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1일 차
요샌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져. 7시만 되어도 캄캄해. 게다가 영시에게 낮밤을 알려주려고 7시면 집안의 불도 거의 끄거든. 그래서 요샌 7시만 되어도 한밤 중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창밖을 보면 더욱 우리 집이 밤 같아.
창밖으로 멀리는 으리으리한 백화점도 보이고, 가까이는 낮은 건물들 사이 골목길에 켜진 가로등 하나하나가 보여. 북적거릴 연말의 도시도 훤하고. 겨울 특유의 고요하고 코 시린 골목길 냄새도 맡아지고. 엄마도 작년까진 그 풍경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창밖으로 상상만 하고 있으니 조금 아쉽긴 해. 엄마는 요새 긴긴밤이 이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
밤이 기니까 생각이 많아지는데. 영시를 낳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청춘은 찰나다'라는 거야. <언젠가는>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구절이 있어.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춘이라는 건 인생에서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짧은 순간이라는 거야. 이 감각을 청춘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말고 잔뜩 즐겨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보니 엄마도 뻔한 진리를 한번 더 곱씹어. 지금을 살자. 영시와의 이 순간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소중할 찰나겠지.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눈을 맞추고 웃는 것만으로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지금. 너의 온몸을 양 팔로 끌어안고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는 지금. 네가 필요한 건 모두 줄 수 있는 지금. 사진과 글로 남기고 곱씹으면서 더 많이 느껴보려 해.
행복하면서도 아쉽고. 다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안 괜찮기도 한 연말이야. 아무튼 올 겨울은 밤이 참 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