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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쪽 Jan 14. 2021

회사는 안 망해요.

나를 놓고 갈뿐

올해 2월, 인천공항에 하나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다 항공사 카운터 전체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출퇴근하는 공항 리무진 버스에 나 혼자만 타고 내렸다. 점점 공항에는 손님보다 일하는 직원이 더 많이 보였다. 3월 31일 하루 7대의 비행기를 띄우던 우리항공사는 모든 비행기 운항을 전면 취소했다. 그 뒤 나는 지금까지 6개월째 휴직중이다. 


3월 31일 마지막 비행기를 띄우고 퇴근할때 동료들과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곧 다시 만날테니 거창한 인사도 필요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새벽에 안 일어나도 된다니. 나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당시 나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지쳐있던 상태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허둥지둥 반쯤 감긴 눈으로 공항가는 첫 버스를 탄다.공항에 도착하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유니폼 색깔에 맞춰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다크서클이 출렁이는 얼굴에 빨간 립스틱이 기름처럼 둥둥 뜬다. 

"손님이 짐값을 안 내려고 해요"에서부터 "손님 해당국가 입국비자가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출발 10분전인데 기내식 도착이 안 했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해주세요" "등등 별별 문제가 다 생긴다. 그 별별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정에 문제가 생기면 승객 안전 사고는 물론 비행기가 제 시간에 뜨지 못할수도 있으니 근무하는 동안은 계속 긴장 상태다.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온몸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쉬이이이익 들린다. 집에 오기 무섭게 엄마라는 유니폼을 입는다.


회사에서는 3주 무급휴직 동의서를 받았다.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나는 흔쾌히 서명했다.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같이 부담해서 이겨내자는 지점장님 말씀에 격한 고개 끄덕임으로 동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은 나는 3주간 로또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확진자수는 전세계적으로 폭발했고 본사에서 발표하길 작년대비 0.2%만의 비행편이 운항하고 있다고 했다. 전세계 65개국에 취항을 하는데 0.2% 운항율이 선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집에 있는 내가 좋았다. 하루 제일 큰 걱정이 오늘 점심은 뭘 할까 저녁은 뭘 해 먹지 인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매일 아침 전일 확진자수를 검색하면서 더 늘었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행여나 줄어다시 회사에 출근하라고 하면 어쩌나 어쩌나 하는 못난 두 마음이 겹쳐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항공사는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구분되어 6개월간 급여의 70%를 지원받는 유급휴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고도 월급을 받으니 이 기간이 더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또 두세달이 지났다. 발바닥 굳은살이 어느새 사라지고 말랑말랑하다. 내가 참 고되게 살았구나 싶었다.

누군가 회사를 안 가서 제일 좋은 뭐냐고 물었을때 보기 싫은 사람과 커피 안 마시고 밥 안먹어서 좋다 라고 답한적이 있다. 그만큼 내 마음에도 단단히 굳은살이 박혔었구나 싶었다. 

그 사이 회사에선 두번이나 복항 준비를 했었지만 항공편 예약을 하는 손님이 없어 모두 취소가 되었다. 틈틈히 예약시스템에 접속해 몇명이나 예약을 했는지 확인했다. 예약율이 5% 미만인걸 보고 비행기 못 뜨게 생겨 큰일이네라는 마음과 다행이다라는 두 마음이 또 겹쳐 떠올랐다.

뉴스에선 워렌버핏이 투자한 항공주를 모두 손절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항공업계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는 기자의 설명과 함께. 정말 이제는 항공사는 미래가 없는 걸까 처음으로 회사걱정을 했다.


어느새 4달 그리고 6달이 지났다. 국가 지원금을 받는 기간과 그 이후 1달 동안은 정리해고,희망,명예퇴직등 인원감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회사내에서는 국가 지원을 받는 최대기간이 11월말 이후 부터는 인원정리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여전히 운항율은 1%를 밑돌고 있고, 회사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구구절절히 적은 메일을 격주로 보내고 있다. 설마 회사가 망하겠어 라는 생각은 망할수도 있다라는 생각에서 망하고 있구나가 되었다. 우리회사는 그 달에 승무원과 기장 인원을 대거 감축했다.


망해가고 있는 회사를 보니 조선이 망해갈때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끝까지 이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사람, 더 좋은 나라를 찾아 떠나는 사람, 각종 유언비어를 퍼트려 민심을 혼란시키는 사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 이런 모든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있다. 


다행히 국가지원을 받아 얼마간은 자금유동성을 확보했다는 사내 소식을 접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회사 망할까봐 걱정인 나를 보고 후배가 말한다.

"선배, 회사는 안 망해요. 우리만 놓고 갈 뿐이에요"


그래 맞다. 회사는 안 망한다. 그저 나만 그자리에 던져두고 회사는 앞으로 앞으로 또 나아갈 것이다. 그러자 번득 내 코가 석자인게 보인다.


한국지사를 철수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아이도 있고 나이도 있으니 바로 이직은 힘들겠지? 이직을 하더라도 항공업계에서는 당분간 신규채용은 없을테니 분야를 완전히 바꿔야 하나. 이 나이에 직군을 바꿔 취직할수 있을까. 아직은 엄마라는 타이틀만으로 살아가기엔 지금까지 아둥바둥 쌓아온 커리어가 아까워 가슴이 쪼그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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