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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Dec 25. 2020

'비공식 브런치 북 대상'을 수상하다.

역시나 비공식 수상 소감문.

신경질이 잦은걸 보면 분명 갱년기 증상이다.

아니지? 산부인과 선생님이 갱년기 근근근처만 맴돈다고 했으니 그 때문은 아니겠구나. 그런데 이노무 신경질은 어찌하여 멈출 기미 없이 고장 난 시계처럼  머릿속 사방을 헤집어 놓는 걸까.


느긋했던 성격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뒤부터 신경질 적으로 변했다.

글쓰기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작가 타이틀을 얻더니 그 맞는 흉내를 내고 싶었던 모양으로 지금껏 내버려 둔 머리를 오래간만에 회전시켜 생긴 부작용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생각해온) 작가라 함은 (야매 작가고, 출간 작가고, 당선 작가고 다 똑같이) 자기만의 세계가 완벽하고, 의지가 투철하며, 그리하여 예민하고, 더불어 까칠하고, 결국엔 고독과 삶의 고단함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깔나는) 작가 타이틀을, (이 브런치라는 곳에서) 내가 갖게 된 거다. 한 마디로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고. 거기에 '구독'이라는 그럴싸한 장치까지 더해지니 마치 내가 '진짜 작가' 라도 된 것 같았다. 한마디로 자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작가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겠나.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남편과 딸내미. 고작 둘 뿐인걸 알면서도 티를 내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대접받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작가님 어서 글을 써주십시오~'라고 밀어줘도 모자랄 판에  식구 두 사람은 가계부를 적는 일이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나 별 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작가님인) 나를 대하는 태도가 대체적으로 밍밍하고 싱거웠다.


그러든지 말든지.

뜻하지 않게 얻은 지적인 부캐를 키우는데 총력을 다 했다. 머리를 쥐어짜 글이란 걸 쓰며 종국엔 브런치 북 공모전에 호기롭게 도전했다.


결과는 뻔했다. 앞서 말했듯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짧은 시간 열정만으로 승부수를 띄우려니 승모근 높이 세우고 밀어 부친들 좋은 글이 써질 리 없었다.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고심해 써놓은 글이 마치 똥을 싸질러 놓은 것처럼 추잡해 보기 싫었고 접수 날짜가 다가올수록 싸지른 똥늘어가 불안했다.


불안은 비겁함을 키워낸다.

비겁함은 부족한 내 능력을 부정하게 만들고 마지막엔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다.

엄마 바라기인 딸내미에게 탓을 돌리기로 했다.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너 때문에 망친 것 같다고,제발 나를 좀 내버려달라 사정하며 왜 열한 살이 되어도 너는 엄마를 못 찾아 안달이냐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말 걸지 마! 눈치도 없니?

부르지 마. 그게 그리 어렵니?

방해하지 마. 그걸 못해주니?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인데. 걸 알면서도 그깟 똥 같은  싸지르는게 뭐이 대수라고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엄마! 그거 알아? 나 요즘 속상해. 엄마를 부를 수 없어서.

엄마가 더 이상 날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아서. 엄마의 꿈을 응원하지만, 그 꿈 때문에 나와 엄마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 정말 슬퍼."


그날 아이오랜 시간 서럽게 울었다. 




갈증이 났던 것 같다.

아무리 주부 9단이란 타이틀이 생겼지만, 어린이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지만 그 안에서 오직 '나'라는 사람을 찾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매 순간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주부 말고, 엄마 말고, 부인 말고, 누구네 큰딸 뭐 그런 거 말고. 오직 '' 스러운 그런 부가 캐릭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브런치 북 공모전은 내겐 생명수와 같았을지도. 탓을 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목마름을 해결할 생명수가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닿자 더없이 간절했다. 신기루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게 신기루 이듯. 21일 뒤늦게 확인한 수상자 명단 속 내 이름은 신기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있을 리 없었다.)


이럴 거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서 오바에 육바를 떨며 집 안을 뜰쑤셨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니 수상 결과는 묻어 버려야 했다.


쥐구멍 대신 이불속으로 몸을 숨기고 싶어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딸내미 이 녀석. 공모전 결과 날을 어찌 알았는지 이불속으로 슬며시 몸을 밀어 넣으며 묻는다.


"엄마! 그런데 엄마 오늘 브런치 북 결과 나오는 날 이잖아. 어떻게 됐어?"


"응. 보나 마나 떨어졌지. 기대도 안 했어. 좋은 경험 쌓으려고 도전한 거지."


"그럼 엄마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거네?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으려다 이럴 땐 차라리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게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라 생각해 진심을 담아 사실을 말했다.


"응..... 사실 엄마는 많이 창피했어. 며칠 전에 윤이 엄마때문에 울었잖아. 차라리 상이라도 받았으면 그때 울린 마음이 덜 미안했을 텐데, 상도 못 받는 글을 쓰면서 니 마음을 아프게 했나 너무 부끄럽더라구. 고작 그렇게 쓸 거면서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널 아프게 했을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말 못 했어."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이의 반짝 빛나던 눈이 둥글게 휘어진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감싸 안고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에 품에 밀어 넣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의 가슴팍에 코와 귀가 밀려 닿자 날 위로하는 듯 팔딱이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엄마! 진짜 속상했겠다. 그래도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주지 그랬어. 그럼 엄마 혼자 속상해하지 않고 빨리 위로를 받았을 거 아니야. 엄마는 멋진 도전을 한 거고, 그때 나는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렸고. 그러니까 엄마는 잘 못한 게 없는 거야. 이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미안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엄마 책이 뽑히지 않았어도,

나한테는 엄마 작품이 대상이야. 1등이야!"


아이고... 열한 살 어린아이에게 머리통을 꽉 잡힌 채 받는 위로가 이렇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 줄이야. 코 끝이 찡 하더니 목젖 어디 매가 알퀴한게 찌릿찌릿 눈물샘에 신호를 보냈다. 자식품에 안겨 우는 모습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모양이 빠질 것 같아 코에 주름을 깊게 잡으며 눈물을 참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동안 꼴 보기 싫게 떨어댄 유난과 주접에 마음 한편이 찝찔했는데 이런 무한한 이해와 위로를 받게 될 줄이야.




도토리가 둥근 이유는 상수리나무 밑에선 다른 상수리나무가 자랄 수 없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아가 상수리가 엄마 상수리나무 밑에서 싹을 틔우면 자라지 못할게 분명하니 아가 상수리를 가능한 자신으로부터 멀리 굴려 보내 싹을 틔우게 하기위해 도토리 모양이 둥글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수리 나무도 제 자식을 위한다는데.

나란 엄마는 아이를 좋은 곳에 싹을 틔우게 해 주기는커녕, 내 키를 더 늘려 보겠다고 어리석게 구는것도 모자라 되려 아이로부터 괜찮다고, 잘했다고, 걱정 말라는 위로를 받고 있다니.


답답하다고 몸을 움짝일때마다 내 머리를 움켜쥐고는 어정쩡한 포즈로 날 토닥이는 아이가 참말로 고맙다.

비록, 상처만 남은 도전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어디 하나 아쉬운 것 없이 그저 좋기만 하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알아서 데구루루 굴러가 이쁜 싹을 스스로 틔운 것도 모자라 부족한 엄마를 탓하기는 커녕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딸아이를 보니 상을 놓친게 아니라 상을 받은듯 싶다.


솔직히 브런치 북 대상 받은 것보다 난 지금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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