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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Jun 17. 2021

AB형 개복치 딸.


지난 3월.


칠판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는 딸아이의 말에 안과를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시력은 큰 글자나 사물의 형태만 겨우 읽을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엄마인 내가 고도 근난시 였으니 날 닮았다면 시력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시력에 관한 기대는 진즉 내려놓고 있긴 했지만. 막상 안경을 써야 할 만큼 시력이 떨어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제 겨우 열두 살인데. 벌써부터 시력 고민에 빠져야 하나 싶어 속상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억울해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집안 대대손손 2.0의 시력이 평생 유지되는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아닌 이상 요즘같이 스마트폰과 미디어가 발달된 세상에서 1.0 이상의 시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요즘 아이들, 심지어 네댓 살 꼬마들도 안경을 껴야 할 만큼 시력저하가 빈번하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어왔으니 그래. 그렇게까지 놀랄 일도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먹던 아이스크림 뺏긴 아이 마냥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내 거지 같은 시력 유전자를 (굳이) 아이가 받아 어쩌면 좋을 수도 있었던 시력이 (나 때문에) 나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좋은 것만 닮지. 왜 나쁜 걸 골라 닮았어.'


성장 속도에 맞춰 나락으로 달린다는 시력. 그래서 딸아이의 예상 시력은 나보다 더 나쁜 마이너스 8 그 아래. 어쩌면 라식 수술도 불가한 고도 근난시에 예약도 모자라 당첨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안경이 없으면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없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경부터 주섬주섬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무언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시력교정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마치 날벼락과도 같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넋을 놓고 있자니 의사 선생님께서 요즘 애들 열에 열 명 모두 안경을 쓰고 있으니 너무 아쉬워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신다.


아쉬운 게 아니라 불편함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장비 없이도 맑고 또렷한 세상을 보고 싶었던 나의 간절한 바람을 아이는 이루고 살길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효과가 미미한 약물 교정 법이나, 뾰족한 딸아이의 각막 때문에라도 시력교정 렌즈는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며 '안경 밖엔 방법이 없다'라는 선생님 앞에서 더 이상 조를 수도, 방법을 찾아보자며 설득할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이 이렇게 안 좋아질 동안 왜 말을 한 번도 안 했냐고, 그 답답함을 어찌 참고 지냈냐고 묻자 아이가 답했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어. 수채화 나무 그림 보면 나뭇잎이 자세히 보이지 않고 뭉게뭉게 색만 칠해져

있잖아? 내 눈엔 다 그렇게 보였어. 그래서 원래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어."




어떻게든 아이의 시력을 되찾아주고 싶어 여러 방법을 찾았다. 점안 요법부터 드림렌즈까지. 두 방법 모두 '내 아이에겐 맞지 않을 것'이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뒤로한 채 말이다. 그러던 중 딸아이처럼 각막의 형태가 까다로워 시력 교정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드림렌즈를 착용해 시력 교정에 성공한 사례를 듣게 되었다. 


지체할 것 없이 병원에 전화를 했고 근 한 달 뒤 어렵게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뾰족한 각막 모양 때문에 교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말에 결국 좌절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력 교정이 쉬운 각막의 모양이 아닐뿐 매우 어려운 케이스는 아니라는 것. 다만 들이는 가격에 대비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지 못할 수 있기에 쉽게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는 말씀이라면, 고민할 틈 없이 무조건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가 개안하여 광명을 찾는데 드는 돈이 아까 울리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꿈의 렌즈. 드림 렌즈(잠을 자는 동안 끼고 있는 렌즈로서 자는 사이 렌즈가 각막을 편평히 눌러줘 시력을 높여 저하를 막는 방법의 하드 렌즈)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의사 선생님이 우려하던 드림렌즈의 시력 교정 확률 이 아닌,  잠들기 전 렌즈를 눈에 넣기 위해 딸아이와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난생처음 눈에 이물질을 넣고 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얼씨구 좋다며 순순히 렌즈를 끼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아이는 발작하듯 렌즈가 눈앞에만 다가와도 눈을 감고 뜨지 않았다. 눈을 떠야 렌즈를 넣을 텐데,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속눈썹을 먼저 닫아버리니 눈떠!라는 고성을 지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목을 고정시키고 눈을 벌려 렌즈를 넣는 순간 그보다 더 빠르게 동공을 굴리는 아이의 민첩함 덕분에 검은 자에 안착해야 할 렌즈가 흰자 사방에 들러붙었다 빼기를 벌써 열 번. 


