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Aug 22. 2020

뱃속에 있을 때가 나은 거라는 말.

임신했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임신했을 때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나은 거란 말이었다.


여행중일 때 테스트기를 해보지 않아도 임신임을 예감했다. 온갖 냄새에 민감해져 저 멀리서 냉장고만 열어도 구토가 밀려오는 최악의 입덧을 겪었다. 살이라도 빠졌으면 뿌듯하기나 할 텐데, 임신 초기에 입덧을 이유로 안먹는다는 건 엄마로서 할일을 하지 않는 죄책감이 들었기에 누룽지라도 끼니마다 챙겨먹어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입덧 주사를 맞은 날은 좀 진정이 되어 꾸역꾸역 욱여넣고, 나머지시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아주 천천히 유령처럼 걸어다녔다. 


16주가 되면 입덧이 끝난다더니 슬슬 불러오는 배에 익숙해지자마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기 시작했다. 강철체력은 아니었지만, 전시장 한바퀴 신나게 쇼핑할 체력은 있었는데 영 내 몸이 아니다. 몸이 무거워져 할 수 있는 일은 소파에 앉아 뜨개질 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가뿐하게 살림하는 신랑을 보며 내 몫을 못함이 자꾸 우울해져갔다. 입덧만 끝나면 먹겠다고 적어놨던 음식들은 김밥 반 줄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 하여 먹을 수 없으니 얼마나 침울한지. 속이 안좋으니 입에 맞고 몸에 나쁜 것만 땡기는데 "밀가루와 레토르트 먹으면 아이 아토피 된다"는 말은 어찌나 많은지 한입 삼킬 때마다 죄책감이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든데 낳고 나면 더 힘들다고?



임신을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위로해준다고 하는 말들이었겠지만 그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나는 육아라는 겪어보지 않은 삶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직업상 애를 낳아봐야 진짜 교사가 된다는 말을 항상 들었던 터라 한번도 딩크의 삶을 상상하지 않았고, 난임으로 간절히 원했던 임신이었는데도 내가 잘한건가 몇번이고 생각했을 만큼 선배엄마들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출산 후, 50일 언저리쯤에는 뱃속에 있을 때가 나은거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밤잠을 못자 우는 아기 안고 동트는 걸 보면서 자식을 굳이 가졌어야 하나 후회했고, 망가진 몸매와 푸석해진 피부를 보며 초조하고 조바심이 났다. 양치가 힘들어질 정도로 손목이 너덜너덜해졌고 어느날부터는 골반에 염증이 생겨 걸을 수도 없었다. 내 몸이 힘드니 모성애는 개뿔.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지 라는 생각보다 내가 살아갈 요령찾기에만 골몰하며 죄책감과 이기심 속에 100일만 지나기를 바랬다.  

그리고, 정신이 들고 보니 벌써 연말. 출산 후 200일이 지났다. 제발 혼자 트름만이라도 해라 소원했는데, 아가들은 이제 트름쯤은 거뜬히 혼자 하고, 듬직하게 앉아있기도 한다. 침대가드를 짚고 서서 로션 바르는 내 모습을 빼꼼히 보기도 하고 알수 없는 말로 옹알이 하며 밥달라고 식탁을 치기도 한다. 쌍둥이 아들 둘이 마주보며 웃기도 하고 가끔 머리끄댕이 잡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경이로움이란. 


2년의 육아휴직을 막막해하며 모성애라는 건 날때부터 생기는거 아닌가 보라고 자책했는데,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엄마를 찾는 아가들을 보면 얘네를 떼놓고 어찌 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팔로도 안을 수 있던 아가들이 두팔로 온힘을 다해 안아도 무거워서 5분도 못안고 있는 요즘은 더 크기 전에 열심히 안아줘야겠단 생각마저 들다니. 엄마로서 소질이 없다고 외치던 이기적인 내가 말도 안되게 이타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울다가도 눈 마주쳐 간지럼태우면 까르르 웃는 그 웃음이 좋고 안아달라 징징대다가도 폭 안아주면 뚝 그치는 감정의 단순함과 담백함이 사랑스럽다. 배고프면 울고, 누가 포근히 안아주면 행복하게 웃는다. 그 단순한 감정의 변화는 세세한 감정의 흐름과 숨겨진 의도를 읽어가야 했던 어른들의 세상에선 느낄 수 없었던 다른 편안함을 주었다. 걷지도 못하면서 엄맘맘마 하면서 엉금엉금 기어올 땐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고 있으니. 



뱃속에 있을 때보다 낳고 나서가 훨씬 좋았다. 아들 쌍둥이의 육아라면 다들 놀라지만, 임신은 오롯이 엄마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낳고 나서는 함께 감당해줄 남편이나 가족이 있었다. 모성애가 없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지나고보니 모성애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부대낀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괴로워하는 임산부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작가의 이전글 쌍둥이로 한번에 해결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