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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본 Oct 20. 2020

"그게 아니야."

일명 고준희 헤어스타일, 쇼트커트하러 미용실에 왔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지만 쉽게 못 했다. 

헤어컷을 맘에 쏙 들게 하는 분을 만나는 건 행운일지 모른다. 그런 미용실 원장님을 만나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더 더구나 여름이라 너무 덥기도 하고 염색해서 머릿결이 푸석푸석해져 긴 머리 하기가 쉽지 않다. 


원장님에게 캡처한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고 두 눈을 꼭 감고 편안히 몸을 맡겼다. 

싹둑싹둑 가위소리가 듣기 좋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았다. 

 "완전 잘 어울리시네요. 옆머리만 정리했을 뿐인데 손님에게 이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래요? 히히, 감사해요." 


그리고 또 생각에 잠겼다. 요즘 글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생각 정리하기이다. 이런 습관을 진작에 들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좋은 습관을 들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어 행복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지난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와락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어울린다고 하면 어쩌지? 

내가 머리 손질을 못해서 사람들에게 지저분하게 보이면 어쩌지? 

혹시, 짧게 자르고 다시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할 만큼 다시 기르려면 얼마나 노력이 필요할까? 


선택에 있어서 우선권을 나보다는 가깝게는 내 가족, 또는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살아왔다. 

얼마나 많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쳐두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를 가두었던가! 

얼마나 많이 나 자신을 나 스스로 만든 틀속에 두고 외면하며 살았는가! 

얼마나 많이 내 손에서 내가 원하는 것 집었다가 놔 버렸던가!  

얼마나 많이 세상이 정해 준 규율이나 관습에 아무 저항 없이 순응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를 삼았던가! 


내 안의 나를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받으려고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했다. 그게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이런 생각들이 정리되는 순간 가슴에 뻐근함이 남아 아팠다. 


아침에 산책할 때 일이 생각났다. 한 시간 넘게 등산화를 신고 걸어서 그런지 발가락 사이가 물러서 화끈거렸다. 벤치에 앉아 잠시 열을 식히려고 신발을 벗었다. 앞을 보니 등나무 줄기가 배배 꼬여 자라고 있었다. 

꼬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무턱대고 꼬인 것을 풀어 보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때가 떠올랐다. 


그 사람과 나는 어쩌면 그리도 꼬였던지!  

생각을 떠올리니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런 당신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파랑새'가 좋겠다. 존재하지 않는 새를 찾으려고 꿈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이제 그 꿈에서 깨어났으니까. 그 이름, 파랑새가 잘 어울린다. 


파랑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잘 못 채워진 단추 구멍이었어." 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용납이 안 되던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파랑새는 떠나 내 곁에 없어도 끝까지 내 자리는 지켰다고 새끼 알들을 품었다고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결혼, 그것이 부정되면 나조차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관계는 산산이 부서져 꼬일 대로 꼬여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게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꼬인 매듭을 풀어보려고 나 혼자 안간힘을 썼다. 메아리 없는 절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파랑새는 저 멀리 날아가 떠나고 없었는데... 


열을 식히고 위를 올려다보니 등나무 넝쿨들이 서로서로 얽혀서 완벽한 그늘 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얽힌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쨍그렁하고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하늘로 향해 자라는 나무가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도 완벽하게 잘해 내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나의 발을 식혀주기 충분한 쉼의 공간. 

저거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얽힌 줄기를 억지로 반듯하게 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구나. 


"그게 아니야." 등나무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생김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구나. 남들이 뭐라고 하면 좀 어떤가! 반듯하게 살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좀 못 받으면 어떤가! 

나 스스로 만든 정형화된 틀속에서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가! 


이제부터는 내 안에 소리를 좀 더 귀담아 들어주련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방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내 욕심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으니 쉽지 않겠지. 

비록 실수해서 넘어져도, 무릎이 깨져 피가 나고 멍들어도 다시 아물 테니까.  

나 자신을 볼 수 없었던 때의 '나'와 나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의 '나'는 다르니까. 

사자처럼 포효하는 세찬 물소리에 겁먹고 못 건너던 여울목을 그 위에 놓여 있는 디딤 돌를 보며 한 발 한 발 밟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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