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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호 Jun 18. 2024

시위와 파업은 그저 소음인가

랑시에르 : 치안을 넘어선 정치

 우리는 시민사회에서 각인들과 집단들의 수많은 공적 문제제기를 마주해요. 이것은 하나의 대립이자 불화죠. 시민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존재론적 층위를 확보하기 위한 주체화 과정이에요. 마치 “나 여기 있는데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외치는 거고, 타인들이 이 소음을 인식했을 때 마침내 그 불화의 목소리를 내던 아무개의 소음은 ‘말’로 정립되며 정치적 주체성과 평등성을 지녀요.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제출한 정치라는 개념이죠. 랑시에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를 치안이라 부르는데, 치안이란 뭐냐면 권력의 중앙이 있는 정치체제를 뜻해요. 이를 보통 archepolitic이라 칭합니다. arche, 즉 ‘권력’이 중앙화되어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감각적인 것(말, 시청각 등의 요소들)을 지배에 용이하게 말(logos)을 통해 분할하고 나눈다는 거에요.

 하지만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는 치안과 같은 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에요. 무슨 과정이냐면 각인들의 주체화 과정이죠. 앞서 기술했듯이 소음을 말로 바꾸며 시민사회의 각인들 또한 동등한 정치적 주체임을 언표하는 행위에요. 치안의 원리는 말을 통해 논의하고 합의하는 거잖아요, 발언권을 주어 공동의 감각적 이해관계에 대해 어떻게 분할하고 나눌건지 말이에요. 하지만 치안의 이런 과정에선 ‘불필요한 말’과 ‘필요한 말’로 그 위계를 구분해요. 쉽게 말해 듣기로 한 것만 듣고 보기로 한 것만 보는 것이 바로 치안의 원리죠. 특정 집단의 말은 쓸모 없으니 묵음처리하고 듣고싶은 말만 듣는거에요.

 정치는 이런 치안 혹은 감각적 공통성의 지평에 올라서서 분할된 것을 다시 재분할하고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논하는 과정이죠. 정치는 본래의 권력을 어떻게 분배할것인지 논하기에 arche가 부재해요. 그렇기에 랑시에르의 정치는 민주주의에요. 민주주의는 arche가 부재하는 democracy거든요. 글자 그대로 인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발언한다는 거에요. 그렇기에 권력의 중앙이 없습니다.


 랑시에르가 언급한 이런 주체화의 과정은 현재사회 이곳 저곳에서 드러나요. 특히나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단적 시위와 파업 형태의 불화인데, 퀴어 퍼레이드라던지 노조 파업이라던지 기후위기대응시위라던지 같은 것들은 권력에 의해 분배된 감각적인 것들을 재분할하고 재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주체화 과정이죠. 예컨대 퀴어 퍼레이드는 그들의 주체를 드러냄으로써 사랑이라는 감각적 공통체에 대한 재분할을 주장하고요, 노조는 파업권을 행사하며 경제적 이해관계와 노동하는 유한적 신체에 대한 재분할을 주장하죠. 장애인 시위의 경우도 동일하게 신체에 대한 분할을 재조정 할 것을 요구해요.

 정치는 이렇게 “나 여기 있으니까 무시하지 말고 내 말좀 들어봐!” 라는 주체화 과정을 통해 공통된 감각성을 복고하는 일이자 공동체 지반의 결속력을 다지는 정치적 해방으로 적용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러한 불화를 목격하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음소거시켜버려요. 그들의 시위와 파업 때문에 도로가 마비되어서, 플랫폼노동자의 파업 때문에 내 택배 배송이 지연되어서, 게이들이 지나치게 외설적이어서 보기 껄끄럽고 내 삶에 방해가 된다고 인식하죠.

 여기서는 아렌트가 말한 대로 민주주의의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원자화되어 고립되고 공동체 결속력을 잃은 대중들은 전체주의 대중운동에 동원되어 주어진 자극에 무관심하거나 지도자에 대한 분노와 폭력이 오히려 이에 도전하는 반대파를 향해 그들을 내 삶의 적으로 규정하죠.

 한때 제주도는 난민 문제로 떠들썩 했어요. 세계의 쓰레기들인 난민을 수용할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해 절대 수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였죠. 하지만 이들과 난민들을 1:1로 앉혀놓고 일상적인 대화를 할 시간을 제공하니 해당 실험이 끝난 이후 난민 수용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입장이 대거 변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저는 이게 랑시에르가 주장한 정치의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공동의 지반 위에서 서로를 동등하게 인격체로 대우하며 감각적인 것을 어떻게 재분할하고 공통의 감각적 공동체를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담화였잖아요.

 이처럼 정치는 소수의 정치가들에 의한 합의와 논의가 아니라 인권의 주체로 명시된 모든 국민들위 불화와 갈등이에요. 그렇기에 정치는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과정으로 성립하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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