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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Mar 20. 2021

학급회장이 없습니다.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발령났다.

혁신학교에는 회장 선거가 없다. 일반 학교였다가 혁신으로 전환한 학교 중에는 회장 선거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곳도 있다지만, 내가 발령받은 이 학교는 개교때부터 혁신초로 개교한 곳이라 그런지 풍문으로 들었던 대로 회장선거가 없었다. 모두가 리더가 되는 경험을 위해 회장선거가 없다는 취지는 이해하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회장이 되면서 생활 태도가 개선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기에 아쉬웠다.


솔직히 말하면 교사로서 내가 불편했다. 이야기 속 엄석대가 없어서 불편한 것은 아니다. 보통 학교에서 회장과 부회장은 줄을 설때 기준이 되기도 하고 교과 시간의 알림장 등 학급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선생님과 함께 한다. 물론 수업 시작과 끝에 인사를 대표로 하는 것도 회장이다. 회장이 되면 교내 리더십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한 학기 정도 은연중에 리더로서 해야하는 역할을 주입받아서인지 능숙해진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교사가 챙길 부분을 회장이 챙기고, 가끔 프로 회장을 만나면 교실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학생 12년, 교사 12년 회장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난감했다. 

unsplash. leader.

혁신학교 담임이 되어서 근 3주간 못한 말은 이거다.


“회장아, 선생님 체육 준비물 챙길 동안 아이들 줄 세워”   

“회장아, 너희 지금 급식실 가야 하는데 선생님보고 회의 오란다. 줄 세워서 먼저 출발해”

“회장아, 인사하자”

“회장아, 서랍에 쓰레기 버리고 간 친구 누군지 봐줄래?”



다행히 3월이라 혹은 아이들이 착해서 괜찮았다. 회장한테 부탁하는 대신 내가 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긴 했지만, 모둠 1인 1역으로도 얼추 잘 돌아간다. 그러고보니 “야! 줄서!”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친구를 다그치는 아이가 없다. 아직 3월이라 낯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unsplash. voting


혁신학교에는 대신 대의원이 있다. 2달에 한번씩 뽑고 전교 회의(*공식용어 다모임이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다)에 참여한단다. “반장은 없는데 대의원이 있는게 혁신적인거에요?” 라는 당돌한 내 푸념에 동학년 선생님은 씩 웃었다. 대의원 선거에 대한 안내가 없어서 투표는 언제하느냐, 과반수 기준으로 뽑느냐 다득점자가 선출되냐 등등도 질문했지만 학급에서 알아서 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회장선거 때문에 민원이 얼마나 많은 데 주먹구구식이라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의원 선거일을 공고하고 투표를 시작한 뒤 깨달았다. “선생님, 대의원이 뭐하는거에요?” “어떻게 뽑아요?” “추천해요?” “이 종이에 누구 이름을 적어요?”


혹시 너희 투표 안해봤니?

-네-


내가 맡은 반은 6학년이고, 이 학교에 대의원 제도가 4학년부터 있는걸 생각하면 이미 연간 4번이나 투표를 해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의아했다. 심지어 아이들 공약도 재밌다. 우리반을 어떤 반으로 만들겠다는 공적인 목적의 공약이 아니라 저는 만들기를 좋아해 놀이터 만들기에 꼭 참여해보고 싶기 때문에 대의원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봄 학기 대의원은 놀이터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안내를 꼭 하라더니 이래서였던가. 덕분에 보통 학교의 회장 선거가 아닌 누가 자신의 꿈을 더 강력히 말했고, 그 꿈을 누가 더 많이 지지받는가의 선거가 되었다. 선거를 마치고 아이들이 “와 이거 너무 재밌네~” 하는데 속으로 공감을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선거가 누구를 더 인정하느냐의 긴장감이 아니라 꿈 말하기 대회 콘서트라니, 재밌었다.


선거가 끝나고 다른 반 선생님게 물어보니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신다. “학급마다 대의원을 선출하기도 하고, 돌아가면서 하기도 해요. 많이 후보가 나오면 선출이든 가위바위보든 정하고, 2달 임기가 끝나고 했던 아이가 또 할 수도 있고 그냥 먼저 손든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절차의 엄격성 보다 학급 상황에 따라 알아서 정한다니, 보통 학교에서 온 나는 민원 안들어오나 부터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면, 염려할 필요도 없다. 이미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에는 회장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고, 대의원활동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리더십을 증명할 경력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반 대의원들은 친구들이 자신을 지지했다는 그 기분때문일까 선거 전보다 학습태도가 좋아졌다. 역시 인정의 욕구를 채워주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보통의 학교와 같은 회장의 역할을 맡기려고 보니 멈칫한다. 이번에 선출된 대의원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나왔는데 학급을 위해 봉사시키는 건 아이들이 속았다고 느끼진 않을까 망설여지는 거다. 어차피 대의원으로서 학급회의의 결과를 전교 회의에 전달해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임을 다 하는 것인데 교사의 역할 일부까지 하라는 건 과중하지 않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급 회장의 역할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

이 학교에서는 당연한게 하나도 없다. 낯설고 다르고 불편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관례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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