 주자들은 가장 힘겨울 막바지 구간을 명상은 고사하고, 온몸으로 밀려드는 고통과 시시각각 치열히 맞서고 있을 것이다.
청수사가 자리한 북한산 국립공원 정릉 안내소로 내려서며 명상길을 빠져나오면, '솔샘길' 구간이 시작된다. 점심때가 지나 한적한 안내소 아래 식당에서 순대국밥과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랬다.
둘레길은 보국로를 따라 정릉동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산자락으로 바짝 붙으며 이어진다. 칼바위 능선 아래 안긴 정릉초교 뒤 솔샘 마당 공원 벤치에 앉았다. 한 모금씩 나눠 마신 커피가 입 안에서 달콤하다. 정작 흰구름길로 들어서야 나오는 스탬프 확인 지점을 찾아, 지나온 솔샘길 전망대와 북한산 생태숲 전망대까지 되돌아갔다가 오는 헛수고마저 달게 감내했다.
북한 도봉 수락 불암 용마 아차 등 여러 산과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는 구름 전망대가 있는 흰구름길로 접어든다. 은평구에서 출발하여 종로구와 성북구를 지나, 강북구로 경계를 넘으며, 긴 여정의 끝이 보인다. 출발기점에서 20km 거리의 수유동 빨래골 공원으로 내려서며 걷기를 마감한다.
마을 버스정류장은 공원에서 가까이 있다. 길거리 사람들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과일 트럭에는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광주리마다 탐스럽게 담겨 있다. 가을이 좀 더 무르익으면, 붉게 물들 북한산 단풍을 한 번 보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