무슨 애가 이렇게 겁이 많냐며. 유리 멘탈 개복치 보다 너는 더하다며 옥신각신 렌즈를 꼈다 뺐다 반복하기를 벌써 열다섯 번. 드디어!!!! 꾹꾹 눌러 참아왔던 깝깝함이 이성의 끈을 가볍게 놓더니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열불은 부글부글 시동을 걸더니 마침내 입 밖으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이걸 왜 못하는지, 왜 이렇게 심약한지,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널 알다가도 모르겠다'라는 말로 시작된 윽박질은 일말의 필터링도 없이 이래서 나중에 뭘 하겠냐며, 이런 식으로 멘탈 관리 안 하면 밥도 빌어먹어야 한다는 비수가 되어 아이에게 내리 꽂혔다. 


'그래서는 안됐다. 그깟 렌즈 따위 못 끼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까짓 것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아이가 지금 유리 멘탈 개복치와 같다고 해도 난 기다려 줬어야 했다. 난 이 아이의 엄마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체 왜 그랬을까? 글쎄.... 난 왜 그랬던 것일까?'


친구 같은 엄마. 서스름 없는 사이. 딸아이와는 힘든 일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엄마인 나의 감정을 미리 걱정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과 고민은 내가 안고 갈 테니 넌 네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라라고. 그렇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키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의 나는. 아이의 시력이 좋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던 나라는 엄마는 주워 담지도 못할 비소 같은 말로 아이의 가슴팍을 쥐어짜고 있는 것일까....




거울 속에 두 사람이 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무는 아이와 한심함으로 무참히 일그러진 여자. 

잔뜩 움츠린 아이의 모습. 울어도 될법한데 구테여 눈물을 참아내는 안쓰러운 얼굴. 그 옆으로 꼴 보기 싫은 또 다른 얼굴 하나 더. 


비겁한 겁쟁이의 모습을 한 거울 속의 얼굴이 울음을 참는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다. 낯선 얼굴, 하지만 다름 아닌 내 얼굴. 남들보다 좋은 엄마이길 바라면서도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이중적인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피가 바짝 말라 머리가 뱅그르르 도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워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렌즈를 닦는다는 핑계로 황급히 화장실로 도망쳐 버렸다. 


거울 속에 한 사람이 있다.


못난 얼굴. 정체 없는 화에 잠식된 얼굴. 위선의 날 위를 열심히 달리는 그런 부류의 얼굴. 바로 내 얼굴.


마음을 가다듬고 화장실에서 나오니 아직 감정 정리가 안된 아이가 눈이 빨개진 채 날 바라보았다. 서둘러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네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다급한 마음에 엄마의 속도로 널 밀어붙이고 말았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딸아이 이제 겨우 열두 살.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야 할 수십 년의 세월을 기준 삼아 아이가 마주할 이런저런 사건의 크기를 예측해봤을 때. 이런 일 따위 혼이 나거나, 구박받을 일이 결코 아닐진대. 이까짓 일 별것도 아닐게 분명한데도, 다부지게 해내려는 모습을 칭찬하진 못할망정 무슨 조바심이 그리 난다고 아이를 닦달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른이고. 아이보다 무려 서른 살이나 많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기다려 주는 게 당연했다.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 그게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몫이었다. 왜 못하냐고 화를 낼 게 아니라 못할 수도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어야 한다. 그조차도 못한다면, 그게 어른이겠는가?


큰 깨달음을 얻고 오늘로서 렌즈 착용 3개월 차.

이제 아이는 인공눈물 한 방울만 있으면 어려움 없이 렌즈를 낀다. 낯설어 바르르 떨리던 속눈썹도 어느 순간부터는 콧노래에 맞춰 파닥파닥 춤을 춘다. 드디어 개복치에서 인간으로 진화됐다며 신나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3개월 전, 기다림 없이 아이를 다그쳤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고 했던가. 

아이를 키우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이도 저도 아닌. 바로 묵묵히 기다려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왕 기다릴 거라면. 내 속도로 아이를 끌어올리는 게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는 사실을.....그 쉬운 걸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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