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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Jul 17. 2021

상중하 평가가 없는 혁신학교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가다

혁신학교로 발령 후 첫번째 성적 입력이 마무리 되었다. 


학기초, 아이들의 작품을 놓고 명렬표에 3단계로 작성을 하고 있었더니 나의 작업을 힐끔 본 옆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혁신학교에서는 성적입력이 어렵다고 했다. 뭔 소리인고 하니, 이곳은 상중하 평가를 하지 않고 아이의 작품에 대해 서술을 해주기 때문에 3단계로만 메모를 남겨놓으면 쓸 말이 없다는 것- 

아이의 성적을 입력하다 보니 진짜 그렇다. 보통의 학교에서는 잘함, 보통, 노력바람의 3단계 평가를 한다. 학기말 종합의견이라는 항목으로 아이들의 과제에 대한 서술형 평가를 첨부하긴 하나 평가영역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해주거나 어미에 약간의 차등을 둘 뿐이다. 아주 예민하게 비교하면야 보이겠지만, 보통은 서술문구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보통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3단계 평가에서 '잘함'이 몇 개인지 세는 것으로 자신의 성적을 가늠하곤 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는 자신의 성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혁신학교에서는 상중하 평가 대신 평가 문구가 서술형으로 나간다. 아이들에게 너희는 학기말에 너희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어떻게 아니? 라고 물으니 아이들의 대답이 재밌었다. 친구들끼리 비교해서 길게 써주면 잘한거고 짧게 써주면 못한거란다. 아주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닌 것이, 가능하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평가를 지향하라고 지침이 내려오기 때문에 못하는 부분에 대해 서술하기 보다 잘하는 부분을 서술한다. 여러 영역에서 잘했으면 아무래도 서술할거리가 많아지니, 문장의 길이로 비교를 하는 것은 어쩜 학교 생활 만렙 졸업반 아이들의 지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소 아이들에게 "평가니까 잘해라~"는 메세지를 자주 던졌던 나로서는 머리를 맞대고 비교해야만 숨은 의미를 알 수 있는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상중하 평가를 안한다는 것은 평가를 무력화 시키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줄세우기 그 이상으로 알아야 하는 아이의 개별화된 특징에 대해 서술하라는 뜻인 게다. 그렇다면 서술형으로 평가했을때 상중하 평가 보다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아이가 결과에 대해 알 수 있어야 한다. 무엇에 대해 과제를 했는지, 그 과제에서 어떤 부분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써줘야 한다. 친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문장을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이걸 실천하려니 보통일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서술하다보니 너무 지엽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한 학기를 아울러서 평가하는 것이기에 평가 영역 + a까지 종합하여 평가를 서술해야 한다. 또, 서술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자료도 필요하다. 교육부에서는 서술형 평가에 대한 근거자료로 <누가기록>기능을 활용하라고 했지만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과에서 나이스를 켜고 누가기록을 작성하려면, 평가에 걸리는 시간을 2-3배로 늘려야만 한다. 


 업무 강도 뿐만 아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평가를 지향하는 초등학교의 특성 상, 부족한 부분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수학 연산 학습이 부족함"이라고 서술하면 미래에 대한 기대가 들어가 있지 않으니 "수학 연산 연습을 더 한다면 큰 성장이 기대됨."이라고 미래의 아이의 성장 모습을 상상하며 서술한다. 하지만 평가라는 것은 현재 지금 상태에 대한 평가고 아이에 대한 애정 표현 수단이 아니다. 건조하게 감정을 담지 않고 평가하는게 더 객관적이지 않나 매 순간 고민하면서도 읽는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 문장과 단어를 고른다. 한참을 그렇게 문장을 쓰고 있으면, 차라리 잘한 부분만 기록하여 아이들끼리 문장의 길이를 비교하도록 하는게 서로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며 내가 내 무덤을 팠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혁신학교 평가의 취지를 살려서 제대로 써보자는 의지와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문장을 써야하는 요구에 갈등하면서 평소보다 성적 입력 시간이 세 배가 걸렸고, 겨우 기일을 맞추고 어제 성적표를 집으로 배부했다. 다음 학기에는 꼭 매일 나눠서 입력해놓으리라는 결심과, 다음에는 이렇게 열심히 못쓰겠다 하는 후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말이다. 



그날 오후, 한 학부모로부터 너무 열심히 성적을 기록해줘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성적표를 내보내고 열심히 서술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다니 혁신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참 희한한 경험이다. 다음에는 이렇게 안해야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는데 다음에도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있을 것 같은 불안함 예감이 든다. 


이곳 혁신학교에는 일 시킬 줄 아는 부모님이 많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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