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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Aug 13. 2021

그럼에도 삶의 끈은 놓지 말아야.

즐비한 비극이 도처에 널려있다고 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요즘이다. 크게는 내 뜻과 다르게 삶을 멈춰야만 하는 일들이 있겠고, 더 넓게는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삶의 한 부분이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경우 말이다.

작열하는 태양에 온 세상이 잠식된 하루,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거실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을 일과 중 최고의 낙으로 삼는 여름의 오늘. 때론 커피잔을 들고, 때론 그저 멍하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창문 밖 6차선 도로를 바라보다 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응급차와 소방차가 번갈아 나타나서는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자동차 물결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급한 사이렌 소리와 그보다 다급한 마음이 도로 안을 채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지척에서 벌어졌던 그때의 처절했던 비극이 떠올라 다급함 사이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아이는 특별한 도드라짐도 유독스러운 개성도 없는 그저 조용한 아이일 뿐이었다. 다만 평범한 아이들과 다른 점일 굳이 꼽아보자면 아이는 남들보다 한 박자 반 늦되이 걷는 그런 아이였고, 삶을 대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했으며 나태하지도 그렇다고 무모하지도 않았던 아이. 그저 집중력이 부족해 타인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 조직 생활을 어려워했고 그렇다 보니 뜻하지 않게 무리에서의 잦은 이탈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집중력 결핍 장애아 또는 자폐적 성향이 강해 치료를 요하는 아이로 단정 그리고 분류하였고, 이러한 아이들이 그들과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물 치료나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를 가까이 두고 본 그녀와 우리는 생각이 달랐다. 과하지 않았기에, 두드러짐이 없었기에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러 준다면 우린 충분히 아이를 정상궤도에 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제쳐두고 우린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왜 아니겠는가. 


마음의 성장을 끝낸 성인조차도 보통의 세상에 발을 들이지 못함을 견딜 수 없어하지 않는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내 자식이, 또는 내 가까운 사람이 세상에 도태되어야만 하는 부류의 인간 중 하나가 되었다는 프레임을 평생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외면해야만 하는 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우린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좋은 날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지금에 와 생각하면, 이는 마음이 아픈 자식을 그래도 곁에 두고픈 엄마의 애달픈 사랑이었겠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우리의 미련이었겠다. 하지만 그릇된 사랑과 미련은 언제나 그 결과가 산뜻하지만은 않듯. 우리의 위로받고 싶은 건방지고도 무모한 소망은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마주함으로써 끝을 맺고야 말았다.


비극, 인생의 슬프고 애달픈 일을 당하여 불행한 경우를 이르는 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아이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친구도, 딱히 즐겨 하는 일도 없던 아이가 발에 걸려 스쳐지나는 바람 대하듯 건넨 말이었기에 그녀는 늘 그래왔듯 대수롭지 않게 다음에 약속을 잡아보지 않겠냐고 아이를 다독였다고 한다. 그러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조용한 하루를 보냈었다고.


그리고 며칠 뒤.

무거운 전화벨이 울렸고, 우리 모두는 한자리에 모여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과 그럴 줄 알았으면 보고 싶다던 그 사람을 만나게 해줄 걸 그랬냐는 후회를 아이의 영정 사진을 보며 나누게 되었다. 


만약 아이가 남겼던 그 말이, 스스로의 삶을 보내기 전 절실함을 가득실은 유서의 한 부분인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맥없이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을 거라 말했다. 그날의 아이 모습이 평소 아이가 보여준 모습과 조금이라도 달랐더라면.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은 아이의 말을 곱씹어 되새겼을 테였고, 헐어버린 아이의 마음을 눈치채 다독여줬더라면 그 다음날도, 지금 우리가 모여있는 오늘까지 그녀는 아이를 품에 품고 있었을 거라 자책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날도 여전히 평소와 같았기 때문에. 그저 그런 식의 지나치는 말이겠거니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아이를 돌보는 자신이 마음이 아픈 아이보다 더 힘들다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 내 아이만은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아이는 다행히 평온해 보였다. 

자식을 앞세워 보낸 부모의 무너진 모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 오랜 시간 마음이 잠긴 세상에서 살아왔던 아이가 내는 미소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아이는 다행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든 악착같이 생의 끈을 잡고 지었을 미소였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자리에 모인 모두는 알고 있다. 이 또한 살아남은 자들의 이기적인 요구라는 사실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던 아이는 그로부터 며칠 뒤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시절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고는 그 기억을 쥐고 300킬로가 넘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을 찾아가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삶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던 유년기를 보낸 그곳에 도착해 어쩌면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뛰놀던 놀이터를 한 바퀴 둘러봤을지도 모르겠고, 또 어쩌면 군것질거리를 사 먹었던 작은 문방구도 둘러봤는지도, 엄마와 손잡고 다녀오던 재래시장 안쪽의 구멍가게에 들러 군것질거리를 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기억한 구멍가게 주인의 그동안 잘 지냈냐는, 참 오랜만에 왔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었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비극적인 일은 덜 여물었든, 더 여물었든 '자식을 앞세워 보내 가슴에 묻는 일' 일 것이다. 그러니 남겨진 부모에게 '그러니 내 뭐랬어! 자식 좀 제대로 키우지..'라는 한탄을 쏟을 것도 아닐 테고, '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할 거면 차라리 그게 낫다'라는 섬뜩한 위로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그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갔겠지?' '나 힘들까 봐, 이제 자기 때문에 힘들게 살지 말라고 효도한 건가 봐'라고 중얼거리는 넋 잃은 그녀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어 주며 함께 비통해 할 뿐.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맞다.


죽음은 언제나 두렵다.

특히 지척에서 일어난 설명되지 않는 비통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곡진 인생이나마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삶에대한 비겁한 합리화보다는 그래도 악착같이 끝까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살아가길 바란다. 살아내주길 바란다. 

혼자 남은 삶이 비겁해 보인다 말하지 말고, 비극을 등에 얹고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고문과도 같은 삶이 버겁다 하지말고, 그럴지라도 부디 남겨진 삶을 충실히 살아 끝내는 보통의 세상에 남아주길 부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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