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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22. 2020

진부하지만, 우리의 처음이야기  

드디어 엄마가 되었다.


두려웠다. 수술을 위한 금식탓인지, 수술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가만히 입원실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술실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배우자를 보고 들어가라는 말이 중의적으로 들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먹거리며 손을 흔드는 남편을 보며 내 몫의 걱정까지 다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면 이상한 일일까.



전날 몇 편이나 읽은 제왕절개 후기처럼 링겔줄 연결, 항생제 테스트, 제모, 관장, 하반신척추마취, 소변줄 꽂기, 아이탄생, 수면마취, 회복실로 이어지는 수술의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먼저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리 읽고 겁내면서 두려움을 분산시켰더니 당일은 전날보다 편안하다. 


천장 가운데에 불이 하얗게 켜져 있는 수술대는 본능적으로 무섭다. 수술대 위에 누워 불안하게 떨고 있으려니 원장님이 가만히 손을 잡으면서 "기분이 어때요?", "뭐가 불안해요?" 묻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지 걱정된다고 말하거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는 제왕절개 수술의 모습이 상상되어서 무섭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마취가 중간에 깰까봐 무서워요" 였다. 출산을 앞두고 마취얘기만 하다니 얘는 뭔가 싶겠지만, 나는 아직 내가 더 소중한 철부지 엄마다. 모성으로 다 이길 수 있다고 배웠지만, 출산의 고통이 공포스러운 건 숨길 수 없다. 특히 이미 수술대에 올라온 지금은.  


몇번이나 마취를 단단히 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원장님의 기도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를 중앙에 놓고 둘러선 의사선생님들의 기도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종교가 없는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조용히 나만의 신에게 빌었다.


'부디 수술끝날 때까지 마취가 안 깨게 해주세요. 안아프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세요.' 


하반신은 마취했지만 의식이 있어서 수술의 전과정이 느껴진다 들었다. 메스로 배를 가르고 뒤적뒤적 뭔가를 당기고 꺼내는 느낌이 든다. 지금 당기는 것이 나의 췌장일까, 내장을 뒤적거려 아이를 꺼내는 이상한 상상을 하며 따끔따끔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때마다 마취가 깼을까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무렵 갑자기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응애~~~~~~~~~"


의성어는 대단하다. 으앙도 아니고 진짜 응애일 줄이야.


"첫째 나왔어요" 하시면서 양수에 뒤덮였던 아기를 보여주는데 웬일인지 눈물이 난다. 둘째도 나오려는지 서걱서걱. 의사선생님 두분이서 "얘는 왜이렇게 크나~" 하셔서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단태아 표준 3.4kg이다.

 

깨끗히 씻긴 아기를 볼에 느껴보라고 주셨다. 속살같은 붉은 피부의 아이가 차가워서 움찔한다. 아이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나는 배를 열고 있으니, 속까지 보여준건 니가 처음이야 라고 생각해야할까. 위에서 내려다 본다고 생각하니 참 생경하다. "이제 재워주세요!" 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잠에 빠진다. 


수면마취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 떠보니 회복실에 누워 있고 몸이 덜덜 떨리면서 흐릿하게 남편이 보인다. 나중에 들으니 근 1시간 가량 의식이 안돌아왔단다. 아마 단단한 마취를 요구한 만큼 수면마취에 제대로 취해있었을게다. 그동안 남편은 눈을 뜨지 않는 나를 보며 내 혈압 왜이렇게 높냐며 왜 안깨냐며 간호사를 볶았단다. 수술 후 빈맥이 잡혀서 약을 투여받고 눈을 뜬 나의 첫마디가 "심장 근처가 아파" 였다고 하니 무서워 죽을 뻔했단다. 


나 죽으면 남자 셋이 살아야 한다며.

 

내가 죽는게 두려웠는지 남자셋이 사는게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이후 항상 깍듯한 그가 어머님, 장인어른 앞 안가리고 울어버렸단다. 병실에서 도착한 날 보며 목 놓아 울어버린 그를 보며 한 번 웃고 수술실 이후 뒷얘기에도 한 번 크게 웃었다.


신생아 얼굴은 다 쭈글쭈글해서 구분못하겠다 했었다. 그런데 내 자식이 되니까 얼굴이 보인다. 첫째, 태명은 꿈. 신생아실에서 보자마자 식구들이 남편이랑 판박이란다. 신생아의 턱이 뾰족하다니 남다른 유전자다.

둘째, 태명은 끼. 투실투실 귀여워서 날닮았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 엄마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날 닮은 것 같다. 둥근 콧망울과 토실한 볼살이라니, 정밀초음파로 몇달 전 미리 본 모습과 놀랄만큼 닮았다. 현대과학의 힘은 대단하다. 



남편은 입원실에 부족한 살림을 채우러 집에 갔다. 모유수유 콜이왔다고 하니 자기도 들어가 볼 수있을 줄알고 밥도 안먹고 뛰어온다. 수유실에는 엄마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그 망연자실한 표정이란. 출산 직후 아빠가 아이를 안아볼 수 있는 기회는 딱 한번이다. 출산 하자마자 "아기나왔어요~" 하고 간호사가 직접 보여줄 때 ! 그때의 남편은 나 죽었을 까봐 사진찍을 생각도 못하고 손톱깨물며 넋이 나가 있었다고 하니, 때를 놓친 그는  3일이 지난 아직도 아이를 한번 못 안았다. 


간병하면서 못볼 꼴 안볼 꼴 다 보여주는데, 퉁퉁 부은 날 못생겼다고 놀리면서도 눈은 웃는다. 이제 진짜 한 배를 탔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라앉지 않게 잘 운행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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