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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Mar 10. 2021

금송아지전

《금송아지전(金-傳)》이라는 작자 ·연대 미상의 조선 시대 불교 소설이 있습니다. 불전(佛典) 《지행록》의 설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여기서 금송아지는 석가여래의 전신(前身)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옛적 상고 시대 파사국의 서역왕에게는 부인이 세 명 있었습니다. 왕이 출타한 사이 셋째 왕비 보만부인이 태자를 낳았는데, 이를 시기한 두 왕비는 태자를 산중에 버리고, 태자 대신 가죽을 벗긴 새끼고양이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버려진 태자를 맹수와 백학이 오히려 보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두 왕비는 태자를 다시 데려다가 궁중의 사나운 암소에게 던져버리고, 보만부인은 작은 방에 가둬 하루에 밀 한 섬씩을 가는 형벌을 내립니다.


태자를 삼킨 암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바로 우리의 주인공 금송아지였습니다. 어느날 밤, 금송아지가 보만부인을 찾아가 모자상봉을 하자, 두 왕비는 금송아지가 태자의 변신임을 눈치채고, 왕에게 금송아지의 간을 먹어야 자신들의 병이 낫는다고 거짓 칭병을 합니다. 그리하여 금송아지는 백정에게 보내지는데, 마음씨 좋은 백정은 금송아지를 살려주고 대신 개의 간을 바칩니다.


방랑하던 금송아지는 우연히 우전국의 왕이 내건 방을 보게 됩니다. "성벽에 걸린 지푸라기 북을 울리는 자를 공주와 결혼시켜 부마로 삼겠노라." 금송아지는 머리에 힘을 주고 콧김을 힘힘거리며 성벽으로 달려갑니다. 드디어 짚으로 만든 북을 머리로 받자 '두둥~~' 북소리가 온 성안에 울려 퍼집니다.


머리에 뿔 달린 금빛 송아지를 보고 놀란 왕은 금송아지를 쫓아내려 합니다. 이때 아름다운 공주가 등장하여 금송아지와 혼인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공주는 아버지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공주는 미의 관점이 아버지와 다르니까요.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죠. 그게 정설입니다.


금송아지는 공주와 함께 쫓겨나 황야를 헤매다가, 정화수 떠놓고 주례도 없이 혼례를 하고, 나무를 얽어 집도 지어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지평선에 해가 저물고 붉은 황혼이 들 무렵, 고난도 불행의 바람과 함께 땅 속으로 스며들 무렵, 금송아지는 어느 천상선관(天上仙官)이 준 묘약을 먹고 드디어 저주의 껍질을 벗게 됩니다. 멋진 왕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우리의 주인공 금송아지 아니 왕자와 공주는 제비가 물을 가르듯, 페가수스가 하늘을 긋고 달리듯, 성으로 달려가 인국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금우태자는 본국을 예방(禮訪)하게 되고, 전후사실을 알게 된 부왕은 두 왕비를 극형에 처합니다. 태자는 보만부인을 모시고 우전국으로 돌아와 지극히 봉양하며 선정을 베풀다가 부귀공명 자손만대 장수만세를 누리고 천상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고전소설의 백미는 역시 해피엔딩입니다. 사실 아름답기야 비극적 결말이 아름답지요. 비극은 상처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니까요. 그것이 서양 고전소설이 노리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우리 고전소설이 아름다운 건 비극을 경험하고, 상처 받고, 아문 기억의 잔재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초극하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죠.


짚북을 울리는 금송아지라니 어찌 보면 얼마나 우스운 설정입니까. 하지만 이면에는 축적된 인고의 에너지와 운명을 극복하려는 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런 자장으로 부딛히는데 어떻게 북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의 짚북을 울리는 금송아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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