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90, 91, 92, 93
어느새 2022년의 3분기가 끝나가고 있다.
여전히 건강은 좋지 않고, 아빠의 상태는 악화되었으며, 엄마는 여전히 나를 만나면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이야기를 하면서 운다. 그간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형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빠의 죽음에 대해 어렴풋이 현실로 느끼기 시작한 것. 그리고 새 애인을 만난 것이다.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서 전 애인에게 이별을 고했었으니까. 엉망진창으로 살던 와중에,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이 나타났고 꽤나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아하는구나. 살짝 기대 보아도 괜찮겠다. 만나보고 싶다. 여러 가지 생각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정신 차려보니 91년생의 그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89년생의 그가 한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은 너에게 좋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도.' 어쩌면 그가 진짜 '좋은'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듣기엔 쓰더라도 진심으로 나를 위한 말을 하는, 내가 방황하는 모습까지 포용하려 했던 그는 나를 안고 가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와 나를 놓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
92년생의 그는, 나를 물고기 같다고 했다. 헤엄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그저 물속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 수면으로 올라오지도 않고, 밑바닥으로 내려가지도 않은 채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다니며 흘러가는 물고기. 햇빛이 비치는데도 보지 못하고, 햇빛을 보러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는.
93년생의 그가 얼마 전 생일날,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어찌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힘들었던 나의 한 때를 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는 나의 5지선다에도 없었고, 난 어차피 그에게 상처만 줄 사람이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에게도 나에게도 좋을게 하나도 없어. 내 마음이 조금 멀어진 것 같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듬어주고 싶고 돌봐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다고 한다. 89년생의 그가 왜 이런 말을 굳이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