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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본 Oct 20. 2020

넌 혼자가 아니야.

마지막 출근하는 날이다. 시원함과 아쉬움이 엉킨 묘한 감정들이 섞여 울컥해진다.

그동안 있었던 순간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그려진다. 좋은 평가받으려고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인터넷 검색하며 공개수업 준비했던 시간들. 몇 날 며칠씩 재미있고 흥미로운 수업 만들려고 수업자료 만들던 시간들. 계약직이라서 연말이 되면 이 학교 저 학교 지원서를 내며 초조했던 순간들. 어떤 학생들을 만날지 기대하며 새로운 교실로 들어설 때의 설렘. 몇 년씩 정들었던 학생들을 떠나야 했던 안타까움들.

학생들 때문에 웃을 수 있었고 행복했던 순간들. 내가 힘이 빠져 우울할 때 그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에너지가 되었던 순간들.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놀던 순간들.

그들이 있어서 내가 이 자리까지 있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많다. 어찌 어린 학생들이 가르친 대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는 게 마땅하련만, 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불쑥불쑥 화를 냈던 순간들. 

좀 더 학생들에게 따뜻하게 해 줄 걸, 더 많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걸 하는 미련이 남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이 있다.  그중에서 마지막 날은 특별히 오래 기억하고 싶다. 며칠 전의 일이다. 쉬는 시간에 여럿이 놀고 있는데 유독 한 학생만 그 주변을 맴돌았다.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왕따를 시키는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관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잘못 건드려서 서로 간에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맘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을 따로 불렀다. 그 아이가 제일 리더십 있는 학생이다.

“선생님은 너를 좋아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아?”

“네, 저도 선생님 좋아요.”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어. ○○랑은 왜 안 놀아?”

“그냥, 나는 놀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랑 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그 애는 너희들이랑 놀고 싶은 거 같았어. 그럴 때 그 애 마음이 어떨 거 같아?”

“외로울 거 같아요.”

“맞아, 선생님이 학생 때 전학 간 일이 있었거든. 누군가 "같이 놀자."라고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참 고마웠어. 지금도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어, 고마워서. 선생님이 부탁인데 네가 그 친구한테 같이 놀자고 말해주면 안 될까? 다음 주면 선생님이 이제 너희들을 못 볼 거야. 마지막으로 부탁해도 될까?”

“네.”

   

그 학생은 곧 손을 내밀어 주었고 둘이서 친하게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척 흐뭇했다. 내 말을 들어준 그 학생이 정말 고마웠다. 계속 친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그것은 잠시 나의 바람 일 뿐이었다. 그다음 날도 전과 같이 그 아이만 빼고 놀았다. 혼자 놀던 그 학생이 계속 내 맘에 걸린다. 의기소침해하는 그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격려가 될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다.


그 학생을 따로 불렀다.

“선생님이 보니 너는 친구들이랑 같이 안 노는 거 같더라.”

“저는 그 애들 없어도 괜찮아요. 혼자 놀면 돼요.”

나를 보지 않고 자꾸만 다른 곳을 보며 말을 한다.

“누구랑 이야기할 때는 눈을 보는 거야. 그래야 마음을 알 수 있어. 마음이 아프면 눈에서 눈물이 나잖아. 마음이 기쁘면 눈가에 미소가 생기고 또 마음에서 화가 나면 눈이 찌그러지잖아.”

그 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아이는 내 눈을 계속 바라보았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너도 그 아이들과 놀고 싶은 거 같던데.”

“.....”

“선생님이랑 너는 비슷한 성격인 거 같아. 나도 어릴 때는 누군가 놀자고 하지 않으면 먼저 가서 말을 걸지 못했어.”

“....”

“그 친구들이 너랑 안 놀아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네가 먼저 가서 같이 놀자고 말을 해보는 거는 건 어때? 너의 성격상 그게 쉽지 않은 거 알아.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단다. 겉에 보이는 '너'만 있는 게 아니고 너의 속에도 '너'가 있거든. 마치 겉에 네가 말하는 것과 속에 너는 생각하는 거처럼. 두 개의 '나'가 있어. 겉의 네가 속에 있는 너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면 속에 있는 너는 아파서 울게 돼. 반대로 겉에 네가 속에 너의 마음을 알아서 행동해주면 행복해질 거야.”

“.....”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네.”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

“왜요?”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의 주위에는 너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그리고 선생님이 너를 사랑해. 선생님의 눈을 봐." 그 학생과 나는 서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런 선생님의 마음 알겠어?”

“네.”

“그럼, 우리 한번 안아보자.” 그리고 나는 두 팔을 벌렸다.


학교에서 마지막 날,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가슴이 뿌듯하다. 어쩔 수 없이 하던 일까지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섭섭함이 밀려오지만 그와 관계를 정리하면서 해야 하는 일중에 하나로 받아들인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나의 일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같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배를 타고 항해하듯이 그 배를 타고 나는 여기까지 항해해왔다. 이제,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로 만나겠지.

매일 아침, 햇살을 보면서 오늘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해보는 것처럼 내일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거리는 맘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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