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지? 산부인과 선생님이 갱년기 근근근처만 맴돈다고 했으니 그 때문은 아니겠구나. 그런데 이노무 신경질은 어찌하여멈출 기미 없이 고장 난 시계처럼내 머릿속 사방을 헤집어 놓는 걸까.
느긋했던 성격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뒤부터 신경질 적으로 변했다.
글쓰기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작가 타이틀을 얻더니 그에맞는 흉내를 내고 싶었던 모양으로 지금껏 내버려 둔 머리를 오래간만에 회전시켜 생긴 부작용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생각해온) 작가라 함은 (야매 작가고, 출간 작가고, 당선 작가고 다 똑같이) 자기만의 세계가 완벽하고, 의지가 투철하며, 그리하여 예민하고, 더불어 까칠하고, 결국엔 고독과 삶의 고단함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깔나는) 작가 타이틀을, (이 브런치라는 곳에서) 내가 갖게 된 거다. 한 마디로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고. 거기에 '구독'이라는 그럴싸한 장치까지 더해지니 마치내가'진짜 작가'라도 된 것 같았다.한마디로자뻑에빠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작가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겠나.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남편과 딸내미.고작 둘 뿐인걸 알면서도 티를 내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대접받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작가님 어서 글을써주십시오~'라고 밀어줘도 모자랄 판에내 식구 두 사람은 가계부를 적는 일이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나 별 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작가님인)나를 대하는 태도가 대체적으로 밍밍하고 싱거웠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뜻하지 않게 얻은 지적인 부캐를 키우는데 총력을 다 했다. 머리를 쥐어짜 글이란 걸 쓰며 종국엔 브런치 북 공모전에 호기롭게 도전했다.
결과는 뻔했다. 앞서 말했듯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짧은 시간 열정만으로 승부수를 띄우려니승모근 높이 세우고 밀어 부친들 좋은 글이 써질 리 없었다.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고심해 써놓은 글이 마치 똥을 싸질러 놓은 것처럼 추잡해 보기 싫었고 접수 날짜가 다가올수록 싸지른 똥만 늘어가 불안했다.
불안은 비겁함을 키워낸다.
비겁함은 부족한 내 능력을 부정하게 만들고 마지막엔 탓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다.
엄마 바라기인 딸내미에게 탓을 돌리기로 했다.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너 때문에 망친 것 같다고,제발 나를 좀 내버려달라 사정하며 왜 열한 살이 되어도 너는 엄마를 못 찾아 안달이냐며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말 걸지 마! 눈치도 없니?
부르지 마. 그게 그리 어렵니?
방해하지 마.그걸 못해주니?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걸 알면서도그깟 똥 같은글싸지르는게 뭐이 대수라고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엄마! 그거 알아? 나요즘 속상해. 엄마를부를 수 없어서.
엄마가 더 이상 날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아서.엄마의 꿈을 응원하지만, 그 꿈 때문에 나와 엄마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 정말 슬퍼."
그날 아이는 오랜 시간 서럽게 울었다.
갈증이 났던 것 같다.
아무리 주부 9단이란 타이틀이 생겼지만, 어린이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지만 그 안에서 오직 '나'라는 사람을 찾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매 순간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주부 말고, 엄마 말고, 부인 말고, 누구네 큰딸 뭐 그런 거 말고. 오직 '나' 스러운 그런 부가 캐릭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브런치 북 공모전은 내겐 생명수와 같았을지도. 탓을 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목마름을 해결할 생명수가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닿자 더없이 간절했다. 신기루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게 신기루 이듯. 21일 뒤늦게 확인한 수상자 명단 속 내 이름은 신기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있을 리 없었다.)
이럴 거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서오바에 육바를 떨며 집 안을 뜰쑤셨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니 수상 결과는 묻어 버려야 했다.
쥐구멍 대신 이불속으로 몸을 숨기고 싶어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딸내미 이 녀석. 공모전 결과 날을 어찌 알았는지 이불속으로 슬며시 몸을 밀어 넣으며 묻는다.
"엄마! 그런데 엄마 오늘 브런치 북 결과 나오는 날 이잖아. 어떻게 됐어?"
"응. 보나 마나 떨어졌지. 기대도 안 했어. 좋은 경험 쌓으려고 도전한 거지."
"그럼 엄마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거네?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으려다 이럴 땐 차라리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게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라 생각해 진심을 담아 사실을 말했다.
"응..... 사실 엄마는 많이 창피했어. 며칠 전에 윤이 엄마때문에 울었잖아. 차라리 상이라도 받았으면 그때 울린 마음이 덜 미안했을 텐데, 상도 못 받는 글을 쓰면서 니 마음을 아프게 했나 너무 부끄럽더라구. 고작 그렇게 쓸 거면서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널 아프게 했을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말 못 했어."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이의 반짝 빛나던 눈이 둥글게 휘어진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감싸 안고는있는 힘을 다해자신에 품에 밀어 넣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의 가슴팍에 코와 귀가 밀려 닿자 날 위로하는 듯 팔딱이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엄마! 진짜 속상했겠다. 그래도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주지 그랬어. 그럼 엄마 혼자 속상해하지 않고 빨리 위로를 받았을 거 아니야. 엄마는 멋진 도전을 한 거고, 그때 나는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렸고. 그러니까 엄마는 잘 못한 게 없는 거야. 이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미안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엄마 책이 뽑히지 않았어도,
나한테는 엄마 작품이 대상이야. 1등이야!"
아이고... 열한 살 어린아이에게 머리통을 꽉 잡힌 채 받는 위로가 이렇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 줄이야.코 끝이 찡 하더니 목젖 어디 매가 알퀴한게 찌릿찌릿 눈물샘에 신호를 보냈다. 자식품에 안겨 우는 모습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모양이 빠질 것 같아 코에 주름을 깊게 잡으며 눈물을 참았지만쉽지 않았다.
그동안 꼴 보기 싫게 떨어댄 유난과주접에마음 한편이 찝찔했는데 이런 무한한 이해와 위로를 받게 될 줄이야.
도토리가 둥근 이유는 상수리나무 밑에선 다른 상수리나무가 자랄 수 없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아가 상수리가 엄마 상수리나무 밑에서 싹을 틔우면 자라지 못할게 분명하니 아가 상수리를가능한 자신으로부터 멀리 굴려 보내 싹을 틔우게 하기위해도토리 모양이둥글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수리 나무도 제 자식을 위한다는데.
나란 엄마는 아이를 좋은 곳에 싹을 틔우게 해 주기는커녕, 내 키를 더 늘려 보겠다고 어리석게 구는것도 모자라 되려 아이로부터 괜찮다고, 잘했다고, 걱정 말라는 위로를 받고 있다니.
답답하다고 몸을 움짝일때마다 내 머리를 움켜쥐고는 어정쩡한 포즈로 날 토닥이는 아이가 참말로 고맙다.
비록, 상처만 남은 도전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어디 하나 아쉬운 것 없이 그저 좋기만 하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알아서 데구루루 굴러가 이쁜 싹을 스스로 틔운 것도 모자라 부족한 엄마를 탓하기는 커녕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딸아이를 보니 상을 놓친게 아니라 상을 받은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