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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고래 Mar 08. 2024

엄마의 카스텔라

마른 체형의 우리 엄마는 '빵순이'다. 

'빵순이'라는 말뜻은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밥을 배불리 먹었어도 빵은 전혀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처음처럼, 마치 밥이란 과거는 없었던 것 마냥, 다시 먹을 수 있는 능력자를 뜻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약 30여 년 만에 되찾은 '전업 주부' 자리는

엄마를 매일 아침 '빵 만드는 여자'로 바꾸어 놓았다.


엄마가 만드는 빵은 대개 심심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식빵, 카스텔라.

파티시에의 고급 기술을 흉내 낼 수 없는 테크닉의 한계도 일부 원인이었겠지만,

엄마의 입맛은 원래 그랬다. 

무향무취가 취향인 엄마의 선택은

향수는 절대 사양, 화장품도 오직 스킨만, 우유도 흰 우유를, 가능한 옵션은 모두 화이트와 플레인이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입맛을 잃었을 때에도, 그저 개운하게 톡 쏘는 맑은 물김치만 찾아드셨다.


무향무취 빵순이 엄마가 가끔 즐기는 화려한 맛은 계란과 바닐라향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카스텔라였다.


빵순이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무렵이면 두 마음이 싸웠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방직공장이라는 나름 번듯한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했던 할아버지는

퇴근길에 늘 카스텔라를 사가지고 오셨다.

빵순이 엄마는 아마도 퇴근한 아빠의 얼굴보다 그 손에 들린 카스텔라가 설렘으로 기다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의 마음 한편에는 늘 아빠가 출근하기 전 잔뜩 내주고 간 숙제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래도 딸은 아빠가 좋았다. 

딸에 대한 아빠의 관심은 컸다.

바쁜 출근 준비에도 잊지 않고 아침마다 손수 공책에 산수 문제들을 적어놓았다.


"우리 딸은 나중에 발레리나, 무용가를 시켜야겠어." 

언제 보았는지 고무줄놀이를 하며,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걸 더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던

자상한 아빠였다.


그날, 

빵순이 엄마는 어제와 똑같이 친구들과 고무줄을 뛰며 아빠가 내어준 숙제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급하게 엄마를 찾는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무줄을 하던 엄마는 집으로 뛰어갔다. 

아빠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분주한 엄마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날, 기다리던 아빠는 퇴근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를 잃은 빵순이 엄마는 

더 이상 바닐라향이 나는 카스텔라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에도 이따금 빵을 만들어주었다. 

빵을 만드는 날에는 엄마의 볼도 볼터치한 것처럼 살구빛이 되었다.

종이로 틀을 만들고, 프라이팬에 아이보리빛 반죽을 조심스럽게 부어 올렸다. 

그렇게 만든 카스텔라는 때로는 달콤하기도, 때로는 탄맛이 나기도 했다.


빵순이 엄마에게 카스텔라는... 

가장 그리운 향기, 추억, 향수였다.

빵을 만드는 엄마는

단순히 아이들의 간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를 기다리던 시간, 

이별 후에도 충분히 울며 슬퍼하지 못했던 시간, 

표현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아빠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따뜻한 위로이자

무향무취를 좋아하는 엄마가 유일하게 향기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었다.


어린 딸들을 위한 빵 만드는 시간이

엄마 자신에게는 위로이자 애도였고, 딸에게도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다시, 

만드는 여자가 된 일흔 살, 빵순이 엄마는 

배가 불러도 빵을 먹는다.

높이 뛰어오르며 자유를 꿈꾸었던 소녀의 마음에 담긴 추억 때문인지...

엄마는 그렇게 빵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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