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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꽃 Oct 14. 2023

아무리 싫은 사람이어도 배울 점 하나는 반드시 있다.

최고의 복수는 잘 사는 것

어릴 땐 싫은 사람 = 그냥 싫은 사람, 본받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와닿고 있다.


과거 친했던 언니 중에 bj가 된 언니가 있다. 대학 때 교양 수업 팀 프로젝트로 만났는데 나는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언니는 우리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아무튼 우리는 일대일로 밖에서도 만날 만큼 꽤 가까워졌다. 그런데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친밀해질수록 가벼워지는 언행과 사치스러움에 기시감이 들 때였다. 언니도 인플루언서로서 매일 피드를 올려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샴페인에 꽃을 하나 올려준다는 이유로 고가의 술을 주문하자고 했다. 단지 ‘업로드용 감성’ 때문이었다. 그 때는 나도 돈을 잘 벌 때라 ”언니 하고 싶으면 시키자. “고 했는데 “오 시키라고 할 줄 몰랐는데 의외다. 너도 집이 좀 넉넉한가 봐?” 라던 말이 나는 불편했다. 만약 내가 거절했다면 난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거였을까? 무언가 테스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치하면 명품 아니겠나. 내가 보세 가방을 들고 갔을 때 “뭐야 그 가방은? 아이디어스에서 샀어?”라던 말이 장난인데도 불구하고 유쾌하지가 않았다.


언니는 점점 더 자극적인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바디프로필 사진, 가슴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사진, 노출이 심한 사진… 수능 날에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며 “이상 정시 현역 합격생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언니 근데… 미술 실기로 왔잖아.


3만, 7만, 10만… 눈을 감았다 뜨면 불어나는 언니의 팔로워 수. 팔로워 추이를 캡처하며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라던 언니의 인사는 누구에게 하던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팔로워 목록은 어째 프사 없는 외국인들만 가득했는데.


“ㅇㅇtv에 수위 높게 방송하면 다들 구독해주실 건 가요?” 라며 점점 수위를 높여가던 언니, 전 남자 친구 인플루언서와 소송 중인 언니, 고수익 투자 사기의 피해자가 된 언니… 난 그런 언니를 보며 점점 더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멀어지기를 택했던 것 같다.


그런 언니에게 내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운동이다. 언니가 아무리 사치스러운 것들을 올리고 각종 협찬받은 것들을 올려도 내가 가장 언니를 질투했을 때는 언니가 운동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때 깨달았다. 나도 만약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싫어할 모습은 내가 건강히 사는 모습일 거라고.


최고의 복수가 잘 사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나. 근데 그 잘 사는 모습은 명품을 사고 외제차를 타고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히 사는 거였다. 운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밤에 잘 자는 것. 그래서 그때부터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깨닫게 해준 언니가 그래도 나에겐 반짝반짝 빛나는 언니였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